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008
17세 청소년 사망, 언론은 또 한계를 드러냈다
[ 온라인 모니터 보고서 ]
민주언론시민연합 media@mediatoday.co.kr 승인 2020.03.24 02:22
3월18일 오전 11시경, 기저질환 없는 17세 청소년이 폐렴 증세를 보이다 사망했습니다. 이후 3월19일 오후 2시경, 보건당국은 고인이 코로나19 음성 판정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코로나19는 기저 질환자나 고령자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판단해왔기에, 폐렴으로 인한 17세 청소년의 사망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보건당국이 고인의 코로나19 재검사까지 시행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언론의 관심은 더욱 집중되었죠. 하지만 길어야 이틀, 실제로는 27시간만에 코로나19 음성 최종 판정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언론은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차분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자칫 ‘젊고 건강한 사람도 코로나19로 사망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오해를 야기해 방역 대응 전반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미확인된 것을 쉽게 추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17세 청소년 사망’을 ‘코로나19 양성’과 연결지어 보도했고, 코로나19로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쏟아냈습니다.
폐렴으로 청소년 사망하자 한계 드러낸 우리 언론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최종 발표를 종합해보면 평소 건강하고 중국 방문 이력도 없던 고인은 3월10일부터 발열 증상을 보여 일반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았으나 증세가 악화되어 13일 영남대학교 병원에 입원, 18일 오전 11시16분 경 급성 폐렴 및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고인은 발열 및 폐렴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총 13차례에 걸쳐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는데 12번째까지 모두 ‘음성’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3월18일 마지막 13번째 소변 및 객담 검사에서 영남대 의료진이 음성으로 확정할 수 없는 이상 소견을 발견했고 이를 질병관리본부에 해석 및 정밀 검사를 요청했습니다. 방역당국은 서울대학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도 의뢰해 정밀 교차 검사를 진행했고 3월 19일 오후 2시 경, 최종 ‘음성’ 판정을 발표했습니다.
고인의 코로나19 재검사가 진행됐던 3월18일 오전 11시 경부터 3월19일 오후 2시 경까지, 섣부른 보도를 내며 유가족과 국민 모두를 혼란케 한 보도들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첫째, 병원 측과 방역당국이 모두 정밀 재검사를 진행 중이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둘째, 영남대병원에서 방역당국에 정밀검사를 요청하면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미결정’이라 보고한 것을 구체적 설명도 없이 ‘일부 양성’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런 기사들이 모두 ‘속보’ 형식으로 시시각각 쏟아졌다는 점에서 우리 언론계는 재차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 지난 3월18일 ‘대구 17세 남성 사망’ 사건을 속보로 전한 언론
‘코로나19로 10대 사망자 발생’? 시민들 속인 속보들
세계일보는 18일 오후 3시 40분경, <속보-페렴증세 사망 17세 소년, 코로나19 ‘양성’ 판정>(3월18일)이라는 제목의 속보로 “18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사후 소년을 상대로 실시한 검사에서 코로나19 ‘양성’이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3월18일 오후 2시 경부터 보건당국이 “(코로나19) 최종 검체 검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타 매체 속보가 나오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보도입니다. 이 기사는 3월20일 현재까지도 수정이나 삭제되지 않은 채 세계일보 온라인판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3월18일 오후 2시9분에 나온 한국일보 <속보-대구서 기저질환 없는 17세 숨져… 보건당국 “정밀 검체 검사중”>(3월18일)은 제목에서 ‘코로나19 양성’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첫 문장은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0대 사망자가 처음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질병관리본부가 최종 검체검사를 하고 있다”입니다. 기사 본문에는 보건당국이 정밀 검사를 하고 있다고 전하면서도 ‘코로나19 10대 사망자가 처음 발생했다’고 확언한 것입니다.
▲ 지난 3월18일 ‘대구 17세 남성 사망 관련’ 한국일보 기사
문화일보 <17세 소년 사망에… “젊고 건강한 사람도 위협” 공포감>(3월19일)입니다. 문화일보는 아예 제목에 “젊고 건강한 사람도 위험”하다는 공포감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기사는 방역당국의 최종 음성 판정 발표가 나오기 직전인 3월19일 오후 12시21분에 나왔습니다. 1시간30분 정도만 기다리면 ‘코로나19 음성’이 확인될 텐데, 그 짧은 순간을 참지 못하고 ‘젊고 건강한 사람도 위험하다’는 자극적이고 불확실한 기사를 내고 말았습니다.
▲ 지난 3월19일 ‘대구 17세 남성 사망 관련’ 문화일보 기사
일부 언론의 섣부른 ‘양성 판정’ 보도, 왜?
이렇게 많은 언론사들이 방역당국의 정밀 검사가 진행 중임을 알면서도 코로나19 양성이 나온 것처럼 보도를 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검사 결과가 언제쯤 나올지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 하루 이틀 기다려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이 힘든 일이었을까요? 언론사들은 부정확하더라도 일단 추측성 기사를 내놓는 것이 ‘공익’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고인의 음성 판정 결과가 발표된 이후 사태의 내막을 구체적으로 밝힌 뉴시스 <사망 17세 영남대병원 소변 검사서도 '양성' 나온 적 없다>(3월19일) 등의 보도를 보면, 언론의 무책임과 성급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3월 18일, 고인이 사망하기 직전 이뤄진 영남대병원의 코로나19 소변 및 객담 검사에서 영남대 의료진은 음성으로 확정할 수 없는 이상 소견을 발견했고 이에 따라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미결정’으로 판단해 질병관리본부에 정밀 검사 및 유권해석을 요청했습니다.
언론들은 이것을 두고 구체적인 맥락과 상황 설명도 없이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보도해버린 겁니다. 3월18일 보도 제목과 내용에서 모두 ‘코로나19 양성 나왔다’고 속보를 썼던 세계일보 역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세계일보 <사망한 17세 고교생, ‘미결정’을 ‘양성’ 소견으로? 진단검사 중단>(3월19일)는 “A군이 숨지기 직전 시행한 검사에선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미결정’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의료진이 ‘양성일 수 있다’고 본 소견을 일부 언론에서 ‘양성’이라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커졌다”고 짚었습니다. 그 “일부 언론”에 자사도 포함된다는 사실도 함께 성찰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3월 19일, 고인의 최종 음성 판정을 발표하면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영남대 병원의 검사 원재료를 재판독한 결과 검체가 들어있지 않은 대조군 검체에서 PCR 반응을 확인했다면서 영남대 병원의 기술 오류 또는 실험실 오염이 의심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영남대 병원의 코로나19 검사는 일시 중단됐죠.
‘청와대 책임론’에 고인 이용한 한국경제
고인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기사도 보입니다. 한국경제는 <“건강한 사람 마스크 쓰지마” 논란 2주 뒤 17세 소년 코로나19 의심 사망>(3월19일 김명일 기자)이라는 기사로 청와대 정책실장의 ‘마스크 양보 제안’으로 인해 청소년 사망자가 발생한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과 관련해 ‘건강한 분들은 마스크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 후 2주 만에 기저질환 없는 17세 소년이 폐렴 증세로 사망해 논란”이라는 겁니다.
▲ 지난 3월19일 ‘대구 17세 남성 사망 관련’ 한국경제 기사
한국경제는 “김 실장 발언 이후 일부에서는 마스크 양보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약 2주 뒤인 18일 대구에서 폐렴 증세를 보이던 17세 A군이 사망했다”면서 김상조 실장 발언은 물론 시민들의 마스크 양보 운동까지 고인의 사망과 연결지었으며, “A군 사망 원인이 코로나19로 밝혀질 경우 정부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정확한 코로나19 감염 여부가 나오기도 전에 17세 청소년 사망의 책임을 정부에게 돌린 겁니다. 이 문장은 최종 음성이 확인된 이후인 3월20일 현재까지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이 기사가 입력된 시각은 3월19일 오전 10시 36분입니다. 여전히 당국의 정밀 검사가 진행 중인 때였으며 2시간 30분 정도 후 방역당국의 최종 음성 판정이 나왔죠. 결과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이 아니었는데 한국경제는 미리 예단하여 ‘정부의 마스크 관련 실책으로 인해 코로나19 청소년 사망자가 처음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상의 허위 정보를 구성했습니다.
일부 네티즌 뒤에 숨어 ‘음성 판정 못 믿겠다’는 머니투데이
3월19일 오후 2시 경 보건당국의 최종 음성 확정 발표 이후에도 객관적 근거 없이 시민들의 불안을 부추기려 시도한 기사도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대구 17세 소년 “코로나 양성 아니라더니 더 문제” 불안한 엄마들>(3월19일 오진영 인턴기자)은 일부 네티즌들의 댓글 몇 개만으로 ‘불안한 여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기사는 “숨진 17세 고교생 A군이 최종적으로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고 단언했는데 그 근거는 맘까페 등 인터넷상의 댓글 6개뿐입니다. 머니투데이가 받아쓴 인터넷 반응 중에는 “양성이 아니라면 더 문제”, “음성 판정을 믿을 수 없다”, “소변에서도 양성이고, 폐도 하얗게 변해 있었다는데 부검도 안 해보는 건 이상하다”와 같이 최종 검사 결과조차 믿을 수 없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머니투데이가 최종 검사 결과까지 믿고 싶지 않았다면 합당하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야지 이렇게 일부 댓글 뒤에 숨어 있지도 않은 불신을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언론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는 ‘댓글 저널리즘’ 중에서도 매우 부적절한 사례입니다.
▲ 지난 3월19일 ‘17세 청소년 사망’ 양성 아니라도 불안하다는 댓글 부각한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는 불과 보름 여 전,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를 그대로 받아써 <단독-‘우린 KF94 보냈는데’…중국이 보내온 마스크는?>(3월5일 오진영 인턴기자)라는 오보를 낸 바 있습니다. 우리가 마스크를 보내줬던 중국이 우리에게 마스크를 줄 때는 부적합 판정 받은 마스크를 줬다는 기사였죠. 작성 기자도 동일한 인턴기자입니다. 부실한 기사를 면밀하게 검증하고 보도 여부를 판단해야하는 머니투데이 데스크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겁니다.
‘속보’로 전할 필요가 있었을까?… 더 신중해야하는 ‘감염병 사태 보도’
폐렴 증상으로 인한 17세 청소년의 급작스런 사망은 그 자체로 안타까운 사건이며 혹시 모를 코로나19와의 관련성으로 인해 방역당국과 국민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는 음성이 나왔으나 중앙방역대책본부나 병원 모두 아직 정확한 사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급속도로 악화된 폐렴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어 입원시키지 못했던 ‘코로나19 외 여타 중증 환자 의료 공백’ 문제도 시급합니다.
언론들은 이런 상황을 더 심도 있게, 더 많이 짚어 보도를 냈어야 합니다. 물론 그런 보도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 최종 음성 확인 후 사후적 조명에 집중됐습니다. 최종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17세 청소년 사망’을 ‘코로나19 양성’과 붙여 속보를 내고, 음성 결과가 나오자 ‘그것도 못 믿겠다’는 낭설을 만들어 낸 보도들은 고인을 조회수 장사에 이용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의료 공백 문제’는 충분히 짚어줄 수 있었으며, 그랬어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아닌 중증 환자들이 갈 곳이 없었다는 것이 이번 17세 청소년 사례에서도 문제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내막을 알기 힘든 언론 소비자의 상식에서 봐도 이번 17세 청소년 사망과 관련된 보도들은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최종 검사가 진행 중이라는 속보가 수도 없이 나온 상황에서 꼭 더 속보를 내면서 음성 환자를 양성인 것처럼 전했어야 할까요? 그 어떤 사안보다 더욱 신중하고 면밀해야 할 재난 상황에서, 우리 언론이 오히려 더 속보 경쟁에 매달리며 왜곡보도와 오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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