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547165.html


땅이름/ 북옥저②, 책성②

등록 :2004-06-17 00:00


역사서에서 북옥저, 동옥저, 남옥저라고 할 때 옥저의 지리상 자리에 따라 붙인 때도 있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사는 자리를 바탕으로 하는 때도 있다. 서기전 28년, 겨울 11월에 추모왕은 부위염(扶尉-)을 시켜 북옥저를 쳐서 그 땅을 성읍으로 삼았다. 고구려의 땅 넓힘을 생각할 때 이 ‘북옥저’는 연해주에 있던 ‘북옥저’가 아니고 초기 고구려(성천 지방)의 북쪽에 있던 옥저(남옥저)를 가리킬 가능성도 있다. 연해주에 있던 북옥저 땅은 책성(柵城)이 자리잡은 훈춘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서기전 28년 동부여에서 추모왕의 어머니 유화 부인이 숨을 거둔다. 저자들에 따라서 동부여를 285년 모용선비가 부여를 쳐들어 왔을 때 피난했던 (북)옥저 땅에 지배집단의 일부가 남아 세운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구려에는 다섯 부가 있었다. 처음에는 소노부에서 임금이 나왔다가 나중에 계루부에서 임금자리를 맡았다. 이렇게 바뀐 때를 태조대왕 때로 보기도 한다. 역사서를 보면 고구려의 순노부는 계루부보다 서열이 더 높았다. 이는 동쪽이 제의를 맡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이며, 책성 또는 유화 부인이 숨진 ‘동부여’ 땅이 순노부였을 것이다.


책성은 메주로 이름난 곳이었다. ‘메주’는 고려 때 ‘미조’(〈密祖), 조선 때 ‘며조/몌조’, 만주말 ‘미순’(←미수+ㄴ), 일본말 ‘미소’ 따위로 쓰인다. 일본말과 만주말, ‘미소’와 ‘미수(ㄴ)’는 닮았다. 책성 지역(동경용원부)에서 출발한 발해와 일본의 교역으로 일본말에 ‘미소’가 흘러갔을 법하다. 217년 가을 8월에 한나라의 평주 사람 하요가 천여 집을 이끌고 오자, 산상왕은 받아들이고 ‘책성’에 살게 하기도 하였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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