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5784&localCode=krcn



해성시 (海城市)


좌표 : 북위40도53분동경122도41분

정의 : 요령성 안산시에 속한 지급시.


해성시 시가지. 공원은 환성남로와 증가로 교차지점에 있는 노석산 공원 주변에는 주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개설


인구는 2007년 기준으로 113만 명이다. 요령성의 성도인 선양에서 남동쪽으로 120㎞ 떨어져있다. 안산시의 행정구역에 포함된다. 하위 행정구역으로 4개 가도와 23개 진을 관할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고산만족진(孤山滿族鎭), 차구진(岔溝鎭), 접문진(接文鎭), 석목진(析木鎭), 마풍진(馬風鎭), 영락진(英落鎭), 팔리진(八里鎭), 모기진(毛祁鎭), 왕석진(王石鎭), 남태진(南台鎭), 감천진(甘泉鎭), 대둔진(大屯鎭), 서류진(西柳鎭), 감왕진(感王鎭), 중소진(中小鎭), 우장진(牛庄鎭), 등오진(騰鰲鎭), 경장진(耿庄鎭), 서사진(西四鎭), 고타진(高坨鎭), 망태진(望台鎭), 온향진(溫香鎭) 등이다. 현재 면적은 2,734㎢ 이고, 인구수는 2008년을 기준으로 113만 명이다. 또한 해성시에는 장춘-대련 간 철도와 심양-대련 철도가 지나며, 흑하-대련 간 도로, 구방자-해성 철로, 대고산-번주 도로가 경계 내에 지나고 있다.


해성시는 우리 역사에서 연개소문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해성시 팔리진향 영성자촌에 있는 영성자 산성은 안시성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요령성의 조선족은 약 23만명 가량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자료에 따르면 해성시가 속한 안산시의 조선족 인구는 1만61명으로 성 내 조선족 인구의 4.37%를 차지하고 있다. 해성시에 있는 조선족 민족향은 송치자조선족만족진으로 1985년 9월에 설치되고 약 6,945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



명칭 유래


해성시 지명의 유래는 『만주지명고』에 일부 실려있다. 지각이 융기되기 이전에 이 일대가 너른 바다였으며, 지각이 융기되어 만들어진 땅이라는 의미에서 바다를 의미하는 해성을 이름으로 하였다는 설과, 해성현의 기원은 ‘해주(海州)’에서 나왔다고 하는 설이다. 925년 이곳은 발해의 영토였으며 나중에 동단국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928년 요나라 태종이 동단국 일대를 점령하자 남쪽의 해주에 살던 백성들이 이주하면서 지명도 함께 가지고 이주하여 해주라고 불렸다. 청나라 순치 황제 10년에 해주를 해성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지금의 해성시 지역은 연나라의 요동국에 속한 곳이다. 한나라 시기에는 신창(현재 감천진 향양채), 요대(현재 서사진 삼차하 동안), 안시(현재 팔리진 영성자)의 3현이 있었다. 삼국 시대 위나라가 북부를 점령하여 평주의 관할로 두었다가 후에 유주로 개칭하였다. 서진 시기에도 신창, 요대, 안시의 3현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남북조 시대(420-585)에는 고구려의 관할을 받았고, 이후 수나라 시대에도 일부 지역은 고구려의 세력권에 속하였다. 당나라 초기에도 고구려의 영토였으나 668년 고구려가 망하자 안시주를 설치하였고, 안동 도호부의 관할로 두었다. 요나라 시대에는 경내에 임명현을 설치하고, 해주 남해군의 치소를 이곳에 두었다. 선향현(발해국의 영봉현)과 석목현을 경내에 두어 동주(발해의 화산현)의 치소로 삼았다. 이들은 모두 동경도 요영부에 속하였다. 1125년 금이 요를 멸하자, 해주와 등주로 개칭되었으며, 임명과 석목의 2현을 관할하고, 금나라의 동경로에 속하였다. 1297년 원이 금을 멸망시키면서 경내의 주현을 모두 폐지하고 순검사진을 설치하면서 요양로 관할이 되었다. 명나라 시대에는 요동 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의 통치를 받았으며, 1653년 요양부 관할이 되었고, 요양부가 폐지되면서 해성은 봉천부의 관할이 되었다. 1911년 신해 혁명과 함께 봉천부 요침도에 속하였다가, 1929년 요령성의 관할이 되었다. 일제 침략기에 해성현은 봉천성 관할이었으며, 중화민국 시기에 해성현이 설치되었고, 1948년 요동성 관할이 되었다. 1954년 요동성과 요서성이 합병되어 요령성이 만들어지면서 해성현은 요양전치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1959년 안산시에 속하다가, 1965년 요남전서로 다시 복귀하였다. 1967년에 해성현은 영구시의 관할에 있다가 오늘날과 같이 안산시에 해성시가 속하게 된 것은 1973년부터이다. 1985년 해성현을 폐지하고 현급시로서 해성시가 설치되었다.


1997년 해성시는 총 면적 2,734㎢이고 인구 106만 명의 도시로서, 4개 가도, 27개 진을 관할하였다. 그러나 2002년 행정구역이 조정되어 현재 4개 가도와 23개 진이 하위 행정 단위로 해성시에 속한다.



자연환경


해성시의 지세는 동남이 높고 서남이 낮으며, 동부에선 구릉과 산지가 발달하고 있다. 서부는 대체로 평지이고, 혼하와 태자하가 시경계 안에 흐르고 있다. 연 평균 기온은 8.4℃이고 연 평균 강수량은 690㎜이다. 해성시에는 마그네슘이 많이 매장되어 있으며, 이밖에 활석, 옥석, 계석, 유화철 등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산업은 광업, 광물가공, 직물, 도자기, 건축 자재, 화학 산업 등이 발달하였다. 농산품으로는 옥수수, 쌀, 채소, 사과, 배 등이 생산된다.



현황


해성시는 요령성 남부 지역에 있으며 요동 반도의 북단을 차지하고 있다. 북으로는 안산시와 심양시에 연하여 있고, 남으로는 영구시와 대련시, 동으로는 본계시와 단동시와 접하고 있다. 북위 40도 29분-41도 11분, 동경 122도 18분 – 123도 8분에 위치한다. 동서의 길이는 80㎞, 남북의 길이는 44㎞이다. 면적은 2,732㎢이다. 2006년 말 기준 총 인구는 113만 명이다. 2002년부터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4개 시가도, 23개 진이 속하고 있다.


2000년 제5차 전국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성시의 인구는 118만1,130명으로, 그중에서 흥해가도 9만 9,456명, 해주가도 14만 469명, 향당가도 3만7,070명, 험군가도 2만5,770명, 고산만족진 2만 2,263명, 차구진 2만4,667명, 접문진 2만2,323명, 석목진 2만 9,492명, 마풍진 3만 3,987명, 십사현진 1만 3,209명, 패루진, 3만 9,860명, 팔리진 3만 7,883명, 모기진 2만 2,832명, 영락진 4만 643명, 감왕진 4만 4,631명, 서류진 7만 7,577명, 중소진 2만 3,733명, 왕석진 2만 6,960명, 남태진 5만 8,953명, 감천진 2만 4,172명, 대둔진 2만 8,533명, 등오진 5만 4,133명, 신태자진 1만 8,271명, 동사방태진 1만 6,573명, 경장진 4만 0,760명, 동사진 2만 5,326명, 우장진 3만 6,889명, 서사진 3만 190인, 망태진 2만 4,549명, 온향진 4만 136명, 고타진 1만 9,820명 등으로 분포하였다.


해성시의 유명한 관광지로는 소고산 선인동 구석기 시대 유적인 있으며, 당대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삼학사, 청나라 소제의 사당, 요나라 시대의 금탑, 철탑, 금나라 시대의 은탑 등이 있다.



참고문헌


정신철, 『중국조선족사회의 변천과 전망』(요령민족출판사, 심양, 1999)

沈林, 『中國的民族鄕』(民族出版社, 북경, 2001)

鐵木尒, 『中國民族鄕統計分析与對策硏究』(民族出版社, 北京, 2002)

김경진,「중국의 경우:민족구역자치의 실시」(민족연구』7, (경기대 민족연구소, 1999)

조선족 사이버 박물관 (http://history.zoglo.net/)

http://www.xzqh.org/html/show.php?contentid=4204



노석산 공원. 안산시 시민들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는 대표적 공원이다.



관련글

고구려,발해 답사 지역 자료  https://tadream.tistory.com/12571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