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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가득 메운 시민 추모 촛불 “당신 잘못 아냐, 국가가 책임져라”

이태원 참사 경고한 ‘최초 신고 시각’ 오후 6시 34분 촛불 소등 퍼포먼스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2-11-12 20:11:45 수정 2022-11-12 20:19:36

 

12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추모촛불에서 참가자들이 비가 오는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1.12 ⓒ민중의소리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라며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모든 시민들을 위로하는 한편, “국가가 책임지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했다.

 

‘시민추모촛불’ 집회는 12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100개에 달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집단적으로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했던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 결과 장대비 속에서도 촛불 인파는 일대 도로를 가득 메웠다.

 

12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추모촛불에서 참가자들이 비가 오는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있다. 2022.11.12 ⓒ민중의소리

 

참사 현장 구조 활동 나섰던 청년과 소방관 “우리 잘못이 아니다”

 

집회는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청년이 쓴 편지 낭독으로 시작됐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가 낭독한 편지의 당사자인 익명의 한 청년은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친구들과 이태원을 찾았다가 쓰려져있는 사람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들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CPR)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유도 모른 채 정신 없이 구조 활동에 나섰던 그는 힘이 빠져 현장을 벗어났는데, ‘압사’로 인한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은 자정을 넘긴 새벽에 가족과 지인의 안부 전화를 받고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이태원에 갔던 모든 기억들이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눈앞에서 힘들어 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가 CPR을 했는데도 살지 못한 사람들도 생각났다”며 “무섭기도 하고 죄책감도 들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했으면, 더 열심히 했으면 그 사람들은 살았을까 생각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그런데 인터넷을 보다가 이태원에 간 사람들이 잘못 아니라고,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와 함께) 구조에 나선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며 “희생자, 생존자 모두 잘못한 거 없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때 이태원에 갔던 사람들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더이상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추모촛불에서 참가자들이 비가 오는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1.12 ⓒ민중의소리

 

당시 구조 활동을 지휘했던 용산소방서장이 경찰에 입건되면서 ‘꼬리자르기식 수사’라는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는 가운데 소방관들도 이날 집회에 참가해 분노를 표출했다.

 

김주형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장은 “지난 9일은 소방의 날 60주년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희는 그 흔한 대통령 서한 한장 받지 못하고 대신 다른 선물을 받았다. 바로 용산소방서와 재난본부 압수수색 영장이었다”며 “정말 현장에서 쉬지 않고 뛰었던 저희 소방관들에게 압수수색과 입건이 웬 말이냐. 그것도 모자라 당시 출동했던 300대 구급차의 블랙박스와 직원들의 출동일지를 모두 수사한다는데 도대체 이게 웬 말이냐”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경찰국 신설 시행령 개정 탓에 저희 소방도 함께 행안부 장관의 지휘를 받게 됐다. 그렇다면 일선 소방서의 지휘팀장이 이를 책임지는 게 과연 맞느냐고 묻고 싶다”며 “저는 시행령을 개정한 행안부 장관과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력하고 주장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추모촛불에서 참가자들이 비가 오는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2022.11.12 ⓒ민중의소리

 

“대통령이 사과하라, 국무총리 해임하라,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용산구청장 처벌하라”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이들을 위로하면서, 오히려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이날 집회를 주최한 민주노총의 양경수 위원장이 분명히 짚었다.

 

양 위원장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살기 위해 내뿜던 가쁜 숨이 하나둘 꺼져가던 그 순간 국가는 어디 있었나. 그토록 살려달라고 외치던 그곳으로 국가는 왜 달려가지 않았나”라며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사람들,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나. 누구의 잘못이냐. 누구의 책임이냐”고 국가에 책임을 물었다.

 

양 위원장은 “우리의 잘못이다. 세월호 아이들을 잃고 잊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먹고 살기 바빠서 잠시 잊었다. 그래서 우리의 책임이다”라며 “이번에는 똑똑히 밝히자. 국가의 책임을 이번엔 반드시 물어야겠다. 책임있는 자를 가려내고 반드시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사과하라.국무총리 해임하라.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 용산구청장을 처벌하라. 이것이 국민의 요구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양 위원장은 “안전한 사회를 우리가 만들자. 국민의 힘으로 안전한 사회를 반드시 지켜내자”고 호소했다.

 

'12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추모촛불에서 참가자들이 비가 오는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있다. 2022.11.12 ⓒ민중의소리

 

이날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등 4개 진보정당의 대표들도 모두 참여해 시민들의 추모 촛불에 힘을 보탰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께 엄중 경고한다. 더이상 감싸기로 시간을 끌지 말라. 공식적이고 책임 있는 사과를 하라. 국무총리와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을 즉각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에도 강력히 경고한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들은 국회를 지켜보고 있다. 즉각 국정조사 요구에 답하라”며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똑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들과 함께 반드시 국정조사를 관철시키고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도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참담한 시간 보내고 있다. 한 사람을 더 구하지 못해 괴롭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비를 맞는 것이 마음 편할 정도다”라며 “그런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피해자와 일선 경찰·소방 공무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꼬리 자르기 진상규명은 절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명백한 행정 참사이고 윤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책임있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안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을 파면하고 피해자 유가족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로 진실을 명명백백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6시 34분 일제히 소등, 그리고 무거운 침묵 “참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국가는 없었다”

 

이날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오후 6시 34분 소등’ 퍼포먼스였다. 집회 막바지에 참가자들이 촛불 대신 들고 있던 휴대폰 플래시를 오후 6시 34분에 맞춰 일제히 끄는 것이었다.

 

오후 6시 34분은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일 ‘압사 당할 거 같으니 도와달라’는 첫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시각을 상징한다. 그때부터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기까지 3시간 반동안 최소 11건의 신고가 경찰로 접수됐지만 참사를 예방할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참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국가는 없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날 집회에서 내내 터져나온 이유다.

 

불빛이 사라진 자리에 무거운 침묵이 들어섰다. 빗소리도 잠시 멈췄다. 그 사이에 무대 화면에는 최초 신고내용이 소리없이 자막으로 흘러나왔다. 최초 신고자는 “사람들이 내려올 수가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아요.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거 인파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거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플래시를 다시 켜든 이들은 앞으로도 연대할 것을 다짐하면서 뮤지컬과 영화로 유명한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 가수 양희은의 ‘상록수’를 함께 부르고 집회를 마무리했다.

 

12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추모촛불에서 참가자들이 비가 오는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1.12 ⓒ민중의소리

 

12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추모촛불에서 어린이가 비가 오는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2022.11.12 ⓒ민중의소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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