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ancient.or.kr/survey3/koku08.htm


(3)고구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왜국(倭國) 경략
 
광개토대왕 영락(永樂) 9년(399) 에 백제가 서약을 어기고 왜(倭)와 통호하니 백제를 방비하기 위하여 대왕이 평양(平壤)으로 순시하였다. 이때 신라(新羅)의 사신이 와서 왜가 신라를 쳐들어오니 구원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래서 영락 10년(400)에 대왕(大王)이 보병과 기병을 5만을 파견하여 신라(新羅)를 구원하고 왜를 쫓아 임나가라(任那加羅)에 이르러 안나인(安羅人)을 술병(戌兵)으로하고 시라성(始羅城)과 도성(都城)을 쳐 궤멸시키자 항복하였다. 그들이 다시 싸우려고 훼(喙),기탄(己呑),탁순(卓淳)등과 모의하여 병사를 일으키자 관병이 곧바로 탁순(卓淳)을 취하고 좌군(左軍)은 담로도(淡路島)로 하여 단마(但馬)에 이르고,우군(右軍)은 난파(難波)를 지나 무장(武藏)에 이르르니 대왕께서 곧 바로 배로 건너 축사(筑斯)를 공격하니 여러적들이 무너지매 그들을 나누어 군국을 삼고 안나인(安羅人)을 술병(戌兵)으로 하였다. 이에 신라(新羅)의 왕이 조공을 했다.
 
14년(404년) 왜(倭)가 대방(帶方)지역을 침입하여 약탈하고 석성도(石城島)로 부터 배를 연이어 띄워 바다를 덮으니 대왕이 노하여 평양(平壤)의 군사를 곧바로 보내 싸우게 하였다. 적을 깨치자 패하여 죽은 왜구의 수가 셀수 없었다.
{일본서기(日本書記)} 이중(履中) 5년(404)조에는 "축자국(築紫國)에 자리한 삼신(三神)이 궁중에 나타나 말하되'왜 나의 백성을 빼았아가는냐 나는 너를 참사하게 할 것이다'라하고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공중에서 외쳐가로되'검도태자왕(劒刀太子王)이다'라고 했고 뒤이어 천황이 담로도(淡路島)에서 사냥하였고 황비가 죽었다. 이해 10월에는 축자(築紫)의 차지부(車持部)를 파하고 그 땅을 모두 삼신(三神)에게 주노라"하였는데 검도태자왕이나 삼신은 고구려의 호태왕(好太王)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도 "난파연은 고구려국의 호태왕에게서 나왔다(難波連,出自高麗國,好太王也)"이라 하여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 신라를 침공한 왜(倭)를 쫓아 일본의 구주(九州)를 차지하고 본주(本州)를 침공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이중천황(履中天皇)은 담로(淡路)에서 싸우다가 황비(皇妃)가 전사 당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고구려(高句麗) 세력의 진출로 5세기에는 구주(九州)의 일부에 횡구식(橫口式),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1972년 나라현(奈良縣) 비조촌(飛鳥村)에서 발견된 다까마스(高松) 고분은 고구려 계통의 벽화(壁畵)가 그려져 있었고 1975년 나라현 조일향촌(朝日香村)에서도 고구려 계통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고구려(高句麗)의 광개토대왕은 400년에 왜를 쳐서 대마도와 구주지역에 임나연정을 설치하고 405년에 이중천황을 제거한 후 406년에 고구려 계통의 반정천황(反正天皇)을 세운 영향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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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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