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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인들 '개고기' 즐겨…옥저·발해 온돌 등 다량 발견
【대전=뉴시스】기사입력 2007-08-24 12:07

옥저와 발해의 온돌 동시 발견

옥저·발해의 온돌, 'ㄷ'자형 아궁이 등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24일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이종철)에 따르면 러시아 극동국립기술대학교 및 러시아 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간 제5차 한·러 공동 연해주 발해문화유적 발굴조사단(한국측 단장: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정석배 교수)은 지난 6월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우쑤리스크 북서쪽에 위치한 체르냐찌노5 발해 고분유적과 체르냐찌노2 옥저·발해 주거유적에 대해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이 유적은 지표면에는 한인 이주민들이 거주한 흔적이, 그 아래에는 발해 문화층이, 더 아래에는 옥저-끄로우노브까 문화층이 차례로 남아있어 옥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발해(698~926년), 한인 이주민에 걸친 우리 역사의 일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연해주에는 이와 같이 세 시기에 걸친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옥저·발해·한인 이주민이 모두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동일 민족으로서, 취락을 위한 자연환경과 입지조건을 보는 눈이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서로 비슷했다.

체르냐찌노2 주거유적에서는 발해의 쪽구들 1기와 다수의 생활 폐기물 유구, 그리고 옥저-끄로우노브까 문화의 주거지 4기와 토기가마터 1기가 각각 조사됐다.  

발해의 쪽구들은 유적의 낭떠러지 부분에 위치해 완전하지는 못하나 다행히 아궁이 부분 일부와 'ㄷ'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구들(연도)이 대부분 남아 있었다. 
아궁이는 측면에 판석을 세우고, 바닥은 고르게 해 만들었으며 2열의 구들과 연결돼 있었다. 아궁이의 내부는 재와 무너져 내린 판석들로 채워져 있었고 바닥은 불에 달궈져 매우 단단했다. 구들은 좁고 길게 고랑을 파서 처음부터 2열로 만들었고 위는 판석으로 덮었는데, 구들의 벽과 바닥은 불에 달구어져 딱딱해져 있었다. 쪽구들의 길이는 약 4.5m다.

또 생활 폐기물 유구는 구덩이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한 구덩이에서는 다량의 동물 뼈와 물고기 뼈, 그리고 조개껍데기가 출토됐다. 동물 뼈 중에서는 돼지와 개의 뼈가 적지 않게 섞여 있어 발해인들이 이곳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돼지와 개고기를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구덩이에서는 조개껍질로 만든 단추, 동물 뼈로 만든 장신구 등도 출토돼 발해 인들의 의복장식에 대한 표상도 가질 수 있다. 이 구덩이에서는 골촉과 철촉, 그리고 다량의 발해 시기 토기도 출토됐다.

옥저-끄로우노브까 문화 주거지는 모두 4기가 조사됐는데, 모두 발해 시기의 생활 폐기물 구덩이에 의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다행히 그중 한 주거지에서 쪽구들이 확인됐는데, 평면상 'ㄱ'자 모양이었다. 이 쪽구들에는 구들(연도)이 하나이며 아궁이 부분에서 둥그스름하게 꺾여 'ㄱ'자 모양을 이룬다. 아궁이는 전체 폭이 약 60㎝로 약간 넓은 타원모양으로서, 위에는 3매의 작은 판석이 높여있었다. 그 아래에는 재가 충진돼 있었으며 바닥은 불에 딱딱하게 달궈져 있었다. 연도는 폭이 20㎝ 내외로 좁아졌고 양쪽 벽과 바닥이 갈색으로 달궈져 있었다. 아궁이와 가까운 부분에는 바닥에 재가 깔려 있었으며 이 쪽구들의 중간 부분에는 연도 아래에 판석을 수직으로 세워 만든 돌 상자 모양의 구조물이 위치해 있었다. 아궁이의 한쪽 곁에는 판석을 깔아놓았고 쪽구들의 전체 길이는 약 2.2m다.

옥저-끄로우노브까 문화층에서 확인된 다른 중요한 유구 중의 하나는 토기 가마의 흔적이다. 이 가마는 한쪽 벽 부분만이 약 10㎝ 정도 남아 있고 나머지 부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잔존 유구는 평면상 둥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는 1.8×2.3m 정도다. 발굴 당시 다량의 벽체가 폐기물 상태로 이 가마 바로 곁에서 확인됐는데 오로지 끄로우노브까 문화 토기만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가마는 전체적인 구조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옥저-끄로우노브까 문화에 매우 단단한 경질의 토기를 구울 수 있는 등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유구라고 할 수 있다.

전통문화학교 관계자는 "제5차 한·러 공동 연해주 발해문화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발해와 옥저의 주거지와 쪽구들, 가마, 생활 폐기물 유구, 그리고 토기, 조개껍질 단추, 뼈 장신구, 골촉, 철촉, 동물 뼈, 물고기 뼈, 조개껍데기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며 "옥저와 발해의 생활과 역사를 복원하는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옥저에서 발해, 그리고 이후 한인 이주민에 이르기까지 연해주에서의 우리 역사의 일맥을 밝히고 옥저와 발해가 우리의 역사 그 자체임을 증명할 대단히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관련사진 있음>

박희송기자 hspar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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