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다카키 마사오)
작성자 : 이창섭 작성일 : 2006-02-23 오후 3:07:25
박정희는 1917년에 태어나 1944년에 일본육사를 졸업하고, 당시 악명이 높던 관동군의 육군소위로 들어간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을 쥐잡듯이 잡아들이고, 처형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당시 동포들과 동료일본군 사이에 냉정하고 잔혹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박정희의 일본식이름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불려졌다. 영원할것 같았던 일제의 식민통치가 1945년 8월15일 일본천황이 항복하자 당시 육군 중위였던 박정희는 혼란에 빠진다. 이후 그와 그의 동료군인들은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하고 포로수용소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기지를 발휘해서 열차를 탈출하고, 우익 간첩들의 구출로 무사히 대한민국으로 귀환한다. 요즘 신문에서 그 당시 활동하던 우익간첩중에 한사람은 자신이 직접 박정희를 구해 자랑스럽다고 회고록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에돌와와서도 군재건에 참여하고 육군간부로 진출한다. 어이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이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혼란기였고, 미군정도 친일파를 벌하기 보다는 그들을 계속 요직에 앉혀놓고 다스려가던 시기였다. 한때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해서 반민특위가 설치되었지만 이마저 오래가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제대로 청산하지도 못했다. 다시 군에 복귀한 박정희는 일본식이름을 버리고, 친일행적을 감추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죽을때까지 국민들을 속여왔다.
6.25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우리나라는 극도의 침체기로 빠져든다. 당시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고, 병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시기에 박정희는 초고속으로 승진해서 육군소장까지 역임한다. 그리고 1961년 5월 16일에 4.19혁명으로 부패한 이승만정권을 타도한 시민들이 세운 자유정권인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군사쿠데타를 일으켜서 군정을 한다. 그는 대한민국역사상 가장 긴 18년동안 독재를 했고, 민주화를 원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말도안되는 이유로 뒤집어 씌워서 희생시켰다. (국가의문사 진상위원회가 조사하는 사건도 대부분 이시기의 사건들임)
그 유명한 국민의례(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도 이시기에 정해진것이다. 일제의 황국신민서사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한다. 이무렵부터 각 초,중,고등학교에서도 매양 아침조회때 당연한것처럼 암송해야만 했다.
그 후 박정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1972년 12월27일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제4공화국시대로 접어든다. 유신헌법으로 인해서 박정희는 황제처럼 군림할 수 있는 법적 정당성을 얻었다고 볼 수 있고, 유신체제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원하는 시민투쟁도 더 격렬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일제시대때 배운 악랄한 수법만 하나회 전두환에게 물려주고,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연회에서 그가 총애하던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그러나 그때까지 국민들은 박정희의 참모습을 잘 모르고 있었고, 박정희의 장례식날 상당수의 국민들은 애도까지 표했다고 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박정희의 치밀한 정보정치를 엿볼 수 있다. 그 시대에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죽는다는 말이 생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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