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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문학
2. 한문학
 
발해인들이 문학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는 고원고(高元固)와 관련된 글에서 조금이나마 더듬어 볼 수 있다. 그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 과거시험에 함께 급제한 서인(徐夤)을 만나러 민중(閩中, 福建省 福州)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 때 그가 지은「참사검부(斬蛇劍賦)」,「어구수부(御溝水賦)」,「인생기하부(人生幾何賦)」를 발해 사람들이 집집마다 병풍에 금으로 써놓았다는 말을 전했다. 이들이 급제한 것이 892년이므로 그 시기는 10세기 초가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발해인의 문학작품은 극소수만 전해진다. 여기에는 문장과 시가 있다. 문장에는 사적인 것보다 외교와 관련하여 국가 사이에 오고간 공식 문서들이 중심을 이룬다. 문장 형식은 당나라에서 크게 유행하던 변려문이 대부분이지만 산문도 있다.
 
발해는 당나라·일본·신라·거란·돌궐 등의 이웃 나라들과 외교 교섭이 있었지만, 당나라 또는 일본과 오간 것만 전해진다. 발해에서 당나라에 보낸 것이 1편, 발해에서 일본에 보낸 것이 23편이다. 발해가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것이 145차례 이상이지만, 발해가 당나라에 보낸 문서로는 연대를 확인할 수 없는 하정표(賀正表) 1편만 있다. 발해에서 일본에 보낸 23편의 문서 가운데에서 발해 국왕이 보낸 것이 16편이고, 발해 중대성이 일본 태정관(太政官)에 보낸 관청 문서가 7편이다. 이들은 외교 문서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고 있고 대부분 상투적인 어구로 채워져 있다. 이 밖에도 배구(裴璆)가 동단국의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일본 조정에 사과하는 글을 올린 것이 있다.
 
이상은 외교와 관련된 문장들이지만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쓰인 문장도 없지는 않다. 그 하나는 발해 승려인 정소(貞素)가 영선(靈仙)의 죽음을 애도해 지은 시에 붙인 서(序)가 있다. 또 하나는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묘지문이다. 이들은 서(序)와 명(銘)을 갖추어 당나라의 전형적인 묘지문 형식을 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3대 문왕의 배우자인 효의황후(孝懿皇后) 및 9대 간왕의 배우자인 순목황후(順穆皇后) 묘지도 발굴되었다.
 
발해인의 시는 정소가 중국에서 지은 1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에 파견된 사신들이 지었다. 일본 문인들과 시문을 교환했던 발해 사신으로는 758년에 파견된 부사 양태사(楊泰師), 814년에 파견된 대사 왕효렴(王孝廉)과 부사 고경수(高景秀) 및 녹사(錄事) 석인정(釋仁貞) 등이 있다. 또한, 858년에 파견된 부사 주원백(周元伯), 871년에 파견된 대사 양성규(楊成規)와 부사 이흥성(李興晟), 882년에 파견된 대사 배정(裴頲), 894년에 파견된 대사 배정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부사, 907·919·929년에 파견된 대사 배구(裴璆)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문장에 조예가 있는 발해 사신을 접대하는 데에 신경을 썼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시는 양태사 2수, 왕효렴 5수, 석인정 1수, 석정소 1수로서 모두 9수이다. 오언율시 2수, 칠언고시 1수, 7언절구 6수로서 발해인들이 7언시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내용으로는 멀리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는 향수를 그린 것이 있는가 하면, 일본 조정으로부터 환대를 받아 즐거운 마음을 표현한 것도 있다. 고국을 그리는 시로서 양태사의「밤에 다듬이 소리를 듣고」라는 서정적인 시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가을밤에 다듬이질 소리를 듣고 고국에 있는 부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일본 조정에서 환대를 받아 즐거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는 왕효렴의「봄날에 비를 보고 정자(情字)를 얻어 지음」이란 시가 있다.
 
발해 멸망 뒤에 유민으로서 문학 작품을 남긴 인물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인물로서 요나라 때의 천조제 문비 대씨(天祚帝 文妃 大氏), 금나라 때의 왕준고(王遵古)·왕정견(王庭堅)·왕정균(王庭筠)·왕만경(王萬慶) 집안, 고간(高衎)·고헌(高憲) 집안, 장여위(張汝爲)·장여능(張汝能) 형제 등이 있다.
 
발해에 한자 이외에 고유문자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구당서』발해말갈전에는 “문자와 서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기와에 찍혀 있는 판독하기 어려운 글자들도 있어서 그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고유문자를 사용한 문장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발해인이 남긴 묘지문이나 시문은 한자를 일상적으로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현재로서는 발해에 고유문자가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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