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 - 네이버

고조선 2012. 11. 27. 03:38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237


위만(衛滿)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인물이다. 그는 B.C. 194년 고조선(조선이 국명이지만, 뒷날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칭함)의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으며, 고조선의 국력을 크게 키운 인물이다. 그는 정확히 언제 태어나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에 관해서 주로 논란이 된 것은 국적 문제였다.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고조선의 왕위를 빼앗은 위만

B.C. 3세기말 고조선 부왕(否王)은 중원을 통일한 진(秦)나라와 대립하고 있었다. 진나라는 요동까지 장성을 쌓으면서, 고조선을 압박했지만, 부왕은 진나라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부왕의 아들 준왕(準王)이 즉위하고 20여년이 지난 후, 중원에서는 진나라가 멸망하고 항우와 유방이 대립하는 혼란기(BC 206〜202)를 맞이했다. 연(燕, 하북성), 제(濟, 산동성), 조(趙, 산서성) 등지에서 혼란을 피해 수만 명이 고조선으로 이주해오자, 고조선은 이들 망명객을 적극 받아들이고, 서부 국경 지역에 거주하게 했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漢)제국을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의 혼란은 계속되었다. 이때 위만은 자신이 이끄는 천여 명을 모아 북상투에 고조선 사람의 복장을 입고 고조선으로 망명을 해왔다. 그는 준왕에게 자신을 고조선 서쪽 변방에 거주하게 해주면, 중국의 망명객을 거두어 고조선의 변방 지킴이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준왕은 그를 믿고 그에게 박사(博士) 직위를 주고, 임명장(圭)을 하사하며, 100리의 땅을 봉하여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다. 그가 머문 곳은 본시 고조선의 땅이었으나, 진나라에 잠시 빼앗겼다가 되찾은 상하장(上下鄣)이란 곳이었다. 위만은 이곳에서 진번(眞番)과 고조선 사람들 및 옛 연, 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세력을 키웠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준왕에게 보내 거짓으로 말하게 했다.
 
“한나라 군대가 열 군데로 쳐들어오니, 왕궁에 들어가 임금님을 보호하는 일(宿衛)을 하기를 청합니다.”
준왕은 그를 믿고, 그를 수도인 왕검성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위만은 자신이 이끄는 군대로 준왕을 공격하였다. 기습을 당한 준왕은 위만을 막지 못하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위만은 새로운 고조선의 임금이 되었다.
 
위만의 국적은?

위만에 대해 논란이 된 것은 출신에 대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그를 고조선계 유민, 또는 한인(漢人)계 연인(燕人)으로 보는 견해로 나누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魏略)]이란 책에는 위만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한나라 유방이 중원을 통일한 후, 자신의 벗이었던 노관(盧綰)을 전국 7웅의 하나였던 옛 연나라 땅을 다스리는 연왕으로 삼았다. 그런데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가자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기록 탓에 위만이 노관의 부하 장수 정도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이는 잘못이다. [사기] ‘노관열전’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는 노관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그에 관해 기록 가운데 가장 정확한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불과 수십 년 차이 밖에 나지 않은 시대를 살았던 사마천이 쓴 [사기]다.  그는 일반적으로 위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기]에는 단지 이름뿐, 성씨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사마천이 알지 못한 만왕의 성을 후대에 어떻게 알았을까? 이는 후대에 중국학자들이 만왕을 중국계 유민으로 단정하고 동북지역에서 흔한 중국계 성씨인 위(衛)씨를 임의로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만’이라고 불러야 옳으나,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위만’이라고 하겠다.)
 
[사기]에는 조선의 왕 만(滿)은 옛 연나라 사람(故燕人也)이라고 하였다. 그는 한나라 초기에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 아니고, 옛 연나라가 멸망(B.C. 222)한 후 최소 20년 이상 1천명 이상의 세력을 거느리고 진나라와 한나라의 동쪽 변경에서 세력을 키웠던 부족장 정도로 볼 수 있다. 그가 1천명의 부하들과 함께 북상투와 고조선의 복장을 하고 망명했다는 점은, 그가 본래 고조선 출신의 사람이었음을 추측하는 근거가 된다. 그는 B.C. 3세기 연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하여 1천리 땅을 빼앗았을 때, 연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의 후손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그가 준왕에게 쉽게 신임을 얻고 왕위를 빼앗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의 출신 때문이라 하겠다.
 
한때 일본인들은 그가 중국 유민이라고 여기고, 위만조선을 중국의 식민정권이라고 하여 우리 역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페루의 전 대통령 후지모리가 일본 출신이라고 해서 페루 역사가 일본사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설령 그가 이민족 출신이라고 해도 그가 다스렸던 고조선이 다른 나라의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왕위를 빼앗기는 했지만, 고조선 역사를 단절시키지 않았다. 위만이 왕위에 오른 후 고조선을 흔히 위만조선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구분을 하기 위한 것일 뿐, 그는 나라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여전히 (고)조선이었으며, 수도 역시 왕검성(王險城) 그대로였다. 그가 임금이 된 것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이 있을 법하지만 그는 큰 문제없이 고조선을 안정시켰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중원 땅에 온 수 만 명의 망명객이 고조선에서 살고 있었다. 따라서 앞선 고조선 시기에 비해 이때 중원문화가 고조선에 일정하게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망명객을 받아들인 것은 준왕이었고, 그것은 고조선이 인구를 늘리고 국력을 키우기 위한 국가전략의 하나였다. 위만이 이들 망명객을 규합하여 권력을 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중원의 문물을 가져와서 고조선을 크게 변화시켰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준왕의 정책이 만든 기회를 잘 이용했을 뿐이었다.
 
고조선을 발전시킨 임금

고조선은 준왕 시절에 망명객을 많이 받아들이고, 서쪽 영토를 넓힐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가 차츰 안정이 되면서, 고조선이 서쪽으로 더 이상 팽창하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한나라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한나라는 풍요를 자랑하는 거대 제국이다. 주변의 여러 세력들은 한나라 변경을 노략질하여 식량이나 포로, 물자들을 가져가곤 했다. 한나라는 당시 북방의 강자인 흉노제국을 막기에도 어려움을 겪는 실정인 만큼, 병력을 동원해 노략질하는 세력들을 일일이 막아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으로 변경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그는 한나라의 약점을 알고,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한나라의 외신(外臣)이 되는 것에 동의했다. 외신은 한나라의 직접 통치가 미치지 못하는 국경 바깥에 있으면서 한나라에게 스스로 원해서 복종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하지만 외신이란 중국적 천하관에 의해 윤색된 용어일 뿐, 한나라의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신하나 통치를 받는 대상은 아니다. 한나라의 외신이 될 경우 한나라 군대의 위세와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었다.
 
그는 철저히 한나라를 이용했다. 한나라의 물건을 들여다가 주변에 나누어주는 중계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또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소국들을 침략하여 항복시켰다. 진번(眞番)과 임둔(臨屯)을 비롯한 주변의 나라들을 복속시켜 사방 수천 리 되는 큰 영토를 가진 나라로 고조선을 발전시켰다. 위만이 이룩한 경제적, 정치적 성과는 이후 손자 우거왕 때에 이르면, 한나라의 요구를 거절하고 직접 대결할 만큼 고조선의 국력을 신장시켰다.
 
거대제국을 만나면 싸우지 않고,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당시 초강대국인 한제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함으로써, 고조선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군사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한 자였지만, 고조선의 영토를 크게 넓히고 경제적으로도 성장시켰으며, 대외 관계의 안정을 가져왔다. 그는 유능한 임금이었다.
 

참고 문헌 : 서영수, [위만조선의 형성과정과 국가적 성격], [한국고대사연구] 9, 한국고대사학회, 1996년;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 조선전 역주] 1, 국사편찬위원회, 1987년

 
김용만 /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글쓴이 김용만은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삼국시대 생활사 관련 저술을 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한국고대문명사를 집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등의 책을 썼다.
 
그림 장선환 /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화가와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http://www.fartzzang.com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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