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3.jsp?cpsno=143 (우마성)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jsp?cpsno=288 (내성)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3.jsp?cpsno=329 (외성)
* 백마산성 고성(우마성),내성,외성 세 내용이 겹치나 일치하지 않고 편집하기는 곤란해서 나란히 다 올렸습니다.

백마산성
 
지정구분 : 국보 58 호
시      대 : 고구려
유      형 : 유적 성곽·관방유적
크      기 : 외성둘레 2.4km, 내성둘레 2.6km
소  재 지 :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노동자구
 

 

백마산성 위치                                                  백마산성 평면도 -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산 고지에 위치한 고구려 시대의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흰 용마가 놀던 곳이라 하여 백마산이라 불리는 이 산은 북으로는 압록강을 건너 요동지방으로 통하고, 남으로는 평양에 이르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험준한 백마산 고지는 북으로 의주, 남으로는 용천과 피현 일대를 굽어볼 수 있는 군사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이다. 따라서 백마산성은 고구려 시기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 개축 또는 증축, 보수되면서 고려, 조선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군사요새로 이용되었다. 의주군의 역사를 담은 ‘용만지’에 따르면 백마산성은 자연지세가 유리해 청천강 이북의 산성들 가운데 첫째가는 성이라고 하였다. 
 
백마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려시기에 백마산 주봉인 북장대에서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두 개의 골짜기를 돌로 막아 쌓은 우마성이 축조되었으며, 이 고성을 기초로 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에 내성과 외성이 축조되었다. 내성의 성벽은 그 대부분이 우마성 자리에 다시 쌓은 것이며, 고성의 동쪽으로 덧붙여 북장대 좌우 능선을 따라 중허리까지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고려시대 1014년부터 1017년에 걸쳐 축성된 내성은 작은 규모로 개축되었으며, 그 둘레는 약 2.6km에 이른다. 외성은 조선시대 1735년에 내성 밖 남쪽에 덧대어 방형으로 쌓았다. 외성을 이루는 성벽의 길이는 약 2.4km이다. 
 
내성의 성벽은 두툼하고 납작한 자연석으로 5m가량 쌓아올렸는데 성벽 위로 1m 정도의 높이로 성가퀴를 돌리고 총안은 내어 공격에 용이하도록 하였다. 성의 사방으로 홍예문을 두었다. 북문에서 약 300m 동쪽에 길이 120m, 너비 4~5m의 철성이 있고, 철성에서 남쪽을 약 50m 내려와 동쪽 성벽의 겹성이 있다. 남문 앞과 북문에는 적의 침입 시 수비에 유리하도록 하는 옹성을 쌓았으며 서벽에는 물자를 나르고 비밀리에 출입하는 용도인 암문이 있다. 성안에는 지금도 여러 개의 못과 우물자리, 병기창고터, 병영터, 식량창고터 등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무기류를 비롯한 식량과 된장, 간장, 소금 등을 저장하였다. 
 
외성의 성벽은 골짜기 입구를 막아 쌓으면서 대체로 양면축조방법을 적용하였다. 성벽 위에는 촘촘히 성가퀴를 쌓고, 1~1.5m 간격으로 총안을 냈으며, 20m 정도씩 건너서 탄약 홈을 만들었다. 외성에는 동, 서, 남 세 곳에 성문을 냈다. 그 중 남문은 정문이다. 북문은 내성의 남문이 겸하고 있다. 성문은 모두 홍예문인데 그 중 남문은 말발굽형이고, 나머지 것은 반원형이다. 홍예문들은 축대를 따로 쌓지 않고 성벽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만들었다. 남문에는 문루가 남아있었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에 공포를 올리고 겹처마의 합각지붕을 이은 2층 건물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소실되었다. 성문에는 모두 옹성을 쌓았으며 남문의 서쪽에는 수구문이 열려 있었다. 
 
성 안에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장대들이 설치되었는데 북장대에는 ""북장대""란 글자를 새겼다. 성 안에 13개의 못, 32개의 우물도 운영되어 수원을 풍부히 하였다. 외성의 남문 근처에는 성을 1753년에 쌓았다는 내용의 글자를 새긴 돌이 있다. 백마산성은 하나의 성이 고구려, 고려, 조선 등 서로 다른 세 시기에 쌓은 부분성들로 구성 되어 있어 각 시기의 축성 형식과 방법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백마산성고성 서쪽성벽                                               고성이 자리 잡은 백마산    

출처 :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3.jsp?cpsno=143


백마산성내성
 

시              대 :고려
유              형: 유적 성곽·관방유적
크              기
소     재      지 :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
 
백마산성은 압록강 부근에 높이 솟은 백마산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으로서 고구려 때부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 되어 왔다. 의주군의 역사책인 '용만지'에서는 백마산성은 청천강 이북의 여러 산성들 가운데서 자연지세가 유리한 점에서 첫째가는 성이라고 하였다.

백마산성은 우마성과 내성,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마성은 고구려시기에 쌓은 성이고, 내성은 1014년부터 1017년에 걸쳐 고려시기에 우마성의 동쪽에 쌓은 것이다. 외성은 조선시기에 내성의 남쪽에 덧붙여 쌓은 것이다. 고려시기 우마성은 이미 폐성되었다. 내성은 백마산의 주봉인 북장대의 동남쪽 골 안을 안에 넣고, 좌우 능선을 따라 중허리까지 도려 쌓은 고로봉식(포곡식) 산성이다. 북문에서 약 300m 동쪽에 길이 120m, 너비 4-5m의 철성이 있고, 철성에서 남쪽을 약 50m 내려와 동쪽 성벽의 겹성이 있는데 내성의 둘레는 약 2,590m이다(외성 2,430m). 성벽은 두툼하면서도 납작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아올렸는데 지금 그 높이는 약 5m이다. 성벽 위에는 약 1m 높이로 성가퀴를 쌓고, 쏘는 구멍을 냈다. 성의 동, 서, 남, 북 4면과 겹성에는 무지개문길의 성문을 두었다. 남문 앞과 북문에는 성 밖으로 ㄱ형의 옹성이 있으며, 서벽에는 미식암문이 있다.

성 안에는 지금도 여러 개의 못과 우물자리, 그리고 병기창고터, 병영터, 식량창고터 등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무기류를 비롯한 많은 식량과 된장, 간장, 소금 등을 저장하였다. 백마산성에 기어들었던 외래침략자들은 그 때마다 된 벼락을 맞고 녹아 났다. 1018년 압록강을 건너온 10만의 거란 침략군을 물리친 백마산성싸움이 그 대표적 예이다. 백마산성에는 여러 차례에 걸친 외래침략군과의 싸움에서 그 때마다 빛나는 승리를 거둔 고려 백성의 자랑찬 투쟁의 자취가 스며 있으며, 지형지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겹성과 철성까지 쌓으면서 방위력을 높여나간 선조들의 슬기와 자랑이 깃들여 있다.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전경 남문옹성과 남쪽성벽(서쪽에서 바라본 것, 오른쪽 하단은 동쪽에서 바라본 것) 남문터 (바깥에서 들여다본 것)



남문터 평면도 남문옹성 실측도 남문 무지개문길 실측도



내성 동문 서문터와 서쪽 성벽 동쪽 성벽과 철성



남문터 문확돌 겹성동문 북문터의 옹성과 적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철성 성벽 성가퀴 서쪽 암문



군영터 잉어못 돌확



돌확



출처 :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jsp?cpsno=288


백마산성외성
 
시      대 : 조선
유      형 : 유적 성곽·관방유적
크      기
소  재 지 :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
 
백마산성은 우마성과 내성,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마성은 고구려 때에, 내성은 고려 때에 쌓은 성이다. 외성은 조선시기 1632년에 내성 남쪽에 덧붙여 쌓았다. 백마산성이 고구려 이래로 조선시기까지 계속 보강되면서 이용되어 온 것은 백마산성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 서북방향으로 침입하는 침략자들은 백마산성에서 우리 군사들의 저항을 받곤 하였다.

외성을 이룬 석성벽의 길이는 약 2,430m이고, 그 높이는 5~6m되는 곳도 있다. 성벽은 골짜기 입구를 막아 쌓으면서 대체로 양면축조방법을 적용하였다. 성벽 위에는 평가퀴형식으로 촘촘히 성가퀴를 쌓고, 1~1.5m 간격으로 쏘는 구멍을 냈으며, 20m 정도씩 건너서 탄약홈을 만들었다. 성벽에는 치가 달려 있다. 외성에는 동, 서, 남 세 곳에 성문을 냈다. 그 중 남문이 정문이다. 내성의 남문이 외성의 북문을 겸하고 있다. 성문의 형식은 모두 무지개문(홍예문)이다. 무지개(홍예)의 형태 중에서도 남문의 것은 마제(말발굽)형이고, 나머지 것은 반원형을 틀었다. 무지개문들은 축대를 따로 쌓지 않고 성벽에 구멍을 내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무지개문 위에는 모두 문루가 세워져 있다. 남문의 문루만 하여도 정면 3간, 측면 3간에 포식 두공을 올리고 겹처 마의 합각지붕을 이은 2층 문루가 남아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멸실되었다. 매개 성문에는 옹성이 달렸다. 남문의 서쪽에는 수구문이 열려 있었다. 성 안에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장대들이 설치되었는데 북장대에는 "북장대"란 글자까지 새겼다. 조선시기에는 외성과 함께 내성까지 성이 더 넓게 이용되었다.

성 안에 13개의 못, 32개의 우물도 운영되어 수원을 풍부히 하였다. 외성의 남문 근처에는 성을 1753년에 쌓았다는 내용을 밝힌 글자 새긴 돌이 있다. 백마산성은 하나의 성이 고구려, 고려, 조선 등 서로 다른 세 시기에 쌓아진 부분성들로 구성 되어 있어 각 시기의 축성 형식과 방법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희귀한 유적이다.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전경 동쪽 성벽과 치 동남쪽 성벽 모서리 장대



남쪽 성벽 동문 서남쪽 모서리 장대



수구문 서문


출처 :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3.jsp?cpsno=329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