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2620


[희생자 명단 공개] 한동훈 "법적으로 큰 문제"라는데, 미국선 '언론 재량'

기자명 애틀랜타=이상연 객원특파원   입력 2022.11.22 07:40  

 

[미국서 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 1]

美, 범죄 피해자·참사 희생자 '유족 동의'없이 실명 공개

美, "공적 영역 들어오면 공개 의무"...언론사에 재량권

美, "공적 기록 모두 보도"…용의자 체포단계 실명 공


이태원 10.29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 공개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크다. 뉴스버스는 '언론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 영역의 충돌 지점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이번 논란은 사회적 담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론의 장에서 해결할 문제지,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개입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미국 법무부는 명백하게 '언론의 재량권'이라고 보고 있는데,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언론 매체의 명단 공개가 마치 큰 위법이라도 되는 것 처럼 "법적으로 큰 문제"라고 했다.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과 관련한 사회적 공론 형성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고 한미 양국의 사례 등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 7주기를 하루 앞둔 2021년 4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 공간에서 현장 관계자가 희생자들의 명단 앞에 추모 화분을 올리고 있다. (사진=뉴스1)

세월호 참사 7주기를 하루 앞둔 2021년 4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 공간에서 현장 관계자가 희생자들의 명단 앞에 추모 화분을 올리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990년 미국 아이오와주의 유력지인 디모인 레지스터는 그동안 미국 언론이 지켜왔던 금기를 충격적으로 허물었다. 성폭행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는 특별 시리즈 기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실명을 모두 공개한 것이다. 


대부분 피해자들의 동의가 있었지만, 그 동안 성폭행 피해자와 미성년 피해자들의 실명은 보도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기 때문에 미국사회에도 큰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같은 결정을 내린  편집국장 제네바 오버홀저는 이 문제에 대해 "피해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그들에게 낙인을 찍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름을 감추는 것이 사회에 해가 된다"고 설명했다. 


엄청난 비난이 신문사에 쏟아져 들어왔지만 이 보도는 미국 최고권위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퓰리처 재단은 선정 이유를 "그 동안 논의조차 되지 못했던 표현의 자유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실제 이 보도 이후 성폭행 피해를 감추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추후 '미투'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언론은 범죄 피해자나 사고 희생자 뿐만 아니라 유죄가 확정되기 전의 용의자 실명도 미성년자가 아닌 경우 거의 제한없이 공개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유권해석을 통해 "형사 사법제도의 구성원들과 언론은 범죄 용의자의 이름을 밝힐 재량권을 갖고 있다"면서 심지어 "언론은 용의자가 무죄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후속 보도할 의무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할 재량권(discretion)이 언론에 있음을 밝힌 미 법무부 자료. (자료=ojp.gov)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할 재량권(discretion)이 언론에 있음을 밝힌 미 법무부 자료. (자료=ojp.gov)


미국의 시골 주유소에 가보면 '머그샷 매거진(Mugshot Magazine)'이라는 잡지가 비치돼 있다. 1주일 단위로 음주 운전이나 폭행 등으로 동네 구치소에 수감된 같은 마을 주민들의 얼굴과 실명을 모두 실은 것이다. 머그샷은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수감하는 과정에서 이름표 등을 들고 찍는 얼굴 사진을 말한다. 한국 같으면 "한 동네 사람끼리 창피하게"라는 반응이 나오겠지만, 이런 출판까지도 자유로운 나라가 미국이다.


지난해 3월 애틀랜타에서 한인 여성 4명이 숨진 총격사건이 발생한 뒤 경찰은 용의자 애런 롱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고, 언론은 이를 속보로 보도했다. 심지어 용의자의 부모 실명과 거주지역, 다니는 교회까지 낱낱이 공개돼 한인들 사이에서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총격 사건의 희생자인 한인 여성 4명의 실명도 곧바로 공개됐다. 또한 수사 당국이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하는데 '유족의 동의'라는 개념도 필요하지 않다. 희생자들이 마사지 스파라는 민감한 업종에 종사했지만, 기자가 취재한 어떤 유족도 실명 공개와 관련해 당국으로부터 동의 요청을 받지 않았다.


미국 언론이 범죄 피해자나 희생자, 용의자들의 실명을 거의 마음대로 공개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미국 법률 전문가들과 언론 학자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사당국의 조서나 기소장, 법원 소송문서 등 '공적인 기록(public record)'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모두 공개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단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인 영역에서 남겨지는 기록은 국민 모두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구 지역 구치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얼굴과 실명이 공개된 '머그샷 매거진' (사진=newswest9.com)

미구 지역 구치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얼굴과 실명이 공개된 '머그샷 매거진' (사진=newswest9.com)


비영리 언론기관인 ONA(Online News Asscociation)는 실명 공개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통해 "법원과 경찰 등 공적 시스템의 기록(실명을 포함한)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공중(public)이 이 시스템을 감시하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실명 공개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언론도 이러한 무제한 실명 공개에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몇 차례 예외가 있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실명은 여전히 비공개가 원칙이며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 역시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특히 AP통신은 지난해 6월 "경범죄(minor crimes)에 대해서는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보도 규칙을 발표했다. 주로 지역 사회에서만 관심을 갖는 소규모 범죄의 용의자 실명은 전국적인 뉴스가치(newsworthy)가 없고, 온라인 상에 영구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지역내 취업이나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보통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는 유죄 선고 여부를 후속 취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죄를 받은 사람도 범죄자로 오인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신은 "용의자 실명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은 경범죄 뿐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살인 등 중요한 범죄에 대해서는 체포 단계부터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연은 1994년 서울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애틀랜타 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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