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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화백과사전 (검색어) "발해" 글에서 [문화] 중 "3. 불교 및 기타 종교" 내용만 가져왔음.


발해의 종교
3. 불교 및 기타 종교
 
발해에는 건국 초기부터 불교가 있었다. 이것은 건국하던 해에서 멀지 않은 713년 12월 당나라에 갔던 발해 왕자가 절에서 예배하기를 청했던 기록에서 확인된다.
 
또한 발해 불상 상당수가 당나라보다 이른 시기의 양식을 취하고 있고, 절 지붕에 사용되었던 막새기와의 연꽃 문양이 고구려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니, 이것은 발해 불교가 같은 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영향을 받기보다는 과거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측면이 많다는 것을 증언해준다.
 
발해 불교가 발전기에 접어든 것은 제3대 문왕 시기이다. 그의 존호에 ‘금륜’과 ‘성법’이란 단어가 들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불교 용어이다. 특히 금륜이란 용어에서 문왕 스스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지향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문왕대에 조성되었던 상경(上京), 중경(中京), 동경(東京) 주변에 절터들이 집중되어 있다. 그의 딸인 정효공주 무덤 및 그 앞에서 발굴된 10호 고분은 무덤 위에 탑을 세운 독특한 양식이다.
 
9세기에 들어와 불교가 융성하면서 승려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발해 승려로서는 석인정(釋仁貞, ?∼815), 석정소(釋貞素, ?∼828), 살다라(薩多羅), 재웅(載雄) 등이 있다. 이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석인정과 석정소이다.
 
석인정은 희왕(僖王)대의 인물로서, 814년 녹사의 직책으로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 곳에서 병사했다. 그는 시를 잘 지었으니, 일본에서 지은 시 한 수가 남아 있다.
 
기록이 제일 많이 남아 있는 승려는 석정소이다. 그는 희왕대부터 선왕대까지 활동했다. 일찍이 당에 유학해 813년 가을에 일본 유학승 레이센〔靈仙, ?∼828〕을 만나 사귀었다. 그 후로 오대산(五臺山)에 들어간 레이센과 일본 조정 사이를 왕래하면서 서신과 물건을 전해 주는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다가 828년에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귀족층에서도 불교와 관련된 활동이 보인다. 762년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왕신복(王新福) 일행이 도다이지〔東大寺〕에서 예불하였던 사실을 보여 주는 고문서가 전해진다. 그리고 814년 사신으로 갔던 왕효렴(王孝廉)은 일본의 유명한 승려인 쿠우카이〔空海, 774∼835〕와 시문을 나누었다. 861년 사신으로 갔던 이거정(李居正)이 일본에 전해 준 다라니경(陀羅尼經)도 전해진다. 814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고예진(高禮進)이 금불상과 은불상을 바치기도 했다.
 
926년 발해가 멸망하자 많은 유민들이 고려로 망명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927년 3월에 들어온 승려 재웅이 포함되어 있다. 발해 불교의 명맥은 요동 지방에서 활발히 이어졌다.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928년에 유민들을 요동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킴으로써, 현재의 요양(遼陽) 지역이 그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불교 전통은 금나라 때까지 끊어지지 않았고, 발해 유민들이 금나라 황실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발해의 불교 유적으로는 절터와 탑터, 불상, 사리함 등이 있다. 절터는 모두 40곳 정도가 확인되었다. 주로 통치의 중심지였던 5경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불교가 지배자를 중심으로 숭배되었을 것이다.
 
탑으로는 영광탑(靈光塔)만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탑이 승려들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것만 아니라 정효공주 무덤탑처럼 일반 무덤 위에 세워진 경우도 있다.
 
불상으로는 금불, 금동불, 동불, 석불, 철불, 전불(塼佛), 소조불(塑造佛) 등이 있고, 벽화 조각도 남아 있다. 석불로서는 상경성 2호 절터에 남아 있는 석불과 일본 오오하라〔大原〕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함화4년명비상(咸和4年銘碑像)」이 대표적이다. 발해 불상의 전형을 이루는 것은 전불이다. 이들은 크기가 10㎝ 내외로 아주 작으며, 틀빼기를 해서 구웠다.
 
형식면에서는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 선정인여래좌상(禪定印如來坐像), 미타정인여래좌상(彌陀定印如來坐像), 2불병좌상(二佛竝坐像), 3존불(三尊佛), 5존불(五尊佛) 등이 있다. 이들은 지역적으로 구분되어 발견되는데, 상경 지역에서는 관음상(觀音像), 동경 지역에서는 2불병좌상이 주축을 이룬다. 이것은 지역적으로 관음신앙과 법화(法華)신앙이 각기 유행하고 있었던 사실을 반영한다.
 
이 밖에 발해인의 종교로서 기독교 일파인 경교(景敎)가 들어왔던 흔적이 일부 보인다. 또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샤머니즘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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