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시대, 방송 PD가 사는 법
MB 시대 주요 방송사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은 찬밥 취급을 받았다.
제작진은 다른 부서로 발령났고, 프로그램은 축소되었다. 이들의 수난사가 곧 한국 언론의 수난사였다.
기사입력시간 [234호] 2012.03.12 09:09:52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MBC, KBS에 이어 YTN 노조가 파업을 선언했다. 3개 방송사의 연대 투쟁을 앞둔 시점, 이들 방송사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이 정부 들어 간판 시사 프로그램이 홀대받았다는 점이다. 이들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벌어진 양태도 비슷하다. 친정부 성향의 사장 취임,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의 인사 조처, 그리고 프로그램 축소까지.
<시사기획 쌈>에 주로 프로그램을 내놓았던 KBS 탐사보도팀, MBC <PD수첩>, YTN <돌발영상> 등 3사를 대표하던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의 지난 4년간의 수난기를 들여다봤다.
KBS 탐사보도팀
김용진 기자가 울산 발령 소식을 들은 건 2008년 9월. 수원의 한 연수원에서였다. 부산으로 발령이 난 지 사흘 만이었다. 이미 KBS 부산총국장과 어느 부서로 합류할지 상의를 해둔 뒤였다. 사흘 만의 번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3박4일 연수가 끝난 뒤 출근한 울산보도국도 갑작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해 9월. 김용진 기자는 한 달 사이 세 번 인사발령을 받았다.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부산총국→울산총국 순서였다. 2005년 4월에 KBS 보도국 내 탐사보도팀으로 온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정연주 사장 재임 시절, 뉴스의 심층성을 강화하기 위해 탄생한 탐사보도팀. 그는 여기서 사안에 따라 짧게는 2주일, 길게는 1년 넘는 시간을 들여 취재를 해왔다. 탐사보도팀은 <외환은행 매각의 비밀> <김앤장을 해부한다> <고위 공직자, 그들의 재산을 검증한다> 등 굵직한 기획으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만 20여 차례 탄 것을 비롯해 주요 기자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고공비행을 하던 탐사보도팀의 운명이 바뀐 것은 정연주 사장이 퇴진한 뒤부터였다. 2008년 8월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 뒤 탐사보도팀 기자 14명 중 6명이 다른 부서로 전출됐다. 대표적으로 최경영 기자는 비취재 부서인 스포츠중계 파트로, 성재호 기자는 사회부로 자리를 옮겼다.
‘보복 인사’라는 말이 돌았다. 인사 대상자 97명 중 47명이 정연주 전 사장 해임과 이병순 사장의 취임에 반대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투쟁’(사원행동) 소속이었다. 탐사보도팀 팀원 일부가 핵심 멤버였다. 윗선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탐사보도팀은 대선 후보 검증 기획을 통해 이 대통령의 자녀 위장취업 문제, 부동산 문제 등 여러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최경영 기자는 스포츠중계팀으로 발령 난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보도국은 4층, 스포츠중계팀 최 기자의 자리는 5층이었다. 곧 퇴직을 앞둔 선배 기자 두 명과 컴퓨터그래픽 요원들만 있는 작은 방이었다. 사실상 ‘대기발령’이라는 게 실감났다. 탐사보도팀에서는 고위 공직자의 재산을 검증하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떼는 데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실명 보도의 원칙을 칼같이 지켰다. 이달의 기자상을 6회 수상한 기자였지만 중계팀으로 이동한 뒤, 취재할 기회는 없었다. 2009년 미국 연수를 떠났다. 지난해 돌아왔지만 자리는 그대로다.
성재호 기자는 사회팀 법조 출입으로 자리를 옮겨 4개월가량 일하다가 뒤늦게 해임되었다. ‘사원행동’ 당시의 일로 양승동·김현석 기자가 파면될 때 함께였다. 이후 정직으로 징계 수위는 줄었지만 지난해 새노조가 출범한 이후에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정직 5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들이 떠난 후 탐사보도팀은 계속 축소됐다. <시사기획 쌈> 제작팀과 합쳐지고, <시사기획 KBS10> <시사기획 창> 등 이름이 바뀌는 동안 보도국에서 시사제작국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인원도 줄었다. 2009년 라디오 뉴스편집국으로 옮긴 이진성 기자는 대휴를 내고 쉰 다음 날 갑작스레 전출 명령을 받았다. 이병도 기자 역시 “탐사보도팀에서 더 일하길 희망했으나 인원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전출됐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0년 초, 탐사보도팀 출신으로 마지막까지 팀에 남은 기자는 박중석·정수영·김태형 씨였다. 이들의 마지막 작품은 ‘학자와 논문’ 편으로, 서울대 출신 공직자·국회의원 등의 논문을 일일이 점검해 이중 게재 실태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박재완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논문 이중 게재 의혹이 밝혀졌다. 반향을 일으킬 만한 특종이었지만 <9시 뉴스>에는 누락되었다. 통상적으로 뉴스 가치가 높을 때 탐사보도팀의 발굴 기사가 뉴스 앞쪽에 배치되던 관행과는 달랐다. 당시 KBS 노조는 이화섭 당시 보도제작국장과 박 수석의 친분 정황을 제시하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그 기획을 끝으로 박중석 기자는 경제부를 거쳐 지난해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에 부임했다. 지난 2월29일, 연락을 시도했을 때 그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있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슈를 취재 중인 박 기자의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역력했다. 현재 그는 전국언론노조가 만드는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그간 지상파 뉴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4대강 누수 실태 현장 등을 찾아다니며 보도하기도 했다. “취재 환경은 열악하지만 성역 없이, 자기 검열 없이 아이템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
김용진 기자 역시 <뉴스타파> 자문을 맡고 있다. 지금 돌아봤을 때 가장 아쉬운 건, 몇몇 기자의 발령이 아니라 탐사보도팀의 해체였다.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더라도 조직 자체를 허물어뜨린 건 경영진의 실책이라는 판단이다. 그만큼 KBS의 경쟁력이 무너진 셈이기 때문이다. 3월2일부터 제작 거부에 돌입한 KBS 새노조가 회사 측에 요구한 조건 중에는 탐사보도팀 부활이 들어 있다.
MBC <PD수첩>
최승호 PD는 <PD수첩>을 떠난 뒤, 몸이 편해졌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이제 사고를 덜 치겠구나 싶은 마음에서다. 주말에도 쉬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뭔가 거세당한 느낌이었다. 특히 의뭉스러운 일이 터질 때 그랬다. 내곡동 대통령 사저 건이 대표적이다. ‘현장에 가야 하는데.’ 이런 초조함이 지난 1년, 26년차 PD 최승호를 엄습했다.
최승호 PD는 지난해 2월, 아침 방송 외주제작관리 부서로 옮겼다. <PD수첩>을 거쳐간 김태현 ·한학수·최승호 PD 세 사람이 나란히 같은 부서에 터를 잡았다. 외주 프로그램인 아침 방송을 감수하는 일을 맡았다. 최 PD 스스로 “문제아 세 명을 한데 모아놓고 수갑을 채워놓았다”라고 표현했다.
김재철 사장 취임 후 1년 만에 난 인사였다. KBS가 사장 교체 직후 인사를 단행한 데 비해, MBC에는 1년간의 유예기간이 있었다. 사장과 국장단 사이 어느 정도 긴장 관계가 유지되던 2011년 2월,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그는 갑자기 전에 없던 인사 기준을 세웠다. 시사교양국 내 한 프로그램에서 1년 이상 재직한 자는 예외 없이 부서를 옮긴다는 방침이었다. 당시 <PD수첩> 취재진 11명 중 김태현·최승호·홍상운·오행운·박건식·전성관 PD 6명이 다른 곳으로 옮겼다. 시사교양국에 남은 PD 5명 중 4명도 그 후 자리를 옮겨 1년이 지난 현재 이미영 PD 한 사람만 남았다.
제작국 내부에서는 최승호 PD를 겨냥한 인사라고 입을 모았다. 2010년 검찰과 스폰서 간 권력형 비리를 다룬 ‘검찰과 스폰서’로 큰 파문을 일으킨 최 PD는 이후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통해 4대강 사업의 대운하 의혹을 제기했다. 국토해양부는 방송 내용이 허위라며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하지만 회사 측은 자체적으로 방영 보류를 결정했다. 불방 이후 내부 파문이 커졌다.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를 다룬 방송이 불방돼 제작 거부를 한 지 20년 만이었다.
당시 책임 프로듀서였던 김태현 PD는 대폭적인 인사에 당황했다. 팀장인 본인의 전출은 예상했지만 절반이 교체될 줄은 몰랐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1년은 걱정이 많은 시기였다. 어떻게 제목을 뽑으면 사장·국장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이 늘었다. 지금도 아쉬운 건 공정사회와 청와대를 주제로 한 2부작 기획이 1부로 줄어든 것이다.
<불만제로>에 간 오행운 PD 역시 강제 발령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뒤를 이어 자리한 후임 PD들이 걱정이다. 그는 “보도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응기가 필요할 텐데 당시 핵심 전력이 빠진다는 등 보도가 수차례 나가 후임이 큰 부담을 가졌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6명의 인사 발령 이후에도 수난은 이어졌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루고 남북경협 중단 1년 아이템을 취재하던 이우환 PD를 회사 측이 용인 드라미아개발단으로 발령을 냈다. 한학수 PD를 경인지사 홍보조직으로 발령을 내면서였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둘 다 복귀했지만 회사와의 대립이 이어졌다.
지난해 3월 최승호 PD(왼쪽) 등 ⓒ시사IN 윤무영
남은 PD들은 국장 선의 취재 개입 정도가 더 커졌다고 말한다. 휴먼 다큐 <그날>로 자리를 옮긴 김동희 PD는 <PD수첩>에 있을 당시 징계위에 회부될 뻔했다. 그에 따르면 기획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모든 취재가 금지됐다. 김 PD가 남북경협과 관련해 취재원과 접촉한 사실도 문제가 됐다.
최승호 PD는 지난해 12월 <MBC 스페셜> 로 옮겼다. <PD수첩>은 아니지만 시사성 있는 아이템을 다룰 수 있는 자리다. 최근 그는 한국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천착 중이다.
YTN <돌발영상>
YTN의 <돌발영상> 화제작 중 하나는 2008년 3월 방영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다. 천주교 사제단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인사 명단을 발표하기 1시간 전,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미리 해명을 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돌발영상>은 이 과정을 포착했다. 제목은 미리 일어날 범죄를 예측하는 내용이 담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따왔다.
청와대 측은 엠바고를 깼다며 비판했지만 반향이 일었다. 이 영상을 제작한 <돌발영상> 제작진은 임장혁 당시 팀장을 비롯한 정유신·정병화 기자 등 기자 3명을 비롯해 작가 4명이었다. 2003년 당시 YTN 노종면 기자가 처음 만들었던 <돌발영상>은 메인 뉴스에서 다루지 못했던 화제의 뒷얘기를 화면에 담았다.
사랑받던 <돌발영상>의 운명은 2008년을 기점으로 갈렸다. 그해 7월, MB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이 취임하면서 사원들이 출근저지 투쟁을 벌였다. 이후 9월 투쟁에 참여한 <돌발영상>의 정유신 기자가 해직되고, 임장혁 팀장이 정직 처분을 받았다. 남은 PD 1명으로는 제작을 이어갈 수 없어서 10월8일 ‘블랙코미디’ 편을 마지막으로 방송이 중단됐다.
2009년 1월 KBS 부당징계 규탄 결의대회에서 성재호 기자(왼쪽) 등 징계 당사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임장혁 기자는 종종 농담으로 자신을 ‘그림자’라고 표현한다. 6명의 YTN 해직 기자처럼 전면에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그들 뒤에서 드러나지 않게 고생을 많이 했다. 해고자도, 재직자도 아닌 가혹한 운명이었다. 임 기자는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은 이후 복직→대기발령→복직→정직 2개월 등 연달아 징계를 받았다. 현재는 YTN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다.
그는 복직한 뒤 <돌발영상>을 부활시켰다. 그사이 구본홍 사장은 배석규 직무대행으로 바뀌었다. 배 대행은 2009년 다시 한번 그를 대기발령을 낸다. 배 대행이 경찰의 쌍용차 노조 진압을 다룬 <돌발영상>이 악의적으로 제작됐다고 비판하자, 임장혁 기자가 배 대행을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고소한 뒤였다.
임장혁 기자는 다시 복직한 뒤 사회부에서 환경부 등을 출입했다. 16년차인 그가 주로 2~3년차 젊은 기자들이 출입하는 서울시교육청에 배치됐다. 이후 국제부로 옮겼다.
<돌발영상>팀에 있다가 해직된 정유신 기자는 YTN 해직 기자 6명 중 막내다. 재직 당시 촛불집회에서 물대포를 쏘는 경찰들의 돌발 영상을 담아냈다. 노조 집행부에 오른 건 우연이었다. 당시만 해도 노조 집행부라면 사무실에서 장기나 두고 소일거리 정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구본홍 사장 저지 투쟁에 동참하며 ‘기자로서 쪽팔린 걸’ 용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8년 9월 YTN 노조 집행부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 후 해고된 노종면 기자(맨 왼쪽) 등은 <뉴스타파>를 제작하고 있다.
현재 그 역시 노종면 해직 기자, 권석재 카메라 기자와 더불어 인터넷 방송 <뉴스타파> 제작에 참여 중이다. 지금 붙들고 있는 아이템은 종편과 관련된 내용이다. 4년 만에 오디오를 읽으니 리포팅이 어색하지만 성역 없이 아이템을 찾아 헤매다보니 안목이 느는 느낌이다. 현재 YTN 노조는 해직 기자 6명을 포함해 33명의 징계무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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