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전 서울청장, ‘국정원 댓글 오피스텔’ 압수수색 막았다
등록 : 2013.06.03 08:05 수정 : 2013.06.03 08:24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수서서, 직원이 문 잠가 대치때 영장신청 위해 검찰 가던 중에 “내사중인 상황에서 적절하냐” 김 청장의 전화압력에 되돌아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을 받는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씨의 오피스텔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을 막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압수수색영장 신청서를 제출하러 검찰청으로 가던 경찰 수사관은 도중에 되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2일 검찰·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11일 대선 여론조작 의혹을 받는 국정원 직원 김씨의 오피스텔을 급습했으나 김씨가 오피스텔 문을 걸어잠근 채 수사에 협조하지 않자 12월12일 오피스텔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영장 신청 서류를 갖춰 검찰청으로 향했다.

이에 당시 김용판 청장은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사중인 상황에서 압수수색영장 신청이 적절하냐’는 취지로 압력을 행사했다. 김 전 청장은 권 과장 외에 다른 수사 책임자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청장의 전화 이후 수서경찰서는 압수수색영장 신청 방침을 거둬들이고 검찰로 가던 수사관도 불러들였다. 사실상 김 전 청장의 지시로 압수수색영장이 철회된 것이다.

수서경찰서는 결국 이튿날인 13일 임의제출 형식으로 국정원 직원 김씨의 노트북 컴퓨터와 하드디스크를 제출받았다. 국정원 김씨는 임의제출하기에 앞서 데이터 일부를 지운 것으로 드러났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은 “임의제출은 압수수색과 달리 경찰이 아니라 김씨가 원하는 시점에 증거물을 제출하게 되므로 증거물 훼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의제출된 증거에서도 이번 사건 수사의 주요 단서가 된 아이디 20개와 닉네임 20개가 적힌 ‘메모’ 파일은 복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오늘의 유머’ 누리집에서 활동한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또 해당 메모 파일을 통해 김씨를 도운 민간인 이아무개(43)씨의 댓글·게시글 활동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제때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면 더 많은 증거가 확보됐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대 교수였던 표창원 박사는 당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대한 분석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시간의 경과와 임의제출 과정에서의 모호함으로 인해 증거의 무결성이 훼손됐을 수 있다. 경찰은 즉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했어야 했다”고 항의하며 경찰대 교수직을 사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권은희 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시점에서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은 말할 수 없다. 검찰 조사에서 관련 내용(김 전 청장과의 통화 내용과 당시 수사 상황 등)에 대해 증거가 남아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조만간 수사결과 발표가 나오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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