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대한민국' 베트남 민간학살 항소심서 완패
서울중앙지법, 1968년 퐁니퐁넛 당시 '가해자는 대한민국 군' 인정… "원혼들도 기쁠 것"
25.01.17 16:09 l 최종 업데이트 25.01.17 16:09 l 박소희(sost)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2심 선고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원고인 응우옌씨가 화상을 통해 승소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2025.1.17 ⓒ 연합뉴스
화상연결된 응우옌티탄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두 손을 맞잡은 그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도 많이 떨렸는데, 오늘 승소 소식을 접하게 되어 너무도, 너무도 기쁘다"고 말했다.
1968년 2월 12일, 그와 가족이 살고 있던 베트남 퐁니마을이 불탔다.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에 당시 7세였던 응우옌티탄은 가족 5명을 잃었고, 본인도 배에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이후 그는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 학살의 진실을 알리고자 힘썼고, 2020년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2월 1심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 대한민국'에게 3000만 100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었다.
여느 국가배상소송처럼 피고 대한민국은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 원고와 원고 가족 등 퐁니마을 주민을 공격한 세력이 대한민국 해병이 아니라 북한군이나 베트콩이 위장했을 수 있고 ▲ 이 사건 배상책임 시효가 끝났으며 ▲ 베트남전 당시 대한민국과 남베트남 또는 미국 사이의 협정 등에 의해 베트남 국민 개인은 대한민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 이 사건에 국가배상법 등 대한민국의 법률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 중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증거들을 토대로 '위장 공격'의 가능성은 충분히 배제됐다며 학살의 가해자는 대한민국 군이 맞다고 판단했다. 또 교전 상황 등이 전혀 없는데도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는데 가해 부대원들이 당시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이고, 이들의 작전 수행과 살상행위가 연관이 있으므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봤다. 또 응우옌티탄이 당시 너무 어렸고, 홀어머니마저 잃은 데다 국교 단절 등으로 손해배상청구가 어려웠던 점 등을 볼 때 소멸시효가 완성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항소심은 또 대한민국과 남베트남 또는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의 협정 등에서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 군으로 인해 베트남인들이 피해를 볼 경우 이를 구제할 절차를 두고 있지만, 개인이 대한민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권한을 배제한다는 내용은 따로 없다며 응우옌티탄의 청구권도 인정했다. 파병이라는 국가의 권력 작용으로 인해 발생한 사안이므로 대한민국의 국가배상법이 당연히 적용된다고도 선언했다.
"한국 사회, 이 판결 중요한 교육자료로 삼아야"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2심 선고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원고인 응우옌씨가 화상을 통해 승소 소식을 들은 뒤 소송을 도운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네트워크' 관계자들과 기뻐하고 있다. 2025.1.17 ⓒ 연합뉴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일원으로 소송을 대리해온 임재성 변호사는 선고 후 서울법원종합청사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고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한국 사법부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드디어 공식적으로 인정을 했고, 이제 어떻게 우리 공동체가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할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 사회가 이 판결을 아주 중요한 교육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키는 힘이란 것은 아주 강력한 무기와 잘 무장된 군인뿐만 아니라 고민하고, 판단하고, 성찰하는 군인들이 우리 사회를 지킨다는 것을 최근에 목도한 바 있습니다. 만약 대한민국 군인이 이 판결을 각급에서 배우고 고민하고 성찰한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사회에서 이런 것들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성숙한 사회,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힘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원고' 응우옌티탄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재판부가 잘 살펴주시고 이러한 판결을 내려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한국 정부에서도 퐁니퐁넛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사건 피해자들도 잘 살펴봐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참 힘겨운 시간이 많았는데 너무 기쁘고, 저와 함께 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오늘의 승소로 그날 희생된 원혼들도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한편 베트남전 당시 대한민국 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진상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2023년 강민정·윤미향 의원은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민간인 학살 등을 조사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내용으로 각각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지난해 문을 연 22대 국회에선 아직 발의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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