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작업부터 경찰 수사은폐까지’ 국정원 사건 재구성
최지현 기자 cjh@vop.co.kr 입력 2013-07-26 18:46:11 l 수정 2013-07-26 19:48:53 기자 SNS http://www.facebook.com/newsvop

원세훈 구속 '국정원 게이트 열릴까?'
원세훈 구속 '국정원 게이트 열릴까?'
건설업자에게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0일 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마친 뒤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지난 24일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가 법무부 기관보고를 시작으로 본격 가동됐다. 국정조사 특위는 25일 경찰청 기관보고를 받은 데 이어 26일 국정원 기관보고를 받기로 했지만,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동시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국정조사는 파행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나온 검찰 수사 결과와 야당 의원들의 각종 의혹 제기를 통해 국정원의 댓글 여론조작과 경찰의 수사 축소 및 은폐,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유출 등의 의혹은 상당 부분 드러났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를 "전대미문의 헌정파괴,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에 지난 6월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와 국정조사를 전후로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의혹을 바탕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논란이 불거진 작년 12월 11일부터 16일까지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2012.12.11.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사건

대선을 일주일 앞둔 작년 12월 11일,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제보를 받고 선거관리위원회, 경찰과 함께 국정원 직원 김모(여.29)씨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 서초동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김씨는 국정원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댓글 작업으로 대선 여론조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김씨는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경찰의 협조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은 채 오피스텔 문을 걸어 잠그고 2박3일을 버텼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은 '감금', 민주당은 '셀프감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날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민주당 측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하며 "정보기관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은 네거티브 흑색선전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김씨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이에 민주당은 다음 날 12일 김씨와 김씨가 소속된 국정원 심리전단의 단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발했다. 수서경찰서는 13일 서울경찰청에 김씨가 임의 제출한 노트북 등에 대한 디지털 증거분석을 해달라고 의뢰했다. 하지만 김씨의 노트북 등에 담긴 데이터 일부는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2012.12.14. 문재인-박근혜 초박빙 여론조사에 새누리당 '비상'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진 이후 14일 대선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발표됐다. 결과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초접전'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간발의 차로 역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때마침 박근혜 후보는 이날 오전 8시30분께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민주당은 구태정치를 멈춰라"고 촉구했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국정원 사건이 터무니없는 모략으로 밝혀지면 문재인 후보가 책임져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같은 기자회견은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 댓글 사건에 따른 여론 악화에 다급해졌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새누리당도 곧바로 대책회의를 가진 뒤 국정원 사건의 엄중 수사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경찰청을 방문해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때 훗날 정국을 휩쓸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주장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은 14일 부산 유세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매우 흡사한 내용을 낭독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같은 시각,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2012.12.15. 경찰,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축소

그러던 중 15일 새벽 4시께, 수서경찰서로부터 국정원 직원 김씨의 노트북 등을 받아 분석하고 있던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의 분석관들은 김씨의 30여개의 아이디와 닉네임 등을 발견하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계속되는 분석과정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댓글 흔적을 보고 분석관들은 "노다지다 노다지, 이렇게 많은 걸..."이라며 감탄할 정도였다. 

통상 분석과정에서 증거 및 수사 단서가 발견되면 이를 즉시 수사팀에 인계하는 절차에 따라 이날 분석관들도 국정원 직원의 아이디와 닉네임에 대해 "이것은 수사팀에다가 구두로 넘겨주자", "일단은 내일 이것을 뽑아서 넘기자"고 의견을 냈다.

국정원 수사 경찰 "문서...갈아버려요"
국정원 수사 경찰 "문서...갈아버려요"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6일 밤 국정원 수사결과 축소 및 은폐 정황을 짐작케 하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분석관들의 대화가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했다.ⓒ이상규 의원실 제공

그러나 이날 아침이 밝아오자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최현락 수사부장과 수사과장, 수사2계장을 불러 분석결과를 수서경찰서로 보내지 말 것을 지시했다. 수서경찰서 권은희 당시 수사과장이 분석결과를 달라고 계속해서 요구했으나, 서울경찰청은 이를 거부했다. 분석 결과를 건네받은 것은 대선이 끝난 후였다.

그리고 김용판 청장은 증거 분석이 끝나기도 전인 15일 저녁부터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에 관여한 혐의는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댓글을 발견하고 환호하던 서울경찰청 분석관들도 태도를 바꿔 16일 새벽 4시께 증거가 될 문제의 국정원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걸 확인하고도 그저 방관했다.

2012.12.16. 경찰 중간수사결과 긴급 발표

16일 일요일은 대선 전 마지막 3차 TV토론이 열리는 날이었다. 토론회가 열리기 전 김무성 총괄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중으로 수사 결과발표가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양자 대결로 펼쳐지는 TV토론이 실시됐다. 박근혜 후보는 토론에서 "실제로 그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느냐, 하나도 증거가 없다고 나왔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후보는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 한 마디 말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며 문재인 후보를 몰아붙였다. 민주당 측이 의혹만으로 국정원 여직원을 오피스텔에 '감금'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토론은 문재인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었다. 

토론회가 끝난 뒤 밤 10시40분께, 새누리당 박선규 대변인은 "오늘 중으로 경찰 수사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밤 11시께, 경찰은 김씨의 노트북 등에서 대선에 개입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중간수사결과를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대선은 16일에 결판났다"며 "국정원이 대선에 조직적,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면 대선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부장검사)은 지난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작년 대선 때 국정원 직원들에게 인터넷상에서 정부·여당을 지지하거나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게재하고 관련 게시물에 찬반을 표시하도록 지시하고, 관련 활동을 보고받은 혐의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을 모두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원세훈 전 원장은 이후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또 검찰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라고 지시하는 등 부적절하게 수사에 개입한 혐의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형법상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조사 불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
국정조사 불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에 남재준 국정원장이 불 출석해 자리가 텅 비어있다.ⓒ양지웅 기자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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