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localCode=krcn&contentsId=GC05301429
강동 24개돌 (江東 二十四個돌)
중문 : 江东二十四块石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강동향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발해전체보기
강동 24개돌 유적지. 돈화시에 위치한 발해 시대 창고 유적 강동 24개돌 유적지 모습이다. 3줄로 돌들이 세워져 있다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돈화시(敦化市)에 있는 발해 시대 창고 유적.
개설
강동 24개돌 유적은 현존하는 9개의 24개돌 유적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좋으며, 발굴이 이루어진 유일한 유적이다. 중국 동북 지역에는 높이 70㎝ 이상 되는 높은 주춧돌[長柱礎石] 24개로 구성되어 있는 유적이 9곳 있는데, 모두 발해(渤海) 관할구역에서만 보인다. 돌이 24개라 하여 24개돌[二十四塊石]이라 불린다.
건립 경위
강동 24개돌 유적의 제작 연대는 불분명하지만, 출토 유물로 보아 발해 때 축조되어 요(遼)·금(金) 시대에도 계속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의 용도에 대해서는 ① 시신의 임시 보관소, ② 발해 기념성 건축물, ③ 신앙의 대상, ④ 역참, ⑤ 건조 건물, ⑥ 창고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창고 설이 가장 유력하다.
위치
강동 24개돌 유적은 돈화시 시내 동남쪽 주변 지세가 평탄한 곳에 있다. 북쪽으로는 목단강(牡丹江)을 끼고 있으며, 돈화에서 연길(延吉)과 영안(寧安)으로 가는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유적 부근에는 반경 10㎞ 이내에 동모산(東牟山)[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 영승 유지(永勝遺址), 오동성(敖東城), 육정산 고분군(六頂山古墳群) 등 발해의 주요 유적들이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지역은 발해 초기의 도읍이자 중심지로 추정되고 있다.
형태
주춧돌의 재질은 현무암이며, 8개씩 3줄로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북을 향해 배열되어 있다. 현재 가운데 줄의 오른쪽에서 다섯번째 주춧돌이 없어져 23개만 남아 있다. 각 주춧돌들은 원형 혹은 방형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비교적 잘 다듬어진 상태이다.
정면 길이를 보면, 각 줄의 첫 번째와 여덟 번째 주춧돌의 중심 간 거리는 A줄(앞줄)이 9.64m, B줄(가운데 줄)이 8.95m, C줄(뒷줄)이 9.24m이다. 좌우 측면의 길이는 각각 6.95m 정도이며, 각 줄 간 중심거리를 살펴보면 A줄과 B줄의 사이가 3.69m, B줄과 C줄의 사이가 3.26m를 유지하고 있다. 각 주춧돌의 높이는 대략 0.8m 정도이다.
A줄의 주춧돌 상태는 B줄, C줄에 비해 상당히 교란되어 있다. B줄과 C줄의 주춧돌 간 중심거리가 대부분 1.07∼1.45m인 반면 A1 주춧돌과 A2 주춧돌 사이는 1.9m 정도로 다른 주춧돌에 비해 사이가 많이 벌어져 있었다. B줄의 경우는 대부분의 주춧돌이 제자리는 지키고 있으나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 C줄은 다른 줄에 비해 위치와 기울기가 원상태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 줄별 주춧돌 간 중심거리는 대부분 1.07∼1.38m를 유지하고 있어 각 주춧돌에 직접 기둥을 세우는 구조 방법은 불가능한 배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A1, A8, B1, B8, C1, C8 등 네 모서리에 있는 6개의 주춧돌에는 윗면을 평평하게 잘 다듬고, 세로 방향으로 길이 58.5∼79㎝, 폭 35∼46㎝, 깊이 1∼2㎝의 홈을 팠다. 또한 그 끝 부분에는 약 3∼4㎝ 정도의 홈을 더 파 턱을 두고 있다. 현재로서는 귀틀재를 걸쳤을 때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다른 24개돌 유적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구조로서 건물 몸체를 튼튼하게 받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황
현재 급속한 도시화로 유적 원형이 훼손되어가고 있다. 2005년 이전에는 도로와 같은 높이에 있었으나 철길을 지나는 도로를 입체로 만들기 위해 길을 지하화하는 바람에 지금은 유적과 도로가 10m 이상의 높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강동 유적은 1981년 ‘연변조선족자치주급 중점 문물 보호 단위(延辺朝鮮族自治州級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어 있으며, 1.5m 정도 높이의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강동 24개돌 유적을 비롯한 다른 8곳의 24개돌 유적은 발해 시대의 건축 유형 가운데 용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유적이다. 향후 다른 유적도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24개돌 유적의 실체가 명확히 밝혀졌으면 한다.
참고문헌
이병건, 『발해 24개돌 유적에 대한 건축적 연구』(건국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1)
강동 24개돌 한글 안내석
'발해 >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패 24개돌 - 세계한민족문화 (0) | 2021.01.16 |
---|---|
발해 24개돌 - 세계한민족문화 (0) | 2021.01.16 |
새롭게 조명되는 발해 복식 - 우리역사넷 (0) | 2021.01.04 |
한중 이견속 발해는 고유문자 있었나 - 충북일보 (0) | 2020.02.24 |
[강인욱의 테라 인코그니타 18] 발해 ‘십자가’ 유물은 개방과 공존의 상징이었다 - 한겨레 (0) | 2020.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