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증거인멸 꼬리잡혀…검찰발표 73건은 ‘빙산 일각’
등록 : 2013.07.25 20:02수정 : 2013.07.25 22:40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25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맡았던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분석팀 수사관들이 업무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찍힌 지난해 12월16일 새벽 4시2분께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상규 의원 제공 동영상 화면 갈무리

‘댓글 삭제 동영상’ 공개
94건 글 작성한 김아무개씨 주기적으로 흔적 지워오다 의혹 불거지자 37건 집중삭제 
130건중 127건 없앤 아이디도, 사라진 글들은 복원 불가능
검찰수사때 증거 대부분이 이미 사라졌을 가능성 커

25일 공개된 경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동영상은 국정원 댓글의 증거인멸 상황을 경찰이 즉석에서 목격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국정원이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혐의로 고발된 뒤 끊임없이 제기돼온 증거인멸 의혹이 사실상 꼬리를 밟힌 것이다. 검찰이 밝혀낸 국정원의 범죄 사실은 이미 상당한 증거인멸이 끝난 뒤에 남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도 보여준다. 선거법 위반 댓글이 73개뿐이라며 국정원을 두둔해온 새누리당 등 보수 세력의 처지는 더욱 궁색해지게 됐다.

지난해 12월12일 민주당의 고발 이후 경찰이 확보한 것은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씨의 노트북에서 발견한 20개 아이디뿐이었다. ‘오늘의 유머’ 아이디 16개와 중고차 매매 사이트 ‘보배드림’, 쇼핑 정보 사이트 ‘뽐뿌’ 각각 2개씩이다. 증거인멸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에 경찰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서버 자료는 이 3곳뿐이다.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의 경우 아이디를 몰라 서버 압수수색도 못했다. 이들 포털은 작성자가 게시글을 삭제하면 바로 서버에서 기록이 사라진다. 오유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는 삭제 정보를 3개월가량 남겨둔다. 검찰이 15개 인터넷 사이트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수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말~5월 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개월이나 지난 터라 이미 대부분의 증거가 사라진 뒤였다.

국정원 직원 김씨는 ‘오유’에 94개의 게시글을 작성했지만 이 중 73개의 글을 삭제한 바 있다. 그중 절반이 넘는 37개가 사건이 불거진 지난해 12월11일 이후 집중적으로 삭제됐다. 김씨가 12월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문을 잠근 채 나오지 않은 것 역시 증거인멸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지난달 14일 검찰이 공개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의 동영상 기록을 보면, 김씨의 노트북을 분석하던 수사관이 “이게 다 댓글이거든요. 날짜별로 그냥.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전문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삭제한 흔적이…”라는 대화 내용이 나온다. 김씨가 전문 프로그램까지 사용해 댓글을 삭제한 것으로 보이는 근거다.

김씨만 증거인멸을 해온 것이 아니다. 검찰이 발표한 국정원 범죄일람표에 포함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이디 ‘leese***’의 경우, 지난달 29~30일 게시글 130개 중 127개를 삭제했다. 호남 비하 발언으로 비난받은 아이디 ‘좌익효수’도 최근 해당 커뮤니티를 탈퇴하며 16개 게시글과 3451개의 댓글이 담긴 블로그가 사라졌다.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게시글이 73개뿐인 것은 이처럼 이미 대부분의 증거가 조직적 삭제 작업에 의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수사팀의 한 검사는 “증거를 없애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정보요원이 삭제하고 남은 것을 찾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73개의 게시글을 발견한 누리집들을 살펴보면 더 뚜렷하다. 73개 글 중 경찰이 지난해 12월 말 압수수색 등을 통해 지워진 데이터까지 확보한 오유·보배드림·뽐뿌의 글이 45개로 전체의 60%를 넘는다. 나머지 주요 포털 등에서 작성된 게시글은 대부분 삭제된 이후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남은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다음 아고라 등 포털사이트의 경우 2012년 7월 이후 삭제된 글이 많아 확인이 어렵거나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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