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찌질한 키보드워리어였다"
[현장] 광화문 KT앞 600여 명 집결... 경찰, 평화 집회에 과잉대응 '눈살'
13.06.21 22:02 l 최종 업데이트 13.06.21 22:14 l 박소희(sost) 강민수(cominsoo)
▲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총학생회 시국선언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대학생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와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 "민주주의 파괴 촛불아 모여라"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대학생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와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 유성호
"국정원의 실체가 어땠습니까? 드라마에서 보는 멋진 모습이었습니까? 그들은 찌질한 '키보드워리어'였습니다.(환호) 검찰의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정원은 종북좌파를 물어뜯기 바쁜 정권의 개였습니다. 새누리당은 이제 이런 정권의 개들에게 먹이를 주고 보듬어주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양효영,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10학번)
19일부터 시작된 대학가 시국선언이 마침내 촛불을 밝혔다. 지난 14일 검찰수사 발표 이후 이어지던 시민사회와 국민들의 저항이 지난 2008년 한 해를 달궜던 촛불집회로 번질 조짐이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21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KT 본사 앞에서 '민주주의 수호 대학생 촛불 문화제' 열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했다. 300여 명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밝힌 촛불은 주변이 어둑해진 뒤에는 경찰 추산 600여 개의 촛불로 확대됐다. 참가자들은 '여론 조작 국정원 규탄한다', '국정원 선거 개입 국정조사 실시하라', '선거개입 민주주의 파괴 촛불아 모여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18대 대선, 시험장에서 스마트폰 발견된 격"
▲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응원 "눈물겹도록 고맙다, 대학생"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대학생 촛불문화제에 한 시민이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지지하며 '눈물겹도록 고맙다! 대학생! 사랑한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촛불집회는 촌철살인의 자유발언으로 이어졌다. 양효영(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10학번)씨는 자유발언에 나서 "검찰·경찰·국정원을 동원해 당선된 자는 우리를 통치할 자격이 없다, 민주주의 파괴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며 "적당한 수준에서 무마하려면 우리 국민들도 적당히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참가자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촛불시민 4·19'라고 밝힌 한 시민은 지난 대선을 수능시험에 비유했다. 그는 "시험장에서 실수로 전자계산기, 스마트폰 발견되면 시험은 무효처리된다"며 "하물며 나라의 운명을 뽑는 대통령 선거가 국정원의 부정으로 개판이 됐다"고 분노했다. 이어 그는 "26년 전, 6월의 뜨거웠던 아스팔트에 목놓아 불렀던 민주주의가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의해 곤두박질쳐졌다"며 "(6·10민주항쟁에서) 넥타이 부대가 학생을 지원했듯이 다시 학생들이 앞장선다면 넥타이를 풀고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외쳤다.
시국선언을 주도한 대학생들도 함께 했다. 석자은 덕성여대 부총학생회장은 "선배들이 그렇게 목놓아 외쳤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느낀다"며 "많은 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가 이만큼 성장했는데 다시 고꾸라진 것 같다"고 분노했다. 이어 "'일베충(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들이 우리를 개념 없는 대학생으로 매도했지만 우리는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며 "더 많은 학생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이 거리를 촛불로 물들게 만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나래 한대련 의장 역시 "오늘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나와서 민주주의를 다시 지킬 수 있다"며 "오늘 500~600명으로 시작하지만 내일은 더 큰 촛불로, 그 다음날은 더 큰 촛불을 붙여 민주주의 지켜나가자"고 외쳤다.
"대학생들의 시국선언, 색깔 입혀서 볼 사안 아냐"
▲ 다시 모인 촛불, "국정원 여론조작 규탄"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대학생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대학생들과 함께 촛불을 든 시민들도 많았다. 친구와 함께 온 회사원 이영지(29)씨는 "제가 1인 시위나 서명운동 같은 걸 직접 하긴 어렵고, 머리수라도 채우러 왔다"며 "대학생들이 주최하는 행사라는데, 대학생은 아니지만 함께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 (정치) 성향을 떠나서 누가 봐도 이번 일은 분명 문제"라며 "색깔 입혀서 볼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문화제는 참가자들이 촛불과 손피켓을 높이 들고 "국정원 대선 개입 국정조사 실시하라" "선거개입 정치개입 국정원을 규탄한다" "축소은폐 사건 조사 철저하게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대학생이 앞장서서 민주주의 지켜내자" "선거개입 민주주의 파괴 촛불아 모여라" 등을 외치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경찰은 깃발을 든 일부 대학생들이 불법 행진을 시도한다며 귀가하려는 참가자들을 막아섰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애들 집에 보내줘라, 길 열어라", "왜 길을 막냐"며 항의했다. 30여 분간 대치한 끝에 경찰은 길을 열었다.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수고했다, 조심해서 가라"고 대학생들을 격려했다. 경찰은 이날 버스 10여 대를 동원해 세종로 한쪽 도로를 채우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한편 촛불문화제에 앞서 종북좌익척결단·자유민주수호연합·나라사랑실천운동 등 보수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집회를 "국정원 댓글을 뻥튀기기 한 '제2의 광우뻥'"이라고 비판했다.
조영환 <올인코리아> 편집인은 이 자리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좌익사이트에서 댓글 하나 달았다고 국정원장 처벌하라는 주장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폭동과 똑같은 논리"라며 ". 50만 명 정도 정신병자들이 청와대에 쳐들어가려고 했다, 폭동이다 폭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검찰이 미미한 댓글로 원세훈 기소한 것은 국정원 약화시키려고 한다"며 "검찰이 북 지령을 받고 국정원 해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보수단체, "국정원 수사는 불순한 의도" 종북좌익척결단, 나라사랑실천운동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국정원 댓글 의혹 수사는 원세훈 원장 구속과 국정원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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