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508205704587?s=tv_news
[단독] "폭도들이 선동" 5·18 같이 겪고도 다른 기록
임태우 기자 입력 2020.05.08 20:57 수정 2020.05.08 21:25
<앵커>
올해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40년 되는 해입니다. 저희가 당시 국방부가 작성했었던 상황일지를 단독으로 입수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세우면서 당시 군이 저지른 일을 숨기려 했던 게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을 시민 또는 학생이라고 표현했던 광주시의 상황일지와는 전혀 다릅니다.
같은 현장을 보고도 다르게 쓴 2개의 기록을 임태우 기자가 비교해봤습니다.
<기자>
1980년 5월 18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에 반발해 거리로 뛰쳐나온 전남대 학생들.
당일 오전 11시, 국방부 상황일지에는 학생 200여 명이 계엄군과 투석전을 벌였다고 적혔습니다.
학생들이 계엄령 해제와 '전두환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는 광주시 상황일지와 전혀 다릅니다.
대규모 시위로 번진 이튿날 오전, 국방부는 학생들이 경찰 쪽으로 화염병을 던졌다고 적었는데 광주시는 무장군인 25명이 곤봉으로 시민을 때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은형/국가기록원 기록연구사 : 군의 일지에서는 '(폭도들이) 시민을 선동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광주 동구청 일지에서는 '시민이 빵과 음료수를 시민군에게 나눠주고 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발포상황, 군의 발포 사실을 시간대별로 낱낱이 적은 광주시 상황일지와 달리 국방부는 폭도가 전남도청과 도경을 점거했다고 적었을 뿐 발포 사실은 뺐습니다.
23일 낮, 폭도들이 기관총으로 도청을 지키고 있다는 군 상황일지에는 군의 사격으로 학생 2명이 숨졌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김희송/5·18 연구소 연구 교수 : (시민들이) 명확하게 40년 전에 사실을 목격했지만, 그 기록을 국가가 지웠고 신군부가 12년 동안 정권을 장악했었기 때문에 광주의 진실은 철저하게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계엄군이 도청에 진입한 27일 시신으로 덮인 참혹한 거리를 기록한 광주시와 달리 군은 '점령 완료' 이 네 글자로 일지를 마무리했습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만행을 사실대로 기록하려 했던 광주시와 달리 국방부는 신군부의 만행을 은폐하고 왜곡하려 했던 겁니다.
두 기관의 상황일지는 오는 13일 서울 역사박물관 5·18 40주년 특별전에서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흥식, 영상편집 : 박진훈)
임태우 기자eigh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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