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살려낸 '좀비' NLL의 최후
[사건의 재구성 ②]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전말... '국정원' 상황 일지
13.07.03 09:19 l 최종 업데이트 13.07.03 15:53 l 고정미(yeandu) 이주연(ld84) 선대식(sundai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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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개입에 NLL까지...정치에 뛰어 든 국정원 상황 일지 2일부터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국정조사는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사상 처음이다. 국정원은 지난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한 댓글을 달면서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무단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 고정미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은 참 바빴다. 국정원은 '댓글 작업'뿐 아니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작업에도 몰두해야 했다. 

당시 통일비서관이었던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 1주년 즈음인 2008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 정상회담 대화록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의록은 1급 비밀 기록물에서 2급 비밀 공공기록물로 재분류됐다. 

실제 청와대는 2차례 대화록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 증언에 의하면, 청와대는 2009년 대화록 전문을, 2010년에는 대화록 발췌록을 각각 국정원으로부터 보고받았다.

한동안 거론될 일 없던 회의록은 대선을 두 달 앞둔 2012년 10월 8일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정문헌 새누리당은 의원이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순식간에 정국은 'NLL 파문'으로 물들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정 의원의 발언이 사실이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강수를 뒀다. 대선 정국을 떠돌던 NLL 파문은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사그라졌다. 

대선 후 '죽은 이슈'였던 NLL, 다시 정국 '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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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영선 위원장과 새누리당 권성동, 민주당 이춘석 간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이후 '죽은 이슈'로 여겨졌던 NLL 논란에 또다시 불이 붙은 건 지난달 17일 민주당 소속 박영선 법사위원장의 "NLL 포기 논란은 국가정보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는 발언 때문이었다. 박 위원장의 '시나리오' 발언은,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원세훈은 NLL 회의록 공개하라고 해도 안 했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한 말의 반박 격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이를 기점으로 'NLL 국면'으로 상황을 몰아갔다. 박 위원장의 발언 3일 후인 지난달 20일 새누리당 소속 정보위 위원들은 단독으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을 열람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난 지 채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다. 민주당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물타기"라며 반발했지만, 새누리당은 거침이 없이 "주권 포기"라며 몰아쳤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난달 24일 남재준 국정원장은 '2급 비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일반 문서로 재분류한 후 국회 정보위에 전달했다. 군사작전을 벌이듯 전격 공개한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에서는 정보기관이 누설자"라며 현 상황을 비꼬았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고한 일, 회의록을 전면적으로 공개한 일 뒤에는 모두 국정원이 있었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위원장의 (NLL 관련) 발언이 나오자마자 이렇게 군사작전처럼 (대화록을 공개)한다는 것은 회의록을 공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 뒤에는 청와대가 도사리고 있다는 의심도 일었다. "중대 문제를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고 국정원이 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회의록이 공개됐지만, 예상됐던 방향의 반대로 바람이 불었다. 한국 갤럽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이 'NLL 포기가 아니'라고 본 응답자는 53%에 달했다. 'NLL 포기'라고 본 응답자는 24%에 그쳤다. 결국, 국정원 대선 개입 국면을 덮으려 NLL을 들고 나선 새누리당이 역풍을 맞은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엎친 데 덮친 격. 새누리당이 대선 전부터 회의록을 불법으로 입수했다는 정황 증거가 드러났다. 지난달 26일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권영세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은 지난해 12월 10일 "우리가 집권하면 NLL을 깐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권 전 실장은 남북정상회담 내용도 전했는데, 그 발언이 회의록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불법 입수해 '선거용'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인물은 김무성 박근혜 캠프 선대본부장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4일 부산 유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에게 하는 말"이라며 회의록에 담긴 내용을 읽었다. 당시에는 조명되지 않았던 이 발언은 김 의원 본인이 지난 달 26일 "지난 대선 때 이미 대화록을 입수해서 읽어봤다"고 발언한 것이 알려짐에 따라 재조명됐다. 그에게도 '불법 열람' 의혹이 뒤따랐다. 

형세는 새누리당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민주당은 "NLL 문건 공개나 대선 개입 등 국정원 사건의 본질은 이명박근혜 두 권력 중심 세력이 만든 정권 연장 음모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급기야 문재인 의원은 "NLL 포기 발언이 사실이면 정계 은퇴하겠다"며 초강수를 뒀다. 그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회의록 전문을 공개하자고 수차례 요구했다. 

이에 여야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회의록과 녹음기록물 등 자료 일체의 열람·공개를 국가 기록원에 요구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NLL 관련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민주당과, 여기서 더 물러설 수 없는 새누리당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2일 국회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 제출 요구안'이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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