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43000050001&print=Y
* "한국의 전통춤 - 삼국시대"에서 백제 부분만 가져와 제목은 그에 따라 달았습니다.

백제의 전통춤

백제는 삼국중에 가장 비옥한 경기도 한강 이남으로부터 충청도, 전라도에 위치하여 농경문화가 상당히 발달하였다.
다수의 인구가 있었기에 수차의 위기를 견디어 왔다. 그러나 결국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어 678년 동안 지켜온 귀족 국가를 후진국인 신라에게 넘겨주고 말았으니, 그것은 백제 국가 조직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비천도(飛天圖)
 
백제는 중국 북방 문화를 수입한 고구려와는 달리 중국 남조 문화를 수용하여 섬세하고 온후하며 아담하고 이지적인 예술을 만들어 냈다. 이 점은 중국의 남쪽이나 백제의 기후가 따뜻하고 온화한 풍토의 영향으로 보인다.
 
일본과 문화 교류를 갖게 되면서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 등을 일본에 보내어 한학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일본 아스카 시대 예술의 모태가 되었다. 또한 백제가 멸망한 후 왕족들과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황족으로 군림하면서 아스카문화(飛鳥文化)와 나라문화(奈良文化)를 번성시켰다. 백제는 일본에 정치적ㆍ문화적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대륙의 남북조 여러 나라에도 정치적 영향을 끼쳤다. 따지고 보면 중국 대륙은 백제, 나아가 우리 민족의 조상인 동이족의 활동 무대였다. 대륙의 은ㆍ진ㆍ한ㆍ위ㆍ촉ㆍ오나라 등으로 이어지는 풍성한 대륙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 결과 동북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금으로 상감한 칠지도를 만들었고, 남조에서는 그 예가 없는 터널형 벽돌무덤(무녕왕릉)을 쌓았다.

또한 현대에 지어도 30년은 걸린다는 동양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를 건립했다. 그리하여 환황해(環黃海) 문화권을 형성했다. 백제는 마한에 속해 있던 지역을 통치하였기 때문에 삼한의 옛 습속이었던 5월 하종과 10월 추수가 끝나면 천지에 제사하고 주야 무휴로 음주 가무하는 풍습이 오늘날의 충청ㆍ전라도지방의 별신굿, 두레굿 등에서도 그대로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 무용에 관한 기록과 자료는 고구려무용에 비해 아주 적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소개된 백제악을 보면 고구려악과 같이 악사 4인 중에는 횡적(橫笛), 공후(??), 막목(莫目), 무(舞)의 역할별로 되어 있어 악사에는 따로 춤꾼이 곁들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백제 악사들이 가르쳤던 악은 무를 수반한 까닭에 고취(鼓吹)와 같은 의식 무악이 아니라 궁중에서 연행된 향연 무악이라 볼 수 있다. 일본에 전해진 삼한악 중에서 백제 무악이 554년 이전부터 가장 먼저 일본에 전해졌고, 백제 본국에서 정기적으로 일본에 파견된 백제 무악사에 의해 6세기에는 일본에 있던 백제인 무악생에게 전습되었다. 백제적(百濟笛), 백제금(百濟琴), 막목(莫目)과 같은 중국계 악기가 아닌 한국의 악기를 가르쳤으며, 무악의 내용도 백제 본국의 여러 지방의 풍속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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