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74434

백제의 건국연대는 조작되었다...한 200년쯤?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1 드라마 <근초고왕>, 첫 번째 이야기
10.11.08 16:54 l 최종 업데이트 10.11.08 16:54 l 김종성(qqqkim2000)

▲  KBS1 <근초고왕>. ⓒ KBS

5개의 서북방 유목민족들이 북중국에 난입하여 16개의 나라를 세운, 중국 역사 속의 5호 16국 시대. 그로 인해 동아시아가 일대 혼란기에 빠져든 서기 4세기. 이런 혼란한 정세를 활용하여 백제의 영역을 남과 북으로 쭉쭉 확장시킨 백제 제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년). 

바로 이 근초고왕 시대를 소재로 한 KBS1 <근초고왕>이 지난 6일 첫 전파를 탔다. 이 드라마의 기획취지는, '신라 중심주의'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근초고왕이라는 걸출한 백제 군주를 조명하고 나아가 백제사의 진면목을 널리 알리는 데 있다.  

이런 취지 하에서 <근초고왕>은 고구려 시조 주몽(이덕화 분)의 후처인 소서노(정애리 분)가 전처소생인 유리 중심의 후계구도에 불만을 품고, 두 아들인 비류·온조와 함께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서 백제를 건국하는 장면을 드라마의 서두로 장식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고구려에 원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백제인의 정서가 근초고왕 시대까지 계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백제를 다룬 기존 사극들을 포함해서 드라마 <근초고왕> 역시 신라 중심주의를 크게 탈피하지 못하는 모습을 첫 방송에서부터 보여주었다. 

백제가 신라보다 뒤늦게 건국되었다?

백제가 신라보다 뒤늦게 건국되었다는 <삼국사기> 기록에 대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백제 건국의 장면을 재구성한 것이다. 드라마 제1부의 초반부에서는,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었고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는 자막과 해설을 내보냈다. 

사실, 백제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서는 기존 사극들뿐만 아니라 역사교과서까지도 온통 신라 중심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백제 건국연대에 관한 <근초고왕>의 실수는 비단 이 드라마의 실수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실수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럼, 백제는 정확히 언제 건국되었을까? <삼국사기> 권23 '온조왕 본기'에서 김부식은 "한나라 성제 홍가 3년"에 백제가 건국되었다고 했다. 한나라 성제 황제(재위 기원전 33~기원전 7년) 때의 연호인 홍가(鴻嘉) 3년은 기원전 18년을 가리킨다. 

김부식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 신라가 고구려·백제보다 약간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는 김부식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고로 신라가 원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설'이 조작이라는 점은, <삼국사기>의 여타 부분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사료들을 참조해보면 금방 드러나는 일이다. 

백제의 건국연대를 풀 수 있는 단서는 다름 아닌 김부식의 <삼국사기> 안에 있다. <삼국사기> '온조왕 본기'에서 김부식은 주몽의 후계구도에 불만을 품은 온조왕이 어머니 및 형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세웠다고 했다. 따라서 백제의 건국연대는 고구려의 건국연대보다 '조금 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따라서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정확히 도출하면, 백제의 건국연대도 함께 도출되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했듯이, 김부식은 신라 건국보다 20년 뒤인 기원전 37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삼국사기>보다 훨씬 먼저 나온 <한서> 기록과 충돌한다. 중국 한나라(기원전 202~서기 8년)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 '지리지' 권28하(下)에서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립할 당시에 한사군의 하나인 현토군 안에 고구려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했다. 


▲  <한서> ‘지리지’ 권28하(下). 빨간 줄의 왼쪽 부분이 본문에 인용되었다. <한서> ⓒ 김종성

"(기원전 107년에) 현토군은 호(戶)가 4만 5천 6개이고, 장정이 22만 1845명이었다. (그 아래에) 현이 3개 있었으니, 고구려현·상은대현·서개마현이었다."

이에 따르면,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기 전부터 고구려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기존의 고조선과 사대관계에 있었던 고구려가 고조선의 멸망을 계기로 한나라와의 사대관계 속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한나라가 고구려 지역에 형식적이나마 현(縣)이라는 행정단위를 설치한 것이다. 

당시 한나라가 이민족 영역에 세운 군(郡)이나 현은 실질적으로는 토착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다시 말해, 한나라가 실제로 지배권을 행사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는 자국의 패권을 따르는 이민족의 영역에 자국의 행정단위를 설치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이민족들은 한나라로부터 경제지원을 챙겼다. 그러므로 한나라가 고구려 땅에 설치한 현이라는 행정기구는 그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에 이미 고구려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라가 삼국의 원조'라는 김부식의 기록이 허위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광개토왕비에 따르면, 고구려 건국 시기는...

그럼, 고구려가 건국된 연대는 정확히 언제일까? 이 문제를 푸는 데에 도움이 되는 2가지 단서가 있다. 첫째는 광개토대왕비문이고, 둘째는 당나라 고종과 가언충의 대화다. 

첫째, 장수왕이 건립한 광개토대왕비문. 광개토대왕이 시조 주몽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이 비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몽의) 이 기업을 이어받았으며, □ 17세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광개토대왕)이 二九(18세)에 등극하여 영락태왕이라 일컬었다."


▲  <증보문헌비고> 권36에 수록된 광개토대왕비문. <증보문헌비고> ⓒ 김종성

□는 글자를 식별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주목해야 할 것은, 광개토대왕이 주몽의 17세손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김부식의 주장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주몽의 12세손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있는 "누구는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는 누구의 아들"이라는 김부식의 기록을 종합하면, 광개토대왕은 주몽의 12세손이 된다.

광개토대왕이 주몽의 몇 대 후손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고려시대 김부식이 아니라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다. 장수왕 본인이 "우리 아버지는 주몽의 17세손"이라 했으니, 우리는 김부식보다는 장수왕의 말을 보다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

광개토대왕이 주몽의 12세손이 아니라 실은 17세손일 경우에는 광개토대왕과 주몽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그만큼 더 멀어지게 된다. 5세대가 더 멀어진다는 것은 적어도 150년은 더 멀어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 세대는 보통 30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주몽의 건국 시점은 <삼국사기> 기록보다 최소 150년 이전으로 더 올라가게 된다. 기원전 37년에서 최소 150년을 더 앞당기면, 적어도 기원전 187년 이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는 잠정적 결론이 나온다. 


▲  <삼국사기>에는 광개토대왕이 주몽의 12세손인 것처럼 되어 있다. ⓒ 김종성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김부식이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늦춰서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구려 왕들의 가계(家系)를 조작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는 누구의 아들'이라고 해야 할 대목에서 '누구는 누구의 아우'라고 조작하는 방법으로 세수(世數, 조상과 후손의 간격)를 축소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구려의 존립기간을 축소한 뒤에 고구려 초기에 재위했던 일부 왕들의 역사를 완전히 삭제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구려 초기의 왕들이 여러 명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고종과 가언충의 대화에선 '기원전 233년'

둘째, 당나라 고종과 가언충의 대화. 당나라 고종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 당시의 당나라 군주였다. 백제를 멸망시킨 때로부터 8년이 지난 서기 668년에 신하인 가언충이 고종을 격려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30년 가까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고구려와의 전쟁에 지쳐 있는 자신의 주군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다. <삼국사기> 권22 '보장왕 본기'에 나오는 말이다. 

"고구려의 비기(秘記)에서는 '900년이 안 되어 80대장이 멸망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씨가 한나라 때부터 나라를 가진 이래로 오늘날 900년이며 (우리나라 장수) 이적의 나이가 80입니다."


▲  본문에 인용된 가언충의 발언. ⓒ <삼국사기>

'건국 900주년이 되는 해에 80대장에 의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고구려 서적의 예언을 활용하여, 고구려 건국 900주년이 되는 금년에 80세 고령의 장군인 이적을 파견해서 공격하면 올해는 꼭 고구려를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 해에 80세의 이적 장군이 평양성을 함락함에 따라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 당나라가 서기 668년에 고구려에 대한 총공세를 강화한 것이나 평양성 함락의 영광을 80세 노장에게 맡긴 것은, 민간의 예언서를 활용하여 고구려 멸망이 마치 하늘의 조화에 의한 것처럼 비춰지도록 하기 위한 당나라 사령부의 상징조작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종과 가언충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서기 668년 현재의 당나라 사람들은 고구려가 900년 역사의 나라라고 인식했다는 점이다. 서기 668년으로부터 900년을 소급하면, 기원전 233년이 된다. 그러므로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233년이 고구려의 건국연대인 것이다. 고구려는 신라는 물론이고 한나라(기원전 202년 건국)보다도 훨씬 더 먼저 건국되었던 것이다. 한편, 북한 측에서는 고고학적 유물을 바탕으로 기원전 277년이 고구려의 건국연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900년 역사의 고구려가 한나라 때에 "나라를 가졌다"라고 한 가언충의 말은, 기원전 202년 이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고구려가 중국과의 사대관계 속에 있었던 기간 동안에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보고, 그 기간의 고구려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가언충의 말은 한나라 이전부터 고구려라는 정치집단이 존재했음을 부정하는 말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사료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고조선 멸망 이전에 이미 고구려가 존재했다는 <한서>의 기록, 광개토대왕이 주몽의 12세손이 아니라 17세손이라는 광개토대왕비문의 기록, 멸망 당시의 고구려가 건국 900주년이 되었다는 당나라 고종과 가언충의 대화를 종합할 때, 우리는 기원전 37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고구려는 그보다 적어도 2세기 이전에 건국되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2세기 이상 앞당겨야 하다면, 백제의 건국연대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백제 시조는 고구려 시조보다 약간 늦게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문헌 기록에 의거해서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233년이라고 본다면 백제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233년 이후'가 될 것이고, 북한 측의 주장대로 고고학적 유물에 의거해서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277년이라고 본다면 백제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277년 이후'가 될 것이다.  

따져보지 않으니, 교과서도 드라마도 오류

어느 경우로 보든 간에, 백제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18년으로 잡은 <삼국사기>의 기록은 명백한 거짓이다. 김부식의 주장대로 신라가 고구려·백제보다 '약간'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게 아니라, 실은 고구려·백제가 신라보다 훨씬 먼저 '출발'한 것이다.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설'이 조작이라는 점은 위와 같이 사료 상으로 금방 확인되는 일인데도 한국의 역사교과서에서는 아직도 김부식의 주장을 따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과서에서 이렇게 잘못을 범하고 있으니 TV 사극이나 역사소설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2007년에 발행된 한국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밑줄 친 부분에는 백제의 건국연대가 기원전 18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교육과학기술부

물론 백제가 먼저냐 신라가 먼저냐 하는 것 자체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대국가들의 건국연대가 조작됨에 따라 이들의 초기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200년 이상 뒤로 늦춰서 잡음에 따라, 그 2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백제와 고구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김부식에게 국민의 혈세를 맡겨 신라 중심주의 역사의식을 만들도록 한 대가로, 우리는 백제·고구려의 초기 역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김부식 때문에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으려면, 서울·경기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고고학적 유물 발굴 작업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 백제·고구려의 건국연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양국의 초기 역사를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양국의 역사 전체도 올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신라가 가장 먼저 건국되었고 신라가 한국 고대왕국의 원조라는 선입견을 갖고 <삼국사기>를 읽을 경우, 우리는 김부식이 신라 중심주의를 주입시키기 위해 <삼국사기> 곳곳에 매설해둔 '지뢰'에 발목을 다칠 수밖에 없다. 은연중에 신라 중심주의에 푹 빠져 한국 고대사를 올바로 조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포함해서 TV 사극이나 역사소설 등이 고대왕국 백제의 위상을 올바로 재구성하려면,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묻어둔 '지뢰'부터 제거하는 것이 순서다. 백제의 건국연대를 좀 더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그러한 작업의 출발점이다. 드라마 <근초고왕>이 백제 역사의 진면목을 좀 더 올바로 조명해주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