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방송사 사장, 이런 사람 앉히자” 보고서 작성 지시
등록 : 2012.12.06 20:22수정 : 2012.12.06 23:02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4월3일 저녁 구속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차를 타고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방송사 사장 인사 개입 시도
2009년 KBS·MBC·YTN 인사 앞, 임원 동향·인사 쇄신방안 등 작성
‘충성심 돋보인다’ 평가받은 임원, 이사회서 정식 사장 선임되기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비선 라인’을 주도했던 이영호(48·수감중)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주요 방송사를 ‘친정권 체제’로 만들기 위해 방송사 사장 인사에 개입하려고 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겨레>가 입수한 민간인 사찰사건 재수사 기록 가운데 진경락(45·수감중)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2009년 7월 작성한 ‘그동안 있었던 일’ 문건을 보면, ‘7월27일 EB(이영호 비서관) 지시사항’으로 “KBS(한국방송), YTN(와이티엔), MBC(문화방송)가 8월에 인사를 하게 될 텐데, 이때 ‘이런 사람을 앉히자’는 보고서를 작성해달라는 것”이라고 나온다. 이어 진 과장은 “이것은 아마 원충연 감사(조사관)가 작성한 ‘KBS의 개혁의지 없는 방송행태 동향보고’(09.7.24)를 보시고 단순히 문제제기 차원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대안까지 제시하라는 것으로 읽힘”이라고 썼다.

이영호 비서관의 하명을 받은 지원관실 점검1팀은 이날 즉시 ‘KBS, YTN, MBC 임원진 교체방향 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같은해 8월11일과 9월25일 이영호 비서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 있다. 8월11일에는 ‘MBC 인사쇄신방안’ 보고서도 만들었다.

이런 사실은 재수사 당시 진경락 과장의 5월18일 검찰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진술조서에서 진 과장은 “이영호가 실제로 이런 지시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보고서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 영역을 벗어난 지나친 내용이 아니냐’는 검사의 질문에 진 과장은 “맞습니다. 이영호가 워낙 앞뒤 재는 것도 없이 이런저런 하명을 했습니다. 제 짐작에는 이영호가 말이 안되는 지시지만 하명을 했기 때문에 1팀에서 어느 정도 하는 시늉을 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2009년 언론사 등을 포함한 주요 인사의 사찰 결과를 기록한 ′업무처리현황 주요내용′(왼쪽) 보고서와 진경락 총괄기획과장이 ″이영호 비서관이 지시했다″고 시인한 진술조서(오른쪽)

하지만 진 과장의 해명과 달리 지원관실 직원들은 ‘시늉’을 넘어선다. 그해 9월3일 작성된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엔 당시 배석규 와이티엔 사장 직무대행에 대해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인다”고 평가하며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실제로 한달 뒤 열린 이사회에서 배 대행은 정식 사장으로 선임됐다.

김인규 한국방송(KBS) 사장이 취임한 2009년 11월 무렵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KBS 최근 동향 보고’에도 한국방송을 친정부 체제로 만들기 위한 지원관실의 전략이 적혀있다. 이듬해 6월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터지자 점검1팀의 원충연 조사관은 와이티엔 간부들과 수십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지원관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이후 엠비시 노조 동향’, ‘엠비시 노조 및 엠비시 피디 연합회 동향’ 등 언론계 동향 보고서를 쏟아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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