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군검찰 '박정훈 무죄 항소' 주장, 국방부 보고서와 충돌
입력 2025.03.12 17:29 유선의 기자 JTBC
 
박주민 의원 "1심 무죄 판결 나오자 뜬금없이 절차 핑계…군검찰, 공소 취소해야"
박은정 의원 "한 페이지 차이로 스스로 주장 충돌하는 항소이유서 처음 봤다"
박정훈 1심 무죄 판결에도…채 상병 순직·수사 외압 의혹 수사 사실상 중단 상태
 
지난 1월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혐의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수사단장) 〈출처=연합뉴스〉
지난 1월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혐의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수사단장) 〈출처=연합뉴스〉
 
군검찰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대령에 대한 항명·상관명예훼손 혐의 1심 무죄 선고에 항소하면서 앞서 민·관·군 합동위원회에 보고된 국방부 문건 내용과도 충돌하는 주장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JTBC는 군검찰이 지난 5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입수했습니다. 해당 문건에는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군사법원이 사실을 오인하고 있다면서 "2022년 7월 개정된 군사법원법 시행 이후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범죄의 이첩에 관해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적혀 있습니다.
 
군사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 대령에게 "혐의자를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사실을 인정했는데, 군검찰은 그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군사법원법상 이첩 관련 내용이 불명확한 상태이기 때문에 혐의자를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는 유 전 법무관리관의 의견은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입니다.
 
국방부 법무 관련 사안의 총책임자인 법무관리관이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혐의자를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은, 당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있던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의 혐의를 제외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쟁점이 됐던 사안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안을,
 
① 개정 군사법원법 자체가 불명확한 상태였다
② 따라서 '혐의자를 단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건 문제가 없다
 
는 논리를 들고나와 '군사법원이 사실을 오인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국방부가 민·관·군 합동위원회에 제출한 문건 일부, 개정 군사법원법상 민·군 조사범위와 역할을 명확화하는 작업이 '완료됐다'고 적혀 있다 〈출처=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국방부가 민·관·군 합동위원회에 제출한 문건 일부, 개정 군사법원법상 민·군 조사범위와 역할을 명확화하는 작업이 '완료됐다'고 적혀 있다 〈출처=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민·관·군 합동위원회 제출 문건엔 '명확화 완료'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려면 '개정 군사법원법 자체가 불명확한 상태였다'는 전제가 사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주장과 정면충돌하는 국방부 문건이 확인됐습니다.
 
JTBC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 소속 군인권총괄담당관이 지난 2023년 8월 민·관·군 합동위원회에 제출한 '과제별 세부 시행계획 종합' 문건도 입수했습니다.
 
해당 문건에는 개정 군사법원법이 입법 예고된 2022년 1월부터 대통령령이 시행되는 2022년 7월까지 군 사망사고에 대한 민·군 조사범위와 역할을 명확하게 한다는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고, 심지어 "완료됐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군검찰이 언급한 개정 군사법원법에는 '군 사망사건 등 군사법원이 관할하지 않는 범죄는 지체 없이 민간으로 이첩해야 한다'고 돼 있고, 군과 민간이 어디까지 조사해야 하는지, 채 상병 순직 사건 1년 전인 2022년 7월에 이미 '명확화'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군검찰은 항소이유서에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범죄의 이첩에 관해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적었습니다. 국방부가 민·관·군 합동위원회에 공식 제출한 문건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인데, 군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의 소속된 국방부는 물론 거짓된 내용을 보고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민·관·군에 전부 책임을 물어야 할 판입니다.
 
박주민 의원은 "군검찰이 박 대령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이 나오자 뜬금없이 이첩 관련 절차가 불분명하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군이 스스로 터무니없는 기소였음을 고백한 것"이라면서 "군검찰이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도 살아있다면 지금이라도 박 대령에 대한 공소를 취소해야 마땅하다"고 밝혔습니다.
 
명시적 지시 아니어도 회의에서 논의된 건 명령?
 
군검찰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의 '이첩 보류 명령'과 관련해서도 군사법원이 사실을 오인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군사법원은 "김 전 사령관이 이첩을 (2023년 8월 2일이 아닌) 8월 9일에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명확하게 (지시를) 했다기보다는 박 대령을 포함한 사람들과 토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애초 김 전 사령관이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 대령이 항명했다고 볼 수 없다(무죄)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검찰은 "구체적·개별적 명령인지 여부는 드러난 어투와 형식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과 문맥을 파악해야 한다"면서 군사법원의 판단이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의 및 토의 석상에서 특정한 인원(박 대령)에게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해당 회의 및 토의 석상에서 논의된 사항은 당시 회의 참석자들 모두에게 내리는 명령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부대에 방문한 상급 지휘관이 하급 지휘관 및 참모, 기타 부대원들 앞에서 '전투준비태세를 잘 완비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걸 명령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상급자가 회의 중에 한 말은 명령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같은 문건(항소이유서) 바로 다음 페이지(36쪽)에는 "항명죄에서의 '구체적인 의무'는 작위 또는 부작위 의무의 시기, 방법, 내용 등이 구체적이고 특정돼 있는 것을 말한다(고등군사법원 2012.8.21. 선고 2012노45 판결)"고 적혀 있습니다.
 
이 부분 군검찰의 주장을 간략히 정리하면,
 
① 35쪽 "구체적·명시적 지시가 없어도 명령으로 봐야 한다"
② 36쪽 "시기와 방법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어야 명령이다"
 
가 됩니다. 항소이유서를 확인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군검찰이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자고 억지로 항소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불과 한 페이지 차이로 스스로의 주장이 충돌하는 항소이유서는 검사 생활하면서 처음 봤다"면서 "허술한 항소장으로 군검찰이 시간과 인력을 낭비해 2심에서 패소하는 건 자유지만 그 과정에서 박 대령이 겪는 고통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9일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지난 9일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1심 재판 주장 반복에 불과…무죄 안 바뀐다"
 
박 대령을 대리해 군사법원에서 군검찰을 상대로 무죄를 끌어낸 김정민 변호사는 군검찰의 항소이유서에 대해 "새로운 증거나 진술 없이 1심 재판 때 했던 주장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항소심에서 군사법원의 판단(무죄)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박 대령 재판을 제외한 나머지 수사가 사실상 멈춰있다는 점입니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은 크게 세 갈래로 진행돼왔습니다.
 
① 채 상병 순직 사건 : 경찰 수사 결과에 유가족 이의신청 → 대구지검 수사 중
② 수사 외압 의혹 사건 : 공수처 수사 중
③ 박 대령 항명·상관명예훼손 혐의 재판 : 1심 무죄 → 항소심 시작 전
 
이 가운데 유일하게 결론이 나온 '박 대령 1심 무죄' 선고로,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2023년 8월부터 진행해온 '수사 외압 의혹 사건 수사'도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군사법원이 'VIP 격노설' 등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김 전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부당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수사 외압 의혹 사건(해병대수사단이 임성근 전 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로 이첩하려던 것을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한 뒤 국방부 수뇌부가 개입해 이첩이 보류됐다는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와 의혹의 시발점인 윤 대통령 등에게 직권남용 등 혐의 적용이 가능해졌다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12·3 내란사태 이후 관련 수사에 들어가면서 수사 외압 의혹 사건 수사를 사실상 멈춘 상태입니다.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대구지검도 지난해 11월 채 상병 소속 대대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뒤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금까지 세 차례 국회를 통과했지만 모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야6당은 지난달 28일 네 번째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했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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