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2eEyR  (고구려음악 제 1 기)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2eEyY  (고구려음악 제 2 기)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2eEye  (고구려음악 제 3 기)


시기별 고구려의 음악


제 1 기 (B.C. 1세기∼A.D. 4세기)

고구려가 융성하기 시작한 시기로써 여러 문헌들과 함께 안악 제 3호분의 주악도나 통구의 무용총 등과 같은 고분을 통해서 당시의 음악 문화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기악과 성악, 춤이 종합 예술체에서 분리되고 중국 한(漢)나라의 음악이 들어와 고구려의 초기부터 음악 문화가 풍요했었다.
 
거문고와 완함의 음악
 
거문고는 4세기경 중국 진(晋)나라에서 들어온 7현금을 왕산악이 개조한 악기이고, 왕산악은 현금을 제작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거문고 곡으로 100여 곡을 작곡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연주하는 현악기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거문고다. 
 
황조가와 가요
 
고구려 제 2대 유리왕 3년(B.C. 17년)에 왕이 직접 지었다. 황조가 외에도 공후인의 가사가 전하고 있으며, 내원성 연양 명주 등의 가요가 불렸다. 
 
한나라 음악이 들어옴
 
중국 한(漢)나라 음악이 고구려에 들어온 사실은 고분 벽화를 보아 알 수 있다. 안악 제 3호분의 벽화에는 10여종의 악기의 연주 그림과 춤추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무덤 안의 전실(前室)과 후실(後室) 회랑(回廊)에 그린 벽화이다. 전실의 연주 그림은 한나라 때의 궁중 뜰에서 연주하던 황문고취(黃門鼓吹)이고, 후실의 춤추는 그림은 잔치 음악이며, 회랑의 행진하는 그림은 행진 음악의 하나인 단소요가를 그린 것으로, 이 벽화에 나타난 그림을 통해 4세기 이전에 중국 한나라의 음악이 고구려에 들어와 연주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 
 
고구려 제 1기의 음악은 민간 음악과 궁중 음악으로 나눌 수 있다. 민간 음악은 거문고와 완함으로 연주하는 음악과 노래가 있다. 거문고는 독주와 춤 반주 악기로 사용되었고, 완함은 춤 반주 악기로 쓰였으며 궁중의 잔치에서 춤출 때 반주하기도 하였다. 완함은 중국의 악기이지만 고구려의 민간이나 궁중에서 두루 쓰인 것은 완함이 고구려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고구려화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궁중 음악은 중국 한나라의 음악을 도입하여 연주한 듯 하다. 막강한 국력을 가진 고구려의 궁중도 큰 나라의 체제에 알맞은 의식과 음악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궁중뜰에서 연주한 전정악(殿庭樂)과 왕의 행차, 군대의 행진 등의 의식 음악이 비록 한나라의 음악을 빌려 쓴 것이라 하더라도 그 만큼 고구려의 음악이 융성했다는 것을 말 해 준다.



제 2 기(A.D. 4세기 ~ A.D. 6세기)

이 시기의 고구려는 백제의 서울 한성을 함락시키고 북부 지방의 부여를 통합하는 등 나라 안팎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다. 나라의 힘이 크므로 중국 대륙은 물론 서역 지방과도 교역이 활발하였고, 음악도 서역계 음악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연주에 사용된 악기
 
제 1기에 쓰인 악기는 계속 연주되었는데 특히 각과 완함, 거문고는 여러 형태의 음악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서역악이 들어옴
 
소수림왕 때인 4세기 후반 인도의 불교가 비단길을 통해 서역과 중국을 거쳐 고구려에 들어왔으며, 이로부터 1세기 지난 5세기경부터 서역 음악이 고구려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고구려 악기와 서역 악기는 장천1호 고분 벽화가 부분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관악기 - 횡적, 대각, 장소, 피리 
현악기 - 거문고, 오현, 완함, 오현금
 
횡적은 횡취라고 부르는 옆으로 부는 악기이고, 대각은 각 또는 장각이라고도 하며 긴 뿔같이 생긴 악기이다. 장소는 퉁소와 같이 세로로 부는 악기이며, 피리는 필율로 한자 표기하는 악기이다. 거문고와 완함은 이전부터 사용되어 온 악기이고, 오현은 5줄의 향비파처럼 생긴 악기이지만, 오현금은 거문고같이 기다란 몸통에 주아(줄 조이개)가 달려있는 악기이다. 
 
춤과 놀이

무용총은 거문고, 대각을 연주하는 그림이 있으며, 각저총에는 소와 북의 그림과 함께 씨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밖에 평양 부근의 여러 고분에는 놀이하는 모습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춤추며 노는 장면을 비롯하여 공 던지기, 장대타기, 칼싸움, 장대 던지기와 말 위에서 놀이하는 것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놀이를 보여주고 있다.

정리

다른 나라에서 악기가 들어오면 음악도 함께 들어와 그 나라의 음악을 전하게 되어 있으나 불행하게도 기록으로 전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악곡과 음악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서역 지방과 교통하여 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전보다 더욱 풍부한 음악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제 2기의 고구려 음악은, 고구려가 세력을 확장하여 나라가 커진 것 같이 음악과 춤과 놀이 문화가 매우 다양해 졌다. 또 이 시기는 고구려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음악 기반 위에 중국 대륙과 서역 지방을 통해 악기와 음악을 받아들여 고구려 음악을 꽃피우는 역사적 단계라고 하였다.



제 3기(A.D. 6세기 ~ A.D. 7세기)

수세기에 걸쳐 막강한 힘을 가진 고구려는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을 받게 되고, 백제와 신라와의 전쟁으로 인해 결국 705년간에 걸쳐 28대 왕들로 이어지던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668년 나라를 잃게 되었다. 고구려는 이렇게 어려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앞 시기에 이루어 놓은 음악 자산을 키워 5세기 이후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 음악과 서역 음악은 더욱 많아졌으며, 이렇게 수입된 음악들은 고구려인의 취향에 맞게 고구려 음악화되었다. 또한 다양한 음악 문화를 흡수했던 고구려 음악은 해외로 나가 연주할 만큼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다.
 
고구려 음악의 악기
 
고구려 벽화에는 완함 각 금 소 횡적 요고가 그려져 있고, 중국의 기록에는 오현 금 쟁 피리 횡취 소 고(북)가 고구려 악기로 쓰여져 있다. 고구려 음악에 사용된 악기는 각 금 소 횡적 요고 오현 쟁 피리 북들인데 이 중에는 이전부터 연주되어 온 악기들이 대부분이지만 해외로부터 수입된 새로운 악기도 있다. 
 
예전의 악기 - 완함, 각, 금(거문고), 소, 횡적, 오현, 피리, 북 
새로운 악기 - 요고, 쟁
 
새로운 악기 가운데 요고는 장구와 같이 허리가 잘룩하고 무릎위에 올려놓고 치는 북 종류로서 서역 악기이고 쟁은 중국의 악기이다. 
 
공후인과 가요
 
악기는 기악으로 연주하기도 하지만 춤 반주와 노래 반주로도 사용된다. 민간에서 많은 노래가 있었을 터임에도 공후인만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후인은 언제부터 부르게 되었는지 그 연대를 알 수 없다. 
 
고구려 음악의 해외 진출
 
고구려는 5세기 후반 중국의 위(魏)나라에 음악을 수출하기 시작한 후 수(隋)나라와 당(唐)나라에도 음악을 보냈다. 위나라에 수출한 음악은 수나라와 당나라에 보낸 음악보다 규모는 작았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그들의 궁중에서 여러 나라의 음악을 항상 연주하도록 음악인들을 상주시키는 제도가 있었는데, 수나라 개황(開皇: 581년~600년)초에 7부기를 선정하여 궁중에서 연주하였으며 이 중의 하나가 고구려 음악이다.
수나라 대업(大業: 605년~617년) 중에 7부기를 확대하여 9부기를 제정하였다.
 
1) 9부기에 편성된 고구려 악기 
 
관악기 - 적, 생, 소, 소피리, 도피피리(복숭아껍질로 만든 피리), 패(조개: 취주악기) 
현악기 - 탄쟁, 와공후, 수공후, 비파(당비파를 말함), 오현(후에 향비파라 부름) 
타악기 - 요고(허리가 잘룩한 장구형 악기), 제고, 담고, 용두고, 철판
9부기 중의 고구려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는 모두 14종류이다.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는 7세기 초 정관(貞觀: 627년~649년) 중에 10부기를 제정하였다.
 
2) 10부기에 편성된 고구려 악기 

관악기 - 의취적, 생, 호로생, 소, 소피리, 도피피리, 대피리, 패 
현악기 - 탄쟁, 추쟁, 봉수공후(공후 끝에 봉의 머리를 장식한 것), 와공후, 수공후, 비파, 오현 
타악기 - 요고, 제고, 담고, 용두고, 철판
10부기 중의 고구려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는 20종류이다.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나라와 지역들이 있었으나 7부기나 9부기 10부기에 제정되지 못한 것은 그 음악들이 궁중에서 연주할 만큼 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일본의 음악도 잡기(雜伎)로 취급되었음을 비추어 볼 때 고구려 음악이 중국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악기의 수가 많다는 것은 음악도 다양하다는 뜻이다. 음악이 어떤 것이었는지, 악곡 수가 얼마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악기의 수가 많은 것은, 고구려에서 만든 악기와 중국 서역에서 들여온 악기를 모두 포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수나라와 당나라 궁중에서 고구려 음악으로 지정하였던 그 이유는 고구려에서 사용한 모든 악기들이 고구려화되어 다른 지역의 음악과 구별되어 고구려 음악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정리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보다 일찍 중국 및 서역과 교통하고 문물을 교역한 나라로서 음악이 고대 한반도의 어느 나라에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중국과 서역에서 들여온 음악과 악기, 춤, 놀이들을 고구려화시켜 이전의 고구려 음악과 합쳐서 고구려 사람들에게 맞는 매우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고 또 이러한 음악을 중국에서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음악 연주와 춤, 놀이는 궁중에서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성행했었는데 기록이나 벽화에는 보이지 않으나 노래도 많이 불렀을 것이고 또 고구려는 부여, 동예를 통합하였으므로 영고, 동맹, 무천과 같은 집단적 제천 의식과 음악, 춤, 놀이도 풍습으로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고구려 제 1기가 음악이 뿌리내리고 싹이 돋은 시기라 하면, 제 2기는 나무가 자라고 꽃이 핀 시기이고, 제 3기는 열매 맺어 씨를 뿌린 시기라고 하겠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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