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 ‘투사’ 만든 따옴표 저널리즘… 이렇게 바꾸자
[내란 종식 이후 저널리즘]
내란 지지 세력 주장 비판·검증 없이 그대로 인용
위헌성 뚜렷한 비상계엄 선포 ‘여야 공방’으로 처리
전한길 단순 따옴표 기사 664건… 비판 맥락은 93건
“선동성 주장에는 ‘황당하다’, ‘근거 없다’ 단서 달아야”
기자명 박재령, 윤수현, 금준경 기자 ryoung@mediatoday.co.kr 입력 2025.04.30 09:27 수정 2025.04.30 11:25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윤석열 전 대통령, 전한길 한국사 강사. ⓒ연합뉴스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윤석열 전 대통령, 전한길 한국사 강사. ⓒ연합뉴스
 
전한길씨를 내란 옹호의 ‘상징’으로 만들고 극우세력 결집에 기여한 건 ‘언론’이다. 전씨가 유튜브에서 내란을 지지한 이후 영상 혹은 집회 발언이 있을 때마다 ‘따옴표’ 기사가 쏟아졌다. 미디어오늘이 99일 동안 전씨 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 전씨의 발언을 그대로 전한 ‘따옴표’ 기사는 664건에 달했는데 비판 맥락을 담은 기사는 93건에 불과했다.
 
위헌성이 뚜렷했던 비상계엄 선포가 ‘여야 대립’처럼 보도됐다. 내란죄 피의자들의 거짓말도 ‘할 수 있는 주장’처럼 여겨졌다. 보수 정당이 정치적 득실에 따라 내란을 포장하기 시작하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누군가의 주장을 인용해 전하는 것은 허위나 왜곡보도가 아니라는 언론의 관행적 사고가 문제를 키웠다.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든 국면 때마다 언론의 고질적 문제, ‘따옴표 저널리즘’과 ‘기계적 중립’이 자리잡고 있다.
 
언론 이용한 내란죄 피의자들의 거짓말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잇따라 담화문을 발표하며 내란을 정당화했다. 1차 담화문(12월3일)과 2차 담화문(12월4일)은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후에 나온 3차(12월7일), 4차(12월12일), 5차(12월14일) 담화문은 사실관계가 틀린 일방적 주장들로 가득했다.
 
특히 지난해 12월12일 이뤄진 담화를 놓고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법적 권한 행사”, “야당의 패악 경고하려 계엄한 것”, “국회는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 파괴하는 괴물” 등의 따옴표 제목들이 쏟아졌다.
 
▲한남동 관저를 나서는 윤 전 대통령. ⓒ연합뉴스
▲한남동 관저를 나서는 윤 전 대통령. ⓒ연합뉴스
 
“주권 침탈 세력 준동에 한국 위험”(1월1일), “이 나라에 법이 무너졌다”(1월15일), “내 고통보다 나라 앞날 걱정”(1월28일) 등 지지자들을 향한 윤 전 대통령의 편지·페이스북 메시지도 무수한 따옴표 제목을 낳았다. “의원을 끌어내라고 한 적 없다”는 식의 내란죄를 피하려는 주장도 그대로 인용됐다.
 
내란죄 피의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은 지난 1월 다수 매체의 출입을 배제한 채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판적인 언론의 질문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였다. 언론현업단체들이 “어떤 언론도 내란범의 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 성명을 냈지만 일부는 따옴표 제목을 그대로 냈다.
 
▲지난 1월23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헌재 변론영상
▲지난 1월23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헌재 변론영상
 
지난 2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49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 중 나온 기사 8187건을 분석한 결과 31.5%에 해당하는 2581건이 윤 전 대통령 측을 그대로 전한 ‘따옴표’ 기사로 분류됐다. YTN(243건), 뉴스1(210건), 뉴시스(175건) 등 뉴스통신사의 따옴표 기사의 비중이 높았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퀄리티 저널리즘’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따옴표를 쓰지 않는 게 맞다. 어떤 사람의 주장이 맞는지 안 맞는지 진실을 찾아가며 기사를 쓰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라며 “해외 유력 언론은 따옴표 제목이 실제로 없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따옴표 제목이 한 달 한 건에 불과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한길씨 직·간접적 비판 담은 보도 12%에 불과
 
내란죄 피의자들뿐이 아니다. 내란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발언도 시시각각 전해졌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대표적이다. 미디어오늘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104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지난 1월20일부터 지난 28일까지 99일간 ‘전한길’ 기사를 검색한 결과 전한길씨 발언을 그대로 전하는 따옴표 저널리즘 보도가 총 664건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씨 발언을 직접 비판하거나 제목·본문에서 간접적으로 비판한 보도는 93건에 그쳤다. 약 12% 수준이다.
 
▲ 미디어오늘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104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지난 1월20일부터 지난 28일까지 99일간 ‘전한길’ 기사를 검색한 결과 전한길씨 발언을 그대로 전하는 따옴표 저널리즘 보도가 총 664건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 미디어오늘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104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지난 1월20일부터 지난 28일까지 99일간 ‘전한길’ 기사를 검색한 결과 전한길씨 발언을 그대로 전하는 따옴표 저널리즘 보도가 총 664건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특히 언론은 전씨가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칭한 내란 옹호 발언, 윤 전 대통령 암살설 주장, “탄핵 인용 시 헌법재판소는 가루가 될 것”이라는 극단적 주장까지 비판·분석 없이 기사화했다. 전씨 발언을 가장 많이 기사화한 언론은 파이낸셜뉴스로 총 55건에 달하며 이어 매일신문 52건, 매일경제 40건, 헤럴드경제 37건 등으로 이어졌다.
 
비판과 검증 없는 ‘따옴표’ 기사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주장’처럼 포장하는 효과를 준다. “근거도 없이 함부로 내놓은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함으로써 그런 주장이 당당하게 공적 영역에 유통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2024, ‘에세이 언론윤리’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에 문제라는 것이다.
 
▲ 2024년 12월11일 나온 윤상현 관련 기사들. 내란 옹호 주장이 따옴표로 인용됐다.
▲ 2024년 12월11일 나온 윤상현 관련 기사들. 내란 옹호 주장이 따옴표로 인용됐다.
 
윤상현, 나경원 등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치적 계산에 따라 윤 전 대통령과 선을 긋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기성 정치 기사의 문법에 따라 이들 주장도 그대로 ‘따옴표’로 전해졌고 이 역시 내란 옹호를 그럴싸한 주장으로 만들었다. 정치인들의 권위가 극우 지지자들의 확증편향을 강화했다. <윤상현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2024년 12월11일 채널A) 등의 기사가 좋은 예다.
 
이는 ‘기계적 중립’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내란을 옹호하는 일부 국민의힘 의원과 대통령실 주장이 기계적으로 반영됐다. 내란 이전에는 공당과 정부 차원의 입장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수준으로까지 망가지지 않았다. 전례 없는 사태와 언론의 관성이 만나 내란을 ‘여야 대립’으로 치환시켰다.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을 제시했던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전광훈 목사를 사례로 들며 “세력화를 해선 안 되는 집단이나 개인이 있는데 소위 ‘메이저’ 언론에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세력화가 된다. 인용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서 권위가 부여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제 알지만 해결 어려운 현장의 고민
 
문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언론의 취약한 수익 구조가 있다. 포털에 종속된 구조에서 언론사 간 경쟁이 붙으면서 자극적인 제목이 수익 창출에 유리해졌다. 품을 들인 분석 기사가 돈이 되지 않아 ‘따옴표’ 혹은 ‘여야 대립’으로 단순 처리하는 악순환이다. 미디어오늘도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터넷신문사에서 국민의힘을 출입하는 A기자는 “다른 곳에서 실시간으로 기사를 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깊게 고민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두기’가 어려운 한국의 출입처 문화도 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처럼 출입 기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더라도 아예 무시하기가 어렵다. 기사에 싣지 않거나 강하게 비판하면 거센 항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라는 점이 기사의 톤을 낮추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출입 신문사 B기자는 “단순히 출입처로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 당’으로 여기는 것”이라며 “모두 그러는 건 아니지만 비판 의식 없이 주장을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B기자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문제라는 건 다 알지만 조직문화상 개별 기자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라며 “정치인들의 극단적 발언을 나만 안 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가면 당장 데스크가 ‘안쓰고 뭐 했냐’고 할 것이다. 법조기자도 마찬가지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의 극단적 발언을 나만 기사화하지 않는다면 위에서 뭐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강형철 교수는 “언론이 내란을 초기에 막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게 사실이지만 음모론과 극우성 주장들이 늘어나는 데에도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공당 같은 제도권에서 반헌법적 행위를 옹호하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졌는데 앞으로도 극우적 주장이 늘어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당을 출입하는 출입처 문화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바꾸는, 구조적 개혁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일방적 주장엔 ‘단서’ 달기”
 
현장의 고민은 깊다. 따옴표의 문제를 알면서도 당장 모든 걸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내란 옹호 주장을 ‘따옴표’로 쓰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되 설령 쓰더라도 이것이 일방적 주장이라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한겨레는 지난 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 보낸 메시지를 소개하며 <“유튜브로 보고 있다, 더 힘내자” 내란 피의자 윤석열의 선동>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 내란의 시대, 따옴표 저널리즘 이렇게 합시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 내란의 시대, 따옴표 저널리즘 이렇게 합시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통화에서 “비상계엄은 통치행위”라는 윤상현 의원의 말을 인용하더라도 ‘위헌성이 뚜렷한 비상계엄을 현직 의원이 옹호했다’는 기자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며 이를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형철 교수도 “‘계엄은 계몽령이었다’는 식의 주장은 따옴표로 끝내지 말고 ‘황당하다’, ‘근거가 없다’고 덧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호 회장은 “미국에선 ‘근거 없는 주장을 내놨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표식을 남겨놓는 것”이라며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민자들이 애완동물을 먹는다’고 주장했을 때도 바로 앵커가 같은 표현을 덧붙였다. 추가 검증은 시간이 걸리니 (언론이) 당장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란 옹호 주장을 ‘정치 공방’처럼 다루는 것은 중단해야 한다. 강형철 교수는 “극단적인 예지만 흉악범을 두고 옹호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을 누가 공방으로 보겠나”라며 “주장을 다루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황당한 주장을 했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하다. 단지 계엄의 위헌성은 처음부터 명백했으니 가치판단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주장을 다루는 방법의 예시로 강 교수는 ‘샌드위치 기법’을 들었다. 강 교수는 “이 주장이 갖는 함의를 설명한 다음 해당 주장을 담고 그 주장이 뭐가 잘못됐는지 충분히 합쳐서 제공하는 방법”이라며 “‘이 주장 자체가 문제구나’라는 걸 독자가 인지할 수 있는 맥락을 가진 채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에서 ‘정치인 주어’를 빼보는 것도 방법이다. 박 회장은 “대통령을 주어로 삼게 되면 대통령의 메시지를 요약·정리하는 기사가 되기 쉽다. 하지만 대통령 주어를 의식적으로 빼면 메시지가 나온 배경과 맥락, 이 발언이 노리고 있는 의도를 쓰게 된다”고 말했다. 사건·사고 기사에서 경찰 등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사건의 전말을 최대한 취재한 후 풀어쓰려는 노력과 같은 취지다.
 
강형철 교수는 “(언론이) 발언을 날 것으로 다 옮겨주는 걸 아니까 ‘나도 계몽됐다’는 주장을 하고 다닐 수 있는 것”이라며 “‘이 사람이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은 기사가 될 수 있지만 황당한 주장 자체로는 기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채영길 교수는 정론지를 자처하는 소위 ‘메이저 언론’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 교수는 “과도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저는 내란을 옹호하는 진영과 언론이 ‘공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메이저 언론이 이러한 기사 생산을 중단한다면 내란 옹호 주장이 ‘주변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중심부에 있는 언론이 훨씬 더 민감하게 자기 통제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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