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09_0030_0020_0010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1장 우리 옷의 기본형과 시대별 변천 > 2. 고대 복식의 변천
부족국가 시대의 복식
김문자
고조선의 복식에 관해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나 이긍익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別集)』에는 “머리에 개수(蓋首)하는 법을 가르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의복의 정제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 고유의 복식이 이때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에 의하면 “연(燕)나라 장수 위만(衛滿)이 조선에 입국할 때 추결만이복(椎結蠻夷服)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추결’은 고대 우리나라 수식(首飾, 머리 장식)인 ‘상투’를 말하며 『한서(漢書)』 「조선전(朝鮮傳)」에도 나타난다. ‘만이복’은 중국 복식과는 다른 호복을 착용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복식도 한족과는 달리 스키타이계 호복임을 알 수 있다.
부여의 복식에 관해서는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동명왕편(東明王篇)에 부여의 시조 해모수(解慕漱)를 묘사한 기록이 있다. 즉, “머리에는 조우(鳥羽)의 관(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龍光)의 칼을 찼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5) 이는 조우관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다. 조우 관은 변형모(弁形帽)에 새의 깃을 꽂은 것으로, 변형모는 ‘변(弁)’이라는 글자 그대로 두 손을 합장한 것과 같은 모양이다. 유목 수렵 생활을 영위하던 중에 땅에 떨어진 아름다운 새의 깃을 주워 머리에 꽂은 것이 시원(始原)일 것이나 유목 민족의 조류 숭배 사상에서 오는 샤먼적 의의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초의 조우관 착용자로 기록된 해모수는 신화의 성격상 샤먼의 역할을 겸한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인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새의 깃털을 관에 끼워 넣는(揷植) 풍습은 유목민의 조류 숭배 사상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유입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의복 장식품>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판 장식품으로 8엽의 고리가 달려 있다. 주로 의복이나 말 장식 등에 매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보면 “부여인들은 백의(白衣)를 숭상하여 백포(白布)로 만든 소매가 큰 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었다.”고 하여 중국 복식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부여가 추운 지대였던 만큼 귀족들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덧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을 당하면 남녀 모두 순백색 옷을 입고 부인들은 포로 된 얼굴을 덮는 천을 착용하고 장신구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옥저와 동예는 후에 고구려에 복속되었는데 옥저의 복식 제도는 고구려와 동일하였다. 동예의 의복 제도는 남녀 모두 둥근 깃 옷을 입었으며 남자는 은화 장식을 하고 여자는 바지를 입지 않고 비단에 솜을 넣어 누빈 중국식의 내리닫이 옷을 착용하였다.
삼한 가운데 마한의 관리자층은 관모를 착용하였으며, 의복은 직물로 만든 포(袍)를 입고 짚신류나 가죽신을 신었다. 또한, “마한 사람은 영주(瓔珠)로 의복에 부착시켜 장식하였다.”라는 기록을 통해 구슬로 의복을 장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방 유목·기마 민족이 의복에 영주나 금은 등으로 장식한 것과 같이 발굴된 고분 출토품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공통된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한 사람들은 변형모를 착용하고 의복을 청결하게 하는 한편, 누에를 쳐서 직물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필자] 김문자
5) 이규보(李圭報)·이승휴(李承休), 박두포 옮김, 『동명왕편(東明王篇)·제왕운기(帝王韻紀)』, 을유문화사, 1974,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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