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이명박 - MB정권 5년 막후스토리 [최종회] ‘빛과 그림자’
경제 위기 넘겼지만 경제 불씨 못살렸다
[일요신문] [제1098호] 2013년05월29일 08시50분

▲ 이명박은 ‘경제대통령’으로선 낙제점이나 G20 정상회의 유치 등은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사진제공=청와대

2013년 2월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그리고 춘추관으로 내려와 퇴임 연설문을 읽었다. A4용지 17쪽 분량이었다. 

“위대한 국민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지난 5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영광된 시간이었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선진국이 이제 우리의 현실이 돼가고 있습니다.”

이명박은 이날 자신의 브랜드 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해선 “논란도 있지만 해외 전문가들은 높이 평가한다”고 자찬했다. 그리고는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9명의 초상화가 걸린 청와대 세종실에 자신의 초상화를 거는 행사를 열었다.

건설사 CEO 출신으로 ‘경제 해결사’를 자임한 ‘경제 대통령’ 이명박은 과연 한국 경제를 살려냈을까. 그리고 17대 대선에서 그가 내건 747공약 즉, 7% 경제성장, 4만 달러 소득, 세계 7대 강국 진입은 성공했을까. 일자리 300만 개 창출은 어떻게 됐을까.

이명박 정부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7%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9%. 노무현정부(4.3%) 때보다 못하다. 7%의 절반도 되지 못했다.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는 공염불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2700여달러로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보다 1088달러 늘었다. 물가를 고려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것과 다름없다. 일자리 창출은 125만 개에 그쳤다. 300만 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국민은 747을 믿었지만 실은 무리수였다. 오히려 기획재정부는 2011년 국가채무에 따른 이자지급액이 50조 원 정도에 육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부동산과 교육 현실을 들여다봐도 이명박은 ‘경제대통령’으로선 낙제점을 받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부동산 대책은 2012년 9월 10일 나왔다. 주택을 사들일 때 내는 취득세는 50% 줄여주고, 미분양 주택을 사 집값이 올라도 5년간 오른 차익은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 관심이 쏠렸지만 시장의 반응은 ‘글쎄’였다. 5년 동안 20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성과가 없었고, 이명박의 부동산 대책은 ‘양치기 소년’의 외침과 같이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노무현 정부 때보다 못했다. 노무현은 부동산 값이 너무 올라서 각종 규제를 내놓았지만 오히려 집값은 널뛰듯 뛰었다. 반면 이명박은 부동산 값을 올리려고 규제를 완화했지만 집값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거래 실종’이라는 표현이 뉴스의 단골 표현 중 하나였다.  

▲ 2010년 11월 12일 G20 기업자금지원 경진대회 시상식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 하퍼 캐나다 총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우리나라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사교육을 줄이겠다면 공교육 강화를 강조했지만, 학부모의 부담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런 이명박을 두고 ‘백지왕’이라고 비판했다. 대선 당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2011년 갑자기 재검토 의사를 피력했고, 행정수도로서의 세종시도 경제 중심의 과학도시로 바꾸려 했다가 역풍을 자초했다. 영남권 신공항 유치는 ‘없던 일’로 해버렸다. 표를 공약(空約)으로 샀다는 비판이 고조됐다. 그 사이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은 남남이 됐다. “영남권의 분열과 반목은 어찌 보면 영남 대통령 이명박이 불러들인 것”이라는 이야기가 고향땅에서부터 나왔다.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정비사업으로 축소해 진행하면서 4년간 22조 원을 투입했지만 감사원은 최종 발표는 ‘총체적 부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4대강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지시한 상태다. 그 속의 비리 내역 의혹은 또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수질 악화와 환경 파괴에 대해선 시민사회단체와 환경단체가 현미경과 망원경을 교차해 들여다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펼치기도 전에 대북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두고도 이명박 탓을 하는 이들이 많다. 금강산 관광 중 박왕자 씨 피격 사건,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의 후속 격이 이번 정부에서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비핵·개방 3000’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주민 소득을 3000달러까지 올리겠다는 구상은 용도 폐기 운명에 처했다.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평가는 잔인하다. 올해 2월 모노리서치라는 여론조사기관이 전국 성인남녀 1082명을 대상으로 이명박 정부 평가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명박 정부가 ‘매우 못했다’라고 40.6%가 응답했다. 10명 중 4명 이상이 아주 부정적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대체로 못했다’라는 26.8%까지 합치면 10명 중 7명 가까이가 이명박의 국정운영을 질타했다. 보는 눈은 같다. 가장 못한 일로 ▷4대강 사업(39.9%) ▷인사부정 및 부패 척결(15.9%) ▷일자리 창출 및 경제 활성화(13.4%) ▷국민 통합 및 소통(12.9%) ▷남북관계 재정립(3.8%) ▷G20 정상회담 등 외교(2.0%)를 꼽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국민적 실망감이 이렇게 커서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아직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는 진행형이고,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역대 정부에서 매년 위기를 겪은 이명박으로선 할 말이 많을 듯하다. 국정 운영에 동력을 걸면서 가장 힘을 발휘해야 했던 취임 1년차에는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문제로 촉발된 촛불 정국이 지속됐고, 용산 참사 사건까지 터졌다. 

취임 2년차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위기를 맞았다. 측근비리 등으로 수사를 받던 노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자 이명박은 ‘정치적 타살’의 주범이라는 보이지 않는 혐의가 덧씌워진다. 제2의 촛불사태를 직감한 이명박 정부는 경찰병력을 이용해 서울광장을 폐쇄하지만 노무현 영결식 전날까지 이어지면서 국민적 반감이 극에 달하게 됐다. 

취임 3년차에는 ‘북풍’이 강했다. 2010년 초반부 터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말 터진 연평도 포격 사건은 이명박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안겼다. 그 사이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파문까지 일어 안팎으로부터 괴로웠다. 특히 집권 3년차에는 전국의 대학교수 200여 명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를 꼽았다. ‘4대강+천안함+민간인 사찰+영포회+한미자유무역협정+연평도’ 등 각종 사건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진실을 밝히고 반성하기보다는 감추려고만 하는 모습이었다고 꼬집은 것이다. 

재산이 많으니 돈 욕심을 버리겠다던 이명박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자부했지만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그들의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친인척과 최측근은 ‘돈 문제’에 얽혀 줄줄이 구속돼 체면을 구겼다. 아들 시형 씨는 내곡동 대통령 사저터 특혜 계약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특유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로 시작하는 화법은 주위의 조언이나 직언을 새겨듣지 않는 ‘불통 논란’을 불러왔고, 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고 한 최측근의 사면은 “낯이 두껍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위기 등 난관에서도 위기 극복에 앞장섰고, G20 정상회의 유치는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고, 한미·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무역의 활로를 넓혔다. 핵안보 정상회의를 열면서 국가 위상을 알리기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녹색기후기구(GCF) 사무국 유치 등은 이명박으로선 성과 중 하나다. 또 이명박은 실용주의를 외치면서 임기 중 49차례 84개국을 방문하면서 자원 외교에 주력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전 수주, 아덴만 구출 작전의 성공 등은 가뭄에 단비 같은 영광의 순간이었다.

최기서 언론인

 
잠깐 - 퇴임 이후의 삶

이명박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삶’도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박근혜 정부와 19대 국회의 집중 조사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부인 김윤옥 여사가 관심을 쏟아 왔던 ‘한식 세계화 사업’에 대해서도 국회가 감사에 전격 나서게 됐다. 지난 대선 말 불거진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검찰 수사가 예고돼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주목된다. 

국회는 또 이명박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밝히려고 혈안이 돼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 매출액이 70% 이상 급성장한 태아건설의 김태원 대표는 이명박과 고대 동기에다 현대건설 동기인데 이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예정돼 있다. 검찰도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이명박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최근 이명박은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내 실내 테니스장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토요일 오전을 독점해 제2의 ‘황제테니스’ 논란에 휘말렸다. 테니스를 사랑하는 이명박 내외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이 공원 실내 테니스장을 대통령스럽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명박이 강남구 논현동 사저와 별도의 사무실을 차린 것을 두고 앞으로 있을 송사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기서 언론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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