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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국   

개마국(蓋馬國)은 고구려 초기에, 개마고원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나라였다. 개마국(蓋馬國)은 또한 웅심국(熊心國)이라 하는데 북개마대령의 북쪽에 있다. 구다국에서 200리 떨어져 있다. 구다국은 옛날에 돌로국이라고 불렀는데 북개마대령의 서쪽에 있고 월지국이 그 북쪽 500리에 있다. 기원 전후 고구려 주변에 위치했던 소국(小國) 개마란 이름은 현도군의 3현 가운데 서개마현(西蓋馬縣)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동(東)개마의 존재도 상정해 볼 수 있다.

단군 왕검이 주인씨의 후손은 개마국(蓋馬國)에 봉하고, 여수기는 예(濊)의 임금이 되게 하였으며, 부소와 부우 및 작은 아들인 부여는 모두 나라의 서쪽 땅에 봉하니, 구려(句麗)와 진번(眞番) 및 부여(夫餘) 등의 여러 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양정은 원래 개마국의 왕자였다. 양정은 개마국의 왕자였던 시절 금와와 동무였으나 한나라가 개마국을 멸망시키고 왕자 양정을 볼모로 잡아왔다고도 하고 잡혀간게 아니라고도 한다. 개마국 몰락 직전 한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현토군의 태수 자리에 오른다거나 또는 개마국이 망하자 현토성으로 가서 태수가 된다. 양정은 처음에는 한나라 궁정 호위 무사로 있었다. 그는 재능이 너무 특월해 한나라 황제가 그를 현토성 태수로 봉한다.

대무신왕 14년에 태자로 책봉되고 22년에 동부여를 공격하여 고구려에 병합시킨다. 그 해 개마국을 쳐서 국토를 살수 이북까지 확대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개마국은 26년(대무신왕 9) 고구려에 복속되어 군현으로 편제되었다 한다. 대무신왕이 이끄는 고구려 군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그 왕은 죽이고 백성들은 해치지 않고 군현으로 삼았다. 고구려 는 개마국의 국모(國母)를 잡아가고 그 땅을 합쳐 군현으로 삼았다.

또 이때 개마국 주변에 위치했던 구다국(句茶國)도 개마국의 멸망 소식을 듣고 두려워 고구려에 항복했다고 전한다. 서기 32년에는 왕자 호동을 시켜 낙랑군을 정벌한다.

위치
 
개마국의 위치는 고구려와 동옥저 사이에 위치한 개마대산(蓋馬大山)에 있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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