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9948
정진석이 끄집어낸 그 '사태', 다 틀렸다
[주장] 윤석열의 '전용기 탑승 배제'와 노무현의 '브리핑룸 통폐합' 어떻게 다른가
22.11.11 20:20 l 최종 업데이트 22.11.12 00:50 l 유현재(bus89)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하기 위해 대통령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환송나온 인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저도 바이든으로 들리는데, 언론사의 잘못은 뭔가요?"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한창이고, 김은혜 수석을 포함한 대통령실이 언론을 향해 본격적으로 화를 내기 시작하던 즈음, 한 수업에서 학생이 던진 질문이었다. 신문방송학과 교수 17년 차에게도 그런 당혹감은 처음이었다. 나 또한 열 번을 들어도 '바이든'에 '이 XX들'인데, 도대체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들리는 대로 듣지 말고, 들으라는 대로 들어야 한다!"고 당부를 해야 하는 것인지, 그래야 '국익'에 도움되는 시민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매우 참혹한 마음이었다. 더불어, 거의 똑같은 자막에 비슷한 내용으로 보도한 언론사가 수백 개인데, 유독 MBC만 왜곡에 조작이라며 고발 운운하는 상황 또한 의도가 뻔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바닥일 테지, 제발 이보다 낮아져선 안 된다' 견디고 있었지만, 웬걸 9일 오후 대한민국 대통령실이 이번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시 관행적으로 기자들이 동승하던 전용기에 "MBC는 탑승 불가"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불허와 함께 전달된 이유는 이랬다.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돼온 점을 고려하여..."
귀를 의심한 기자들이 10일 출근길 문답에서 대통령에게 확인을 요구했을 때, 대통령은 즉각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이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 주시면 되겠습니다"라며 본인의 최종 명령임을 정확하게 밝혀주었다.
MBC는 불허 즉시 민항기를 타고 현지로 떠나 취재를 시작해 버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일부 언론사는 전용기를 타지 않겠다는 결정을 스스로 내리기도 했다. 정말이지 이 정부는 자신들이 하고 싶으면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지시에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응징하겠다는 마인드인지, 바닥을 보여 국내외 언론에 모두 척을 져도 손 볼 곳은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심성인지, 이젠 분노를 넘어 무력감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언론 탄압?
언론계 6개 단체는 즉각 "대통령 전용기 MBC 배제는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고, 야당 과방위 위원들도 일제히 규탄 회견을 진행했다. 워싱턴포스트와 BBC, CNN 등 주요 외신기자들도 매우 이례적으로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일부 외신은 한국 언론의 자유가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며, 북한의 그것과 비교하는 수치스러운 상황까지 연출해댔다.
트럼프도 CNN 등 몇몇 언론사와 대립하긴 했지만, 전용기에서 기자를 쫓아내는 행위는 안 했다며 비꼬는 외신도 있었다. 들리는 대로 듣지 말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보유한 우리의 정부는 결국,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이 언론탄압의 대표 국가로 들어서고 있음을 공표해 버렸다. 치사한 국정운영으로, 수십 년 걸려 그나마 위태위태 지켜온 언론의 자유를 딱 하루 만에 죽여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여당 인사들은 '사필귀정'으로 몰아가고 있을 뿐이다. 배현진 의원은 한때 몸담았던 MBC에 "자산이 많은 부자 회사이니 자사 취재진들이 편안하게 민항기를 타고 순방 취재 다녀오도록 잘 지원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고,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폐쇄와 김대중 정부 발생했던 기자들의 청와대 출입금지 등을 소환했다.
정 위원장은 그런 행위들이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전용기 탑승 불허는 언론 탄압이 아니며, 기자들과 언론도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이며 말이다. 기왕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 끄집어낸 사안들이니, 이번의 언론 탄압과 당시의 '사태'가 어떻게 다른지 짚어야 할 것 같다.
▲ 앙다문 정진석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맹공을 퍼붓다 앙다물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주호영 원내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 ⓒ 남소연
첫째, 정 위원장이 언급한 노무현 정부 시절 브리핑룸 통폐합은 언론 탄압이 아니라 언론 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당시 정부가 구상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일부였으며, 출입처 중심의 폐쇄적 취재 관행과 일부 기자들의 정보 독점 및 부작용을 없애려는 취지였다.
정부가 언론에 전달할 내용은 개방형 브리핑룸에서 상시 발표하고, 그 자리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함으로써 정보의 정당한 유통을 의도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소수의 기자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 위주의 정보 유통을 지양하고, 보다 많은 언론사에 정보 접근성을 부여하려는 요량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었던 진보 및 보수 언론에 의해 '대못질' 등의 탄압 프레임으로 가공되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물론 이후 정부에서는 곧바로 그 대못이 뽑혔다. 오랫동안 유지된 기자실도 즉시 부활하고 말이다. 상세한 판단이야 다를 수 있겠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 우리 언론의 역할과 위상, 그리고 일탈이 어떠했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 노무현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에서는 특정 언론사 혹은 특정 기자들을 조준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연히 다르다. 브리핑룸 정책은, 그 대상이 개별 '기자'가 아니라 '기자단'이었다는 뜻이다.
이는 정부가 왜곡 및 조작이라 판단하는 '불리한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을 구분해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강력한 카르텔로 변질되어 정권과 유착되어 상호이해에 부합하는 기사들을 제조하던 일부 '기자단'을 바꾸자는 취지였다. 비록 미완의 시도로 끝나긴 했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기자실 폐쇄 후 기획취재 및 심층기사가 늘고 기관에 대한 단순 홍보성 기사가 줄어들었다는 연구 사례도 있다('지방자치단체의 기자실이 행정홍보에 미치는 영향', 조기선, 2003년).
셋째, 김대중 정부 당시 일부 기자들에 대한 청와대 출입 제한의 경우, 당시 청와대가 해당 언론사의 보도에 오류가 있음을 즉각 지적하고 명확하게 결론 내린 사안이라는 점이 다르다. 다수의 언론사에 동일한 브리핑과 동일한 자료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특정 언론사가 내용과 다른 사항을 보도하여 당시의 남북 화해 분위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과 함께 페널티를 부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은 사실 확인 여부 자체가 애매한 초유의 사안이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욕설은 나왔는지 그조차도 없었는지, 발언의 주체가 풀어내면 명쾌할 일이지만 절대 그렇게 귀결되지 않는 이상한 사건인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이태원 참사 이틀이 지난 10월 31일 외교부는 박진 장관 명의로 언론중재위원회에 MBC 보도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다고 전해졌다. 국가의 소중한 역량과 자산을 동원하여 그날의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이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아직은 언중위의 판정이 무엇일지 알 길은 없다.
그렇다면, 정부와 대통령실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MBC에 전용기 탑승 불허라는 실질적 취재 제한을 내린 것일까? 유죄 추정에 의해 언론에 불이익을 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20년 전 상황과 똑같다고? 말도 안 된다.
과연, 어느 쪽이 가짜뉴스일까
▲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대통령 전용기 탑승이 불허된 MBC 기자들이 10일 오후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대통령 순방을 취재하기 위해 출국하고 있다. ⓒ 유성호
대통령실은 이번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불허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가짜뉴스 유포를 들었다. 가짜뉴스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이다. 가짜뉴스는 그 특성상 유포 당시엔 잠시 혼란을 주지만, 이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일반 대중에 의해 실체가 쉽게 드러난 다음 '가짜'라는 수치스런 이름으로 명명된다. 가짜뉴스의 운명인 것이다.
참고로,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라고 밝힌 비속어 논란에 대해, 우리 국민의 63.2%는 이XX로 들었다는 결론을 곧바로 내린 바 있다(<뉴스토마토>, 10월 7일 보도). 그보다 앞선 조사에서, '날리면'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보다 "바이든"으로 들린다는 비율 또한 58.7%에 달했다. 어느 쪽이 가짜뉴스인지, 국민 각자가 곱씹어 볼 일이다.
들리는 대로 들어도 되는 국가와
들으라는 대로 들어야 하는 국가
안타깝게도,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현재 시민기자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커뮤니케이션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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