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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기자, 尹 인터뷰 원문 이례적 공개...왜?
기자명 애틀랜타=이상연 기자   입력 2023.04.25 14:42  
 
"주어를 빠뜨렸다고?"…미국 정치인들 WP정확성 인정
WP와 NYT 내부 스크린 '깐깐'...불확실하면 재확인
편집 방향 비난한 트럼프도 정확성엔 시비 안걸었는데...
 
워싱턴포스트 본사.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워싱턴포스트 본사.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지난달 미국 애틀랜타 프레스 클럽이 조지아주 하원의장인 존 번스를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번스 의장은 스포츠 도박 허용법안 등의 현안을 설명했는데, 지역 유력지 AJC(애틀랜타 저널-컨스티튜션)의 정치 담당기자인 그레그 블루스타인이 현장에서 취재를 했다. 
 
조지아 주지사와 연방의원들도 어려워 하는 베테랑 기자인 블루스타인은 번스 의장의 발언을 취재 수첩에 적는 대신 자신의 스마트폰애 녹음하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앱은 즉석에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것으로 번스 의장의 발언은 모두 음성과 텍스트로 스마트폰에 기록되고 있었다. 
 
미국의 유력지 기자들은 인터뷰 기사 등을 작성할 때 취재원의 발언을 가능한 그대로 기사에 옮겨 적는다. 긴 인터뷰 내용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선별하기는 하지만 한국 기자들이 하는 것 처럼 취재원이 말한 문장과 단어를 임의로 고치거나 자신의 논리구조에 맞춰 의역해 적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취재원이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사용했거나 철자가 틀린 단어를 썼더라도 그대로 기사에 반영한다. 틀린 문장이나 단어 뒤에는 (sic)이라는 라틴어를 사용해 취재원의 발언에 원래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한다. 
 
또한 미국 기자들은 취재원이 주어나 목적어를 빠뜨렸거나 문장에서 지칭하는 사람이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이를 확인하도록 훈련받는다. 여당인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주어가 빠졌다"고 주장했던 워싱턴포스트의 윤석열 대통령 인터뷰 기사 원문에도 이같은 훈련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기사에서 문제가 됐던 원문은 <“Europe has experienced several wars for the past 100 years and despite that, warring countries have found ways to cooperate for the future,” he said. “I can’t accept the notion that because of what happened 100 years ago, something is absolutely impossible [to do] and that they [Japanese] must kneel [for forgiveness] because of our history 100 years ago.> 이다. 
 
기사에는 'they'라는 주어 뒤에 괄호를 넣어 일본인(Japanese)라는 설명을 추가했고, 무릎을 꿇다는 의미의 kneel 동사 뒤에는 '용서를 위해'라는 의미를 더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원문에서 이들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불명확했기 때문에 이를 다시 물어 대상을 확인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가장 논란이 된 이 문장의 주어에는 괄호나 별다른 설명없이 윤 대통령 자신을 말하는 단어 'I'(나)가 사용됐다. 무릎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윤석열 대통령 자신임을 기자가 분명히 들었다는 의미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말한 '받아들이는 주체'는 일본이었는데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를 작성한 미셸 리 기자는 곧바로 트위터를 통해 윤 대통령과의 인터뷰 녹취록을 공개했다. 미셸 리 기자 또한 윤 대통령의 인터뷰를 녹음한 것이다. 미셸 리 기자는 한인으로 워싱턴포스트 동아시아 지부장을 맡고 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정말 100년 전의 일들을 가지고 지금 유럽에서는 전쟁을 몇 번씩 겪고 그 참혹한 전쟁을 겪어도 미래를 위해서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하는데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윤 대통령의 발언이 오역됐다고 주장하던 여권은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셸 리 기자는 한인여성 4명이 사망한 지난 2021년 3월 애틀랜타 총격사건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취재를 위해 필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총격 사건 특별취재팀을 이끌던 선임기자였는데, 필자의 워딩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사에 대한 내부 스크린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세계적 권위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미국 정치인들도 기사의 권위에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이들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편집의 편향성은 비난했지만 기사 자체의 정확성에는 시비를 걸지 못했다. 미셸 리 기자 처럼 취재과정의 녹취록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한국 여당인 국민의힘의 주장이 자신의 기사와 워싱턴포스트의 정확성과 권위에 흠집을 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셸 리 기자의 트위터 프로필에는 전설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이었던 벤 브래들리의 명언이 적혀 있다. "진실은, 아무리 나쁜 것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거짓보다 위험하지 않다(The truth, no matter how bad, is never as dangerous as a lie in the long run)". 
 
이상연은 199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애틀랜타 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며, 뉴스버스 객원특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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