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경제민주화 모른다
등록 : 2012.11.30 20:11수정 : 2012.11.30 20:50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11월28일 개인사무실에서 이뤄진 <한겨레>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성장의 투 트랙 전략에 대해 “(박정희식) 성장 콤플렉스에 또 빠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진퇴양난’의 그에게 당의 현실을 묻다

▶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1987년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명문화하는 것을 주도했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지난해 말 김 위원장을 전격 영입해 새누리당의 재벌당 이미지 탈색에 활용한 뒤, 대선 국면에서 정책 책임자라는 중임을 맡겼다. 밀월을 구가하던 두 사람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둘러싼 갈등으로 파경 위기를 맞고 있다. 11월11일 박 후보와의 최종 담판이 결렬된 이후 당무를 거부하며 언론접촉을 끊고 있는 김 위원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성장-경제민주화’ 투 트랙은 잘못된 생각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게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경제민주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지난 11월28일 개인사무실인 서울 부암동의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이뤄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박 후보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지만 내가 신뢰를 갖고 하면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경제민주화) 반대세력이 너무 많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여든 야든 경제민주화를 단순히 (대선용으로) 말로만 하고 제대로 안 하면 1~2년 안에 전직 대통령들(노무현·이명박)과 비슷한 운명으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선 전에 (내 입장을) 정리할 것이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들을 만났지만 제후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뒤에도 그냥 그 밑에 눌러앉았느냐”며 “나는 적당히 사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자신이 새누리당에 들어가 박 후보를 도운 유일한 이유인 경제민주화 실현이 흔들리는 상황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의 대선전략이 경제민주화·성장의 투 트랙으로 바뀐 것과 관련해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까 (박정희식) 성장 콤플렉스에 또 빠진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성장에 저해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제위기 상황을 내세운 경제민주화 완급조절론에 대해서도 “웃기는 얘기다.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경제민주화 개념이 없는 것이다”고 일축했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서도 “경제민주화는 결과에 대해 처벌하는 규정만으로 안 되고 문제를 일으키는 원천이 되는 경제구조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재벌 지배구조 개혁방안이 제외된 것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에 계속 망설였다. 필요할 때는 정중히 모셨다가, 이제는 용도가 끝났다는 듯한 새누리당의 괘씸한 행태를 생각하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지만, 수년간 쌓아온 박근혜 후보와의 인간적 관계 때문에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침 김 위원장이 가까운 몇몇 지인들과도 만나며 숙고하던 향후 거취에 대한 고민이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 위원장이 쓴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동화출판사)라는 책이 11월 하순 세상에 선을 보인 것도 계기가 됐다.

재벌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양극화는 한계에 다다라
박 후보, 해결 의지는 있지만 수단에는 확신 없는 것 같아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모두 경제민주화를 모르면서자꾸 딴소리들 해대니까 문제
김광두·이만우·안국신 등 개념 없는 이야기들만 해대

‘안철수 현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책을 낸 취지는?
“경제민주화가 대선의 화두가 됐다. 25년 전 헌법에 관련 조항(119조 2항)을 명문화하는데 일조한 사람으로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고 싶었다. 하지만 대선을 얼마 앞두고 나를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게 싫어 망설여졌다.”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은 ‘김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당에 계시기는 하지만 마음이 떠났다’고 말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아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지난 20일 행추위 관련 김 위원장의 역할이 끝났다고 말했다.
“10월 말에 공약 작업을 다 끝내고 넘겨줬으니 할 일이 다 끝났다는 이야기겠지.”

(국민들에게는) 김 위원장이 앞으로 새누리당에서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사람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정책좌장인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선비는 죽일 수는 있어도 모욕을 줘서는 안 된다’고 분개하더라.
“누가 나를 버리고 자시고 할 게 없다. 내가 물건인가. (좀 뜸을 들이더니) 우리 사회가 아직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잘 안돼 있다.”

새누리당을 두고 하는 말인가?
“선거를 전제로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 의미가 없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제시하고 있지 않나?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을 때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제구조 속에서 이른바 경제세력(재벌)이 결국 우리 사회를 지배해 사회경제적으로 순조로운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정부가 대응할 수밖에 없을 테니, 그에 대한 근거 조항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25년이 흐른 지금 사회현상이 그것을 요구하게 됐다. 개인이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사회 여건이 그것을 촉발시킨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 불신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박정희 정권의) 25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세력이 막강해졌다. 그 결과 양극화가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경제세력이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을 계속 내놓을 수는 없고, 끊임없이 욕구를 채워야 하니까, 중소상공인 영역까지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평등이 심해지고 사회정의가 약해지면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고, 신뢰와 믿음이 깨진다. 정치권도 양극화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었다고 보고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게 된 것이다.”

재계는 경제민주화를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데, 실제 선거용으로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는 정치세력도 있다고 보는가?
“우리 사회가 어떤 단계냐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영국의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특집에서 선진국과 신흥국의 불평등 정도가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준에 달했다고 진단했다. 이제 불평등을 시정하지 않고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 후보(왼쪽)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9월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대통령선거대책기구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책에서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정치지도자부터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실천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미국 경제학자인 로버트 윌리엄 포겔은 미국 사회가 역사적으로 세 번 각성해서 오늘날의 미국을 이뤘다고 분석했다. 첫째가 조지 워싱턴 주도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 둘째가 링컨 때 노예해방을 한 것. 마지막이 26·27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미국 경제구조에 대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될 당시 미국 언론들은 독점적 경제구조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루스벨트는 공화당원이었지만 반드시 그것을 치유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스탠더드오일(석유왕 록펠러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의 석유산업을 독점했던 기업)을 해체하는 등 독점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처음 발동을 걸었다. 그런데 1920년대 다른 공화당 대통령들이 그런 정책을 외면하다가 1929년 월가 붕괴라는 대공황을 맞이하게 됐다. 그다음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어 뉴딜정책으로 다시 미국을 변화시켰다. 그래서 미국이 조화를 갖추는 초석이 마련됐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박정희 이후의 대통령들은 모두 성장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경제민주화가 성장을 저해한다고? 아니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선전략을 경제민주화 원 트랙에서 ‘성장과 경제민주화’라는 투 트랙으로 바꾼 것은 문제 아닌가? 경제민주화가 성장(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과 배치된다는 재벌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경제민주화를 하면 성장이 저해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경제민주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에서 시작됐다. 일본과 독일은 승전국에 의해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효율을 가져오는 제도가 도입됐다. 맥아더 사령부가 일본에서 재벌을 해체하니까 경제효율이 떨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높아졌다. 미국 사회에서 선거 때마다 쟁점이 된 것이 의료개혁이다. 2008년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 오바마가 의료개혁을 들고나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9년에 성장률이 마이너스 상황에서 개혁을 성사시켰다. 성장을 해야 되니 나머지는 하지 말라고 했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될 수 있었을까?”

투 트랙 선거전략은 경제가 어려우면 언제든 개혁은 뒷전으로 미룰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김 위원장의 자리를 사실상 대신하고 있는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경제민주화의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편다.
“속도조절론은 웃기는 이야기다. 김광두는 원래 경제민주화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가 최근 토론회를 열었는데, 경제민주화 성토장 같았다. 이만우 고대 교수는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왜곡했다’고 주장했고, 안국신 중앙대 총장은 ‘경제민주화 개념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만우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안 된 사람이다. 안 총장도 경제민주화에 대해 책을 읽거나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김 위원장이 마련한 경제민주화 공약 가운데 기존 순환출자 금지, 국민참여재판제 등 네가지가 빠졌다. 새누리당에서는 나머지 30여개 공약은 다 채택한 점을 들어 김 위원장이 떼쓰는 것처럼 말한다.
“그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결과를 놓고서 처벌하는 규정만 가지고선 경제민주화가 안 된다. 문제를 일으키는 원천이 되는 경제구조를 바꾸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공정한 시장경제 구현을 위한 행위규제뿐만 아니라 양극화의 근본 원인인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치유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도 필요하다는 말인가?
“행위규제만 하면 정부의 권한만 많아져, 경제권력과 뒷거래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규제가 없어서 경제민주화를 못한 것인가?”

그동안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의지가 확실하다고 강조했는데, 생각이 바뀐 것인가?
“11월11일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를 앞두고) 박 후보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선거전략 변화를 처음 알았다.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하니까 성장 콤플렉스에 또 빠진 것인데, 새누리당의 상당수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성장을 저해한다면, 경제민주화를 안 한 이명박 정부 4년간 왜 성장률이 저조한지 묻고 싶다. 747 공약 중에서 하나라도 된 게 있나? 경제민주화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이다.”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선거용으로 활용한 것은 아닌가?
“여야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경제민주화를 단순히 용어로만 사용한다면 향후 경제운용이 편치 않을 것이다. 과거에 우리가 이미 경험했다. 1970년대 말에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발전에 기여했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일을 가리킴) 상황이 심각한데 해결을 미루고 다른 방식으로 하려고 하면 나중에 더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경제민주화를 안 하면 앞으로 사회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른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니까 역사의 종말이라고 하고 데모크라틱 캐피털리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는데, 최근에 역사의 종말이라는 말을 거둬들였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한 일정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진보적 자본주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노무현은 재벌개혁 약속 어겼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은 친재벌정책을 쓰다가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세번째로 그런 일 일어날까 걱정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들을 만났는데 제후가 자기 말을 안 들어도 그냥 그 밑에 남아있었나?
조만간 내 입장 정리할 거다

박 후보가 거짓말했다고는 생각 안해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경제민주화를 과연 제대로 할 것이냐는 의문이 든다
“박 후보의 의지에 달린 거지. 본인은 실현하겠다고 하지 않나. 박 후보 자신이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내용까지 알 수는 없다. 주변 사람들이 자꾸 딴소리를 하니까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난 본질(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이 확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를 안 하면 얼마 못 가서 국민들한테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데, 어떻게 경제민주화 의지가 확고할 수 있나?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는데, 어떻게 해야겠다는 수단에 대해선 확신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방법(공약)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쓸데없이 성장 가지고 떠드는 사람들이 상황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 박 후보가 다시 생각하면 시정이 가능할 것이다.”

단순히 정책 수단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다른 건 몰라도 나한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지속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만약 대통령이 돼서 그렇게 하면 나부터 뭐라고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약속하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실천을 안 하면 국민을 속인 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벌개혁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친재벌정책을 쓰다가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세번째로 그런 일이 일어날까 걱정된다.
“그러니까 둘 다 망했잖나.”

책에서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금 당면한 문제를 풀려면 엄청난 개혁을 해야 한다. 관료 몇명 믿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실제 지배하는 게 누군지 알고 있지 않나. 언론도 대기업 광고에 얽매여 있고, 지식인 사회도 그 영향력 안에 있다. 제대로 인식한 지도자가 국민의 힘을 빌려 집권해서 추진해야 한다. 여든 야든 국민이 뽑아줬는데 개혁을 안 하면 1~2년 안에 전직 대통령과 비슷한 운명으로 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집권할 경우 그런 우려가 있다면 선거 전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미 할 이야기 다 했다. 과거 실패사례를 생각하면 다음 대통령은 그렇게 안 하겠지. 그리고 국민이 올바로 판단할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해온 김 위원장이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분명히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경제민주화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시장 질서를 확립해주는 것이다. 성장은 통상적인 경제정책으로 다룰 문제다. 그걸 투 트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후보가 경제전문가가 아니니까. 설명을 해줘도 그걸 다 알 수가 있나. 후보가 개념만 투철하게 알고 있으면 기술자가 끌고 가는 것이다.”

책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인식이다. … 그리고 이를 해소할 만한 인물을 골라 기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 후보가 김 위원장을 버리는 것을 보면, 그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를 버렸는지 어떻게 아나. 내가 비대위부터 10개월 가까이 일했는데 박 후보에 대한 신뢰가 없었으면 벌써 때려치웠을 것이다. 본인이 기필코 하겠다고 하니까 일단 믿어보는 거지.”

그 말을 믿을 근거가 약하지 않나. 공약에서 구조개혁 부분은 다 빼버렸고.
“구조개혁은 할 수밖에 없다. 노태우 대통령 때 부동산 투기로 난리가 났는데 세금이라는 행위규제만 가지고 대처하니까 해결이 안 됐다. 그래서 내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들어가서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규제 등 원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풀었다. 대통령은 접하는 상황에 따라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그동안 박 후보가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치 세우고)에 매여 있었잖나. 주변에 다 그런 사람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실패 안 하고 훌륭한 대통령이 되고 싶을 것이니, 여러 생각을 할 것이다.”

남은 대선 기간에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내가 무슨 역할을 하나. 솔직히 박 후보가 내 역할이 끝났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났을 때 속으로는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 싶어 반가웠다. (사후에 박 후보 쪽에서 해당 언론사에 정정을 요구하고, 김 위원장에게도 진의가 아니라고 적극 해명했다고 한다.)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입당했지만 선거 끝나면 다 없앨 것이다.”

1963년, 할아버지 김병로의 결단을 생각한다

노태우 대통령도 선거 전에는 김 위원장을 중용할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선거에서 이긴 뒤에는 돌아보지도 않다가 2~3년 지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다시 찾았다. 박 후보가 다시 찾을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목소리를 높이며) 뭘 기다리나. 내가 나이가 몇인데.”

경제민주화 공약 결정 과정에서 박 후보와 갈등이 불거진 뒤 김 위원장이 계속 침묵하니까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국민이 무엇을 바라나?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새누리당에서 일한 것은 자리 때문이 아니라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 구현을 위해서라고 줄곧 강조했다. 시대정신 구현이 어렵다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신념대로 한다면 간단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인간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이미 ‘더이상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해줄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이 현 상황에서 그렇다면 더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제민주화는 설명하거나 설득한다고 될 얘기가 아니고, 지도자가 스스로 인식할 문제다.”

가정이지만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됐는데 경제민주화 약속을 제대로 안 지켜 나라가 더 어려워지면, 국민들이 김 위원장을 원망하지 않을까?
“국민이 판단한 것인데 무슨.”

국민이 오판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솔직히 나도 고민하고 있다. 조만간 (내 입장을) 정리할 것이다. 박 후보와의 신뢰 때문에 일을 맡았지만, 사람 생각이라는 것

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을 수가 없다. 박 후보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지만 내가 신뢰를 가지고 하면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반대세력이 하도 많다 보니,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 후보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경제민주화를 아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입장표명은 대선 전에 할 것인가?
“해야 할 상황이면 해야지.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들을 만났는데, 제후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뒤에도 그냥 그 밑에 남아 있었나? 요즘 1963년 할아버지께서 결단을 내렸던 일을 곰곰이 생각한다. 당시 대통령 선거를 맞아 야권 후보 단일화가 추진됐다. 야당인 민정당 대표를 맡았던 할아버지는 현실성이 없다고 반대했지만 명분론자들이 강하게 주장하니까 받아들이면서, 대신 ‘후보 단일화가 안 되면 당을 떠나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야권 단일화는 실패했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이정우 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새누리당과 결별하면 자기 자리 이상도 드리겠다고 제안했다. 받아들일 용의는?
“(웃으면서) 괜히 하는 소리지. 상식적으로 될 일인가?”

-지난번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진정성 있게 요청하면 도와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은 대통령이 된 사람이 도와달라고 했을 때 고려해보겠다는 얘기지.”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정리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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