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nocutnews.co.kr/news/5314613


민심 들끓으니 n번방 '뒷북 공약'…알고는 내놓나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백담 인턴기자 2020-03-24 15:18 


정당들, 총선 공약으로 디지털 성범죄 공약 내세워

공약 중 일부는 이미 계류 중인 법안 내용과 중복

전문가 "의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개선 필요 절감"


(그래픽=안나경 기자)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전국민의 공분이 폭발하자 정치권에서 4.15 총선 공약으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공약들이 이미 국회에 계류 중이거나 실효성이 의심돼 졸속 공약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정당들은 공통적으로 '성폭력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특별법)이 디지털 성폭력을 근절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파악해 해당 법안 개정을 공약했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성 착취 영상물 유포자 뿐 아니라 구매자와 소지자를 모두 처벌 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성인 여성의 성착취 영상을 소지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처벌 기준이 없다. 음란물을 소지해 처벌을 받는 행위는 아동 청소년 음란물 소지자에 한정된다.


또한 민주당은 성착취 영상물 유포 협박 등 디지털 성범죄 사각지대에 있는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 기준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영상을 이용한 협박성 성범죄에 주목했다.


2020 희망공약개발단 '여성 안전 공약'에 따르면 통합당은 성폭력특별법을 개정해 촬영 동의와 상관없이 영상을 이용한 협박도 성폭력 처벌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기존의 음란물 협박 범죄의 경우 성폭력특별법이 아닌 형법상 협박죄나 강요죄를 적용 받아 성범죄로서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다만 이번 n번방 사건에서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친 구매자와 소지자 처벌에 대한 공약은 없었다.


국민의당은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정보통신망법을 비롯한 관련법을 개정해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를 공약했다. 구체적인 개정안을 살펴보면 △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불법 촬영물의 제작자·유포자·소비자 처벌 △ 피해자가 특정되는 촬영물과 재범에 대한 가중처벌 △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는 플랫폼 사업자의 법적 책임 강화 등이다.


정의당은 성폭력특별법을 개정해 디지털 성폭력 촬영물 재유포시 가중처벌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또 성착취 사진이나 영상 유포 시,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음란물 유포)이 아닌 성폭력특별법을 적용할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진선미 의원은 지난해 10월 유포 협박이나 강요를 성범죄로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쏟아지는 공약 점검해보니…이미 관련 법안 '수두룩'


그러나 일각에서는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한 각 정당의 공약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관련 공약들을 담은 일부 법안이 이미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발의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은 국민의당 공약처럼 촬영물이 유포되는 플랫폼에 형사 책임을 묻고 있다. 이 법안에는 불법 촬영물 유통사이트 운영자가 그 전송을 방지하고, 촬영물 당사자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을 시에는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지난해 10월 촬영물을 실제 유포하지 않더라도 유포 협박하거나 강요한 경우 성범죄로 처벌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역시 영상물을 이용한 협박 행위 처벌을 강조한 민주당·통합당 공약과 일치한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24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n번방 사건 이전에도 디지털 성폭력은 계속 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 상정 노력은 계속 있었지만 항상 국회 문턱에서 멈췄다"면서 "계류된 법안을 공약으로 가져오는 것은 그만큼 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사진='DSE 처벌×ReSET' 공동 성명문)


국민들이 움직이니 국회가 이제서야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미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1호 법안인 'n번방 방지법'을 심사했지만 핵심 조항은 빠진 채 마무리됐다.


당초 국민들이 요구한 청원에는 텔레그램 n번방과 관련해 △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 수사기관 내 디지털 성범죄전담부서 신설 △ '딥페이크'(특정인의 신체 등을 합성한 편집물) 포르노와 불법 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게 양형 기준을 높여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그러나 결과는 성폭력처벌법에 '딥페이크' 관련 처벌 규정을 만드는 것에 그쳤다.


의원들의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공감대는 이날 법무부 관계자들과 법사위원들의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김도읍 통합당 의원은 "청원한다고 다 법을 만드나"라고 했고, 정점식 통합당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라고 오히려 되물었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자기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며,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면서 성범죄를 두둔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대응센터 활동가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입법자들이 디지털 성폭력에 민감하지 않은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의원들이 지금에야 와서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면서 "그러나 많은 의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마치 남의 일처럼 취급했었다. 그게 이번 법사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선이 활동가 역시 "이러한 발언들은 입법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성인지 감수성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일침했다.


결국 공약에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 전반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 향상과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연대 및 공감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노 활동가는 "의원들은 국민 눈치를 보며 말뿐인 공약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성 인식에 대해 반드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 사회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 높은 수준의 성인지 감수성은 이번 21대 총선에 출마하는 의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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