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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성 남쪽 등구산·노청산 둘러싸여 "겹옹성" 방어기능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8>
중부일보 2010.03.02 남도일보 2012.01.19 00:00
산성마을 안에 빵처럼 봉긋 솟아 있는 금전산
우리 일행은 북문을 거쳐 산성으로 들어갔다. 북문에서 성 안쪽으로 흙길을 따라 얼마 안 가니 마치 잘 다져서 다듬어놓은 커다란 무덤처럼 봉긋하게 솟아난 자그마한 산봉우리 하나가 남북으로 산에 둘러싸인 산성 중간에 버티고 있다. 불규칙적이지만 산성의 펑퍼짐하게 꺼져 내려간 둥근 접시모양의 큰 바닥 중간에 커다란 빵 하나를 올려놓은 듯한 형국이다. 금전산(金殿山)이라고 하는 20m 높이의 제법 가파른 이 산봉우리에 올라갔다. 사방으로 성벽이 이어진 산등성이와 서문, 북문 터 위치가 완연히 보이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간 좁아지면서 북으로 구부러져 찌그러진 표주박의 손잡이 모양을 한 끝에 동문 터도 뚜렷하게 보였다. 금전산은 주변의 산비탈과 골짜기의 곡식밭, 과수원에 둘러싸였는데 살림집들이 그 속에 띄엄띄엄 널려 있다. 장대로 보이는 금전산은 사방으로 성벽 수비군과 연락을 주고받거나 지휘하기에 안성맞춤인 중앙 심장부임에 틀림없었다. 분명한 사령탑 위치다.
<금전산, 건안성의 "사령탑">
산 정상에는 아직까지 미약하나마 건물 터가 남아있고 일부 줄무늬 기와 조각이 눈에 띄었다. 왕계창 노인에 따르면 이 산 위에 왕이 머물렀던 금란전(金란殿)이 있었으며 개소문(蓋蘇文·중국 사람은 연개소문을 개소문이라 부른다)이 바로 이곳에서 군사를 호령했다고 어릴 적에 마을 노인들한테 들었다 한다. 참 그럴듯하게 실감나는 곳이다.
금전산에서 바라본 건안성은 마을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각각 산줄기가 하나씩 동서로 향해 뻗어 있고 그 등성이에 성벽이 쌓아져 있다. 그 동쪽 끝에서 남북으로 낮아지면서 서로 만난다. 이곳이 동문 터다. 남쪽에 있는 산 바깥쪽으로는 또 한 겹의 높은 산봉우리 두 개가 에워싸고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그 중 동남쪽에 있는 산을 등구산(騰溝山)이라 부르고, 서남쪽에 있는 산을 노청산(老靑山)이라 부른다. 이 두 산은 멀리에서 보기에도 높고 험한 바위산이다. 건안성을 놓고 말하면 남쪽으로 두 겹의 방어성이 있는 셈이다. 그 중 노청산은 서쪽으로 청석관을 사이에 두고 봉화대가 있는 돈대산, 우우산과 이웃하고 있다. 옛날에 그 서쪽으로 서해 바다(발해)물이 들락거리는 갯벌이었으니 청석관은 바로 이 양쪽 산 사이의 중요한 길목으로 남북을 드나드는 유일한 관문이었던 셈이다.
금전산에서 바라보니 서문은 좀 높아 보였는데 이 문을 통하여 서문 밖의 북관(北關)이라는 큰 시장을 거쳐 개주시로 갈 수 있다. 멀리 북쪽 성벽에서 바라본 서문 터 밖에서는 무슨 건물인지를 짓느라고 한창 공사 중이다. 거기서 북으로 바위산 자락이 끝나는 지점에 수문 터가 있는데 지금은 성벽을 자른 시멘트 길이 뚫려 있다. 이곳에도 북문 터와 마찬가지로 다져 쌓은 당시 토성 흔적이 단면으로 남아있다.
<독특한 성의 구조>
건안성 성벽은 동문과 북문 구역을 토성으로 쌓은 데 반해 남북 바위산 등성이에는 석벽을 쌓았다. 특히 남쪽 바위산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들이 있고 가파른 산비탈로 둘러쳐져 있어 오목하게 들어간 곳의 등성이를 따라 석벽을 쌓았고 북쪽 산 역시 등성이를 따라 석벽이 이어져 있다.
필자는 동문 터에서 북으로 성벽 터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돌로 쌓은 성벽 초석이 그대로 남아있다. 산등성이를 타고 서쪽으로 꺾어지는 곳에 장대 건물터 같은 성벽 초석이 보이고, 주변에 붉은 줄무늬 기와 조각들이 다수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장대 터가 틀림없다. 성벽 터를 따라 서쪽으로 약 20m 올라가면 북쪽에서는 가장 높은 산등성이다. 여기서는 서쪽으로 비교적 높아 보이는 북문 북쪽 산등성이까지 성벽이 이어진다. 성벽의 너비는 약 3~4m로, 바깥쪽 성가퀴를 제하고도 군마들이 성벽 위를 다닐 수 있는 너비였다. 눈짐작으로 1.5km는 되어 보이는 북벽에는 서쪽 한 단락을 제외하고 허물어진 성벽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고, 그 성벽 중 가장 높은 곳은 2m가량 된다. 성벽 바깥쪽은 경사 50도 이상의 가파른 비탈이어서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천혜 요새라 할 만하다. 서북쪽 끄트머리에서 성벽은 남으로 꺾어지는데 이곳에도 전망대인 듯한 건물터가 보였다.
건안성 산성을 둘러다보면 이 성의 규모에 걸맞은 웅장한 성벽은 보이지 않으나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동문과 서문, 북문터의 자연 지세와 산성의 형태였다. 동북쪽 장대에서 내려다보면 서남쪽에서 동으로 뻗어나간 노청산 줄기가 성 남쪽을 돌며 이어지다가 등구산을 넘어 성 동남쪽 밖에서 안으로 굽으면서 끝난다. (그 안쪽으로 그리 크지 않은 호수가 보인다) 성 북쪽에도 장대 바깥쪽으로 약간 낮은 산등성이가 이어지다가 남으로 굽으며 끝난다. 바꾸어 말하면, 동문 밖으로 또 한 겹의 커다란 옹성이 둘러싸여 있는 듯한 형국이어 이중의 방어시설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서문 역시 이와 비슷한 형태다. 서문 밖에 서쪽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서문을 감싸고 있다. 북문은 동문과 좀 다르다면 성 밖으로 "겹옹성"의 역할을 대신해 줄 만한 산이 없다는 것뿐이다. 이런 특이한 겹옹성 구조는 성문을 지키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어 고구려인의 슬기와 지혜를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산성 안 곳곳에 고구려유적>
성 안을 살펴보면 금전산에서 동문 쪽으로 길이 나 있고, 이 길은 되짚어 서쪽으로 금전산을 돌며 두 갈래로 갈라져 수문과 북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과의 주산지답게 곳곳에 사과나무들이 있고 동문 쪽으로는 수령 100여 년은 족히 됨직한 아름드리 늙은 배나무 수십 그루가 세월의 풍상을 품고 말없이 서있다.
금전산 서쪽에 수문 터가 북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왕계창 노인에 의하면 옛날에 서해(발해) 바닷물이 이곳까지 올라와 산성마을 안까지 들어왔는데 이를 막기 위해 수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수문 터로 현재는 길이 뚫려 있다. 그곳에 살던 인가들이 북문 쪽을 돌아가려면 너무 멀기에 여기에 길을 냈다고 한다. 길을 낼 당시 삽으로 파기 쉬웠다고 하는데, 이는 본래 이곳의 흙이 아닌 다른 곳의 흙을 날라다 메웠기 때문이다. 원래 수문 터였던 이곳은 메울 당시 안팎으로 굵은 말뚝을 촘촘하게 박았다고 하며, 세월이 지나면서 말뚝은 썩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구멍만이 남아 있는 것을 현지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도 보았다고 한다.
이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금전산에서 북쪽 성벽 사이에는 원래 공중다리도 있었다고 한다. 산성에 바닷물이 들어올 때 금전산과 성벽을 자유로이 오가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지금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금전산 마루 서쪽으로 마을 중간에 움푹 팬 웅덩이 하나를 볼 수 있고, 그 한쪽으로는 수령이 수십 년 돼 보이는 버드나무가 죽 늘어서 있는데 이곳이 바로 건안성 내 저수지 터로 음마만(飮馬灣)이라고 한다. 당시 성 안에 주둔하던 고구려군이 군마를 먹일 물을 저장해 두었던 곳이다. 옛날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이곳의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눈짐작으로 보아 5~6m 너비에 길이 10m가량 돼 보이는데 원래는 꽤 깊었다고 한다. 당시는 돌로 둘러쌓았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흔적도 없고 여름에 빗물이 고일뿐이다. 산성 안 곳곳에서는 1천400여 년 전의 붉은 줄무늬 기와 조각 등이 많이 출토됐고 돌절구 등 기타 석조물, 그리고 수나라 시기의 동전과 화살촉, 말등자 등 철기들도 출토됐다고 한다. 실제 필자도 산성 안을 둘러보면서 청석으로 다듬어진 다듬잇돌, 돌절구 등 옛것으로 보이는 석조물을 발견했다.
문득 1천400여 년 전 고구려군이 이곳에 군마를 주둔하고 있을 때 사시장철 마르지 않는 우물 5개와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음마만, 그리고 5km의 성벽에 둘러싸인 넓고 평평한 산성 안 분지와 밭들이 있어 얼마간의 군량을 비축한다면 오랫동안 마음 놓고 침입자를 방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격은 어렵고 방어는 쉬운 천혜적인 자연요새라는 점에 공감이 갔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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