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없어진 '보금자리'
사업비 9조5000억 깎고 명칭도 없애 … 공공분양, 앞으론 전용 60㎡ 이하만
서울 가깝고 저렴해 나홀로 인기
"주변 집값 하락, 전세 상승 부작용"
중앙일보 | 주정완 | 입력 2013.06.03 01:59 | 수정 2013.06.03 05:57

이명박정부의 야심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됐다. '보금자리주택 건설' 얘기다. 박근혜정부는 이미 4·1 부동산대책에서 "기존 보금자리 추진계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박근혜 공약가계부'에선 향후 5년간 9조5000억원의 보금자리 사업비가 삭감됐다. 대신 이 예산은 새 정부 주택사업인 '행복주택 건설'에 쓰인다.


국토교통부는 2일 한발 더 나간 보도자료를 냈다. '보금자리' 명칭 삭제다. '보금자리주택 업무처리 지침'을 '공공주택 업무처리 지침'으로 바꿀 예정이다. 그러면서 공공분양은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 아파트로만 공급하기로 했다. 또 국민임대주택의 30%는 초소형 원룸형으로 짓겠다고 밝혔다.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한 일부 보금자리 지구 개발은 행복주택으로 대신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야말로 보금자리 흔적 지우기다.

보금자리주택은 '4대 강 살리기'와 함께 이명박정부의 대표 상품이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중소형 주택 70만 가구, 임대주택 80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초대형 주택정책이었다. 당시 정부는 조감도만 보여주며 사전 예약으로 입주자를 모집했다. 원래 공급계획은 40만 가구. 일단 서울 주변 그린벨트를 풀어서 짓는 보금자리주택은 무주택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도권 2기 신도시에 비해 서울과 훨씬 가까우면서 분양가도 매우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명박정부는 보금자리 공급계획을 150만 가구(수도권 100만 가구, 지방 50만 가구)로 크게 늘렸다. 공급 물량이 부족하면 기존에 국민임대주택 단지로 지정된 곳을 대부분 보금자리 지구로 전환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 말까지 총 50만 가구가 사업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빛이 강했던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값싼 보금자리 주택을 기다리면서 전세로 눌러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주택시장의 침체는 더욱 깊어졌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억대 전문직 종사자들도 무주택 자격을 유지해 보금자리 분양을 받으려고 집을 사기를 꺼리면서 주변 집값을 떨어뜨리고 전셋값만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도 박근혜 후보는 "보금자리주택이 주택거래를 위축시키는 면이 있는 만큼 분양형을 임대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택정책 변화를 예고했다. 현재 보금자리주택은 사업승인이 난 50만 가구를 제외한 100만 가구가 사업추진 전 단계이거나 미착공으로 남아 있다. 미착공 지구의 대표적인 곳이 광명·시흥 보금자리주택사업 지구. 총면적 1736만7000㎡(약 525만 평)로 '분당급 신도시'를 표방한 이곳은 2010년 5월 지구 발표 이후 사업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주택정책을 놓고 역대 정부마다 과거 정부 흔적 지우기로 국민은 헷갈린다. 박원갑 위원은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이명박정부에서 너무 크게 벌려놔서 사실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박근혜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르다는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주택정책은 장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국민 입장에선 정책의 일관성 없이 5년마다 바뀌니까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의 '늘리기'에서 박근혜정부의 '줄이기' 주택정책으로 인한 보금자리 수난사. 이는 곧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수난사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세종=주정완 기자 < jwjoojoongang.co.kr >
주정완 기자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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