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징계시효 3년인데…이태원 손 놓은 감사원 “정치적 공방 불러”
감사원 “올해 안에 감사 결과 안 나와”
김남일 기자 수정 2024-10-30 08:49 등록 2024-10-30 06:00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국회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국회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재난·안전관리 체계 감사에 착수한 감사원이 참사 책임자를 가려낼 직무감찰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공무원법의 징계 시효는 3년이다. 참사 발생 2년이 지났지만, 이태원 참사 자체에 대한 직무감찰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이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감사가 아닌 정부 재난 대응 시스템 전반으로 뭉뚱그려 감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참사 2주기인 29일 저녁 “그간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형사처벌 위주의 책임 규명 등 정치적 공방에 휩싸였다”고 주장하며 “현재 감사는 이태원 참사에 한정하지 않고 대형 재난 전반에 대한 원인 분석과 근본적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의견 청취 등을 하고 있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2022년 10월29일 밤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 등을 가려내는 감사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법은 감사를 직무감찰과 회계검사로 구분한다. ‘책임 규명’을 통한 징계·고발 등을 전제로 하는 감사원 핵심 기능인 직무감찰이 ‘정쟁’을 부른다는 ‘자폭성 주장’인 셈이다. 앞서 감사원은 이날 오전 한겨레에 “감사 결과는 올해 안에 나오기 어렵다. 이태원 참사 관련 감사가 포함됐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감사원 스스로 핵심 기능 ‘자폭성 부정’
 
그간 감사원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과 책임을 따져 문책 요구를 하는 구체적 감사와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는 포괄적 감사를 병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전례에 따라 애초 2023년 연간 감사계획에 이태원 참사가 포함됐는데, 감사원은 ‘이태원’이 빠진 ‘재난·안전관리 체계 점검’으로 감사 명칭을 뭉뚱그린 뒤 “언제 할지 타이밍을 보고 있다”(최재해 감사원장)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자 참사 1주기 직전인 지난해 10월25일에야 뒤늦게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감사는 처벌이 가능한 사람만 들여다보는 수사보다 넓은 범위의 원인 조사와 관련자 문책, 제도 개선안 마련이 가능하다. 최근 이태원 참사로 기소됐던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 1심 무죄가 선고됐지만, 진작에 감사가 이뤄졌다면 이들을 비롯해 그 윗선까지 행정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날 감사원이 내놓은 자료에서 보듯 이태원 참사 관련 내용이 부실하거나 책임자를 가려낼 조사 내용이 아예 없을 가능성이 크다. “책임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한다”(윤석열 대통령)는 책임 규명 자체가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이 정한 징계 시효는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이다.
 
이 감사는 감사원 행정안전감사국 행정안전1과가 맡고 있다. 부실·허위·봐주기 감사 논란을 빚고 있는 대통령실·관저 이전 의혹 감사를 한 곳이다. 감사원 실세로 불리는 유병호 감사위원의 측근 라인 ‘타이거파’가 포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태원 참사 2주기인 29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2주기인 29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년 전엔 세월호 감사 2주 만에 착수·50명 징계 요구
 
세월호 명칭이 들어간 감사 결과가 참사 6개월 만에 나온 것에 비춰보면, 이태원 참사 감사는 착수 과정, 진행 속도, 감사 내용 모두 정상적 감사와는 다르다.
 
감사원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발생 2주일 만인 4월29일부터 예비조사를 했다. 55명의 감사 인원을 투입해 5월14일부터 6월20일까지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등을 대상으로 실지감사를 했다. “사고 발생 원인과 책임을 규명해 향후 유사 사고 재발을 방지하고, 정부 대응역량 제고를 위한 개선책 마련”을 감사 이유로 밝혔다. 7월8일에는 “국민적 불신이 고조되고 있다”며 감사진행 상황을 중간 발표하기도 했다.
 
세월호 감사는 △초동대응 및 구조활동 분야 21개 항목 △선박 도입 및 검사 분야 19개 항목 △연안여객선 안전운항 관리감독 분야 14개 항목 △재난대응체계 분야 13개 항목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감사원은 그해 10월10일 최종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관련 공무원 50명의 징계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29일 “그간 누구 잘못인지 정치적 공방에 휩싸여 대형 참사 재발 방지의 핵심 요소인 과학적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에는 무관심했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10년 전 감사원의 감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다.
 
이태원 참사 감사 역시 세월호 감사와 같은 속도와 내용으로 진행됐어야 하지만, 감사원은 지난해 2월 연간 감사계획 브리핑에서 ‘이태원 관련 구체적 감사계획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최달영 당시 기획조정실장(현 사무총장)은 거짓 언론브리핑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는데, 경찰은 올해 6월 말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 정도 사안이면 무고죄로 처벌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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