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directory/item.do?levelId=cr_001_0030_0030
http://contents.nahf.or.kr/directory/item.do?levelId=cr_001_0020_0070_0050
* 같은 사이트에 내용이 상당히 겹치므로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발해 성 터 - 6. 니콜라예프카 성터"와 "니콜라예프카 성터" 두개 글을 합쳤습니다. 사진이 하나씩 밀린 듯하여 겨울 항공사진 하나는 "노보고르데예프카 성터"에서 가져왔습니다.


니콜라예프카 성터

파르티잔스크 강 주변에 위치한 니콜라예프카 평지성은 이등변 사다리꼴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둘레는 약 1.6km이다. 성벽의 측면은 강돌로 쌓았으며, 그 내부를 진흙과 강돌로 채웠다. 성벽의 높이는 10m, 너비는 25m이다. 성에는 치 12기와 문지 3기가 남아있으며, 성벽의 외면에는 해자가 존재한다.

[그림13] 니콜라예프카성터(1992년)

이 성은 평면이 이등변 사다리꼴, 또는 크라스키노 성터처럼 D자형에 가깝다. 이런 모습은 항공사진에서도 확인된다(사진 13). 성 안에 직선으로 지나는 것은 철로이다. 오른쪽 위로 보이는 마을이 성터 명칭을 따오게 된 니콜라예프카인데, 스탈린 강제 이주 전 이곳에 거주한 고려인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성 왼쪽으로는 강물이 흐른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1,550m이고, 높이는 10m에 이를 정도로 높다. 내부에 內城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지표상으로는 잘 구별되지 않는다. 성에는 치 12개, 문지 3개가 남아 있는데, 2개 문지에는 옹성이 있다. 항공사진에서도 東門址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ㄱ자형 옹성의 모습이 잘 확인된다(사진 14). 성벽 밖으로는 해자가 남아 있는데, 이 사진에서는 겨울이라서 실개천처럼 성문 밖을 돌아가고 있다.

[그림 14] 니콜라예프카성터 동문지(1992년)

이 성은 발해 때에 축조되어 사용되었고, 금나라 때에 다시 사용되었으며, 이 때에 성벽도 크게 중축되었다. 따라서 현재 모습은 발해 때의 원형은 아니다. 원래 이 성은 금나라 때 것으로 여겨오다가 성 안에서 당나라 때의 관직이 새겨진 부절이 발견되면서 발해 때에도 이 성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종전에는 발해의 지방에 있던 장군이 당나라로부터 부절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여, 이곳을 발해 15부의 하나인 定理府의 소재지로 비정해왔다. 그런데 근래에는 발해 영역 밖에 있던 靺鞨 首領이 독자적으로 당나라에서 받은 것으로 보아서 발해 국경선이 이곳까지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니콜라예프카성터 항공사진(1992년). 사진제공 : 송기호



동벽 밖의 해자. 사진제공 : 국립문화재연구소


동벽에서 본 성 내부. 사진제공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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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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