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강’의 역습

충북 청원군 미원면 용곡리 용곡저수지의 물 색깔이 27일 오후 녹조 탓에 온통 짙은 녹색이다. 청원/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10일 발표된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 결과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포기했다던 운하 재추진을 고려해 추진된 사업임이 밝혀졌다. 숨겨졌던 4대강 사업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는 4대강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겨레는 4대강의 현장 집중점검을 시작으로 4대강의 복원을 모색하는 기획시리즈를 싣는다.

● 남한강 준설토로 몸살…여주 5개마을 침수피해 키워
● 북한강 자전거길 비만오면 쑥대밭…보수는 지자체몫

27일 낮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양촌리 남한강가에서 4대강 사업으로 강바닥에서 파내 쌓아올려놓은 준설토가 최근 집중호우로 무너져내린 채 방치돼 있다. 여주/김정효 기자

26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양촌리 남한강가. 거대한 흙더미가 벌건 속살을 드러낸 채 힘없이 무너져 있었다. 강가로 쏟아져내린 흙더미는 2010년께 남한강 바닥에서 퍼올린 모래(준설토)다. 장맛비로 축축한 적치장에서 강물 쪽으로 스멀스멀 흘러드는 모래의 모습은, 마치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듯했다. 적치장에서 주변 농로와 둔치 쪽ㅇ로 무너져내린 준설토는 곤죽처럼 뒤범벅돼 있었다.

강가에서 만난 주민 이철우(48)씨는 “비만 오면 준설토가 무너지고 쏟아져내려 불안하고, 왜 저렇게 많은 모래를 퍼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준설토 적치장으로 농지를 빌려준 농민들은 당장은 임대료를 받아 좋겠지만, 나중에 저 흙을 모두 걷어낸다 해도 농사 짓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지난 22~23일 391㎜ 폭우가 쏟아진 여주군에서는 대신면 양촌리·보통리, 능서면 내양리·율곡리, 흥천면 상백리 등 5개 마을에서 침수피해가 났다. 가장 큰 준설토 적치장이 있는 대신면 양촌리에서는 부추,·가지 등을 재배하는 비닐집 50여개동 3만여㎡가 물에 잠겼다. 농민들은 ‘적치장에서 준설토가 쏟아져내려 피해를 키웠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대신면 양촌리에는 여주군 전체 준설토의 10% 가량인 230여만㎥가 쌓여 있다.

여름에 홍수 피해를 키우고, 봄에는 바람에 날려 ‘황사 현상’을 만드는 남한강 준설토는 3300만㎥에 이른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퍼낸 15t 덤프트럭 220만대분이, 경기도 동부 최대의 곡창지대에 18곳 100여 필지 270만㎡에 쌓여 있다.

여주군은 ‘준설토를 골재로 팔면 1000억원을 벌여들여 단군 이래 최대 수익사업이 될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준설 4년이 지나도록 반출된 준설토는 전체의 20%를 밑돈다. 여주군은 농지 임대료(영농보상비)와 관리비로 2011년 57억원, 2012년 65억원을 썼고 올해도 60억원을 써야 할 형편이다.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수요처까지의 운반비와 골재의 질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준설을 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주군이 귀를 막고서 마구잡이로 강파닥을 파헤친 탓에 2차 환경피해는 물론 또 다른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으로 조성한 강원도 춘천시 서면 의암호 주변 자전거길이 최근 내린 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려 26일 오후에도 흉물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춘천/박수혁 기자 psh@hani.co.kr

북한강은 자전거도로가 애물단다. 비만 오면 침수돼 공사판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강원도 춘천지역에 지난 14일 쏟아진 집중호우로, 경춘선 복선전철을 따라 북한강변에 조성된 자전거도로는 곳곳에서 아스팔트 바닥이 5~6m 아래 무너져내렸고, 산에서 쏟아진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폭우가 쏟아지자 의암댐이 수문을 열었고 자전거도로는 물에 잠겼다. 곳곳의 쉼터는 떠내려온 나뭇조각과 흙더미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춘천시 서면 현암리 이장 유대식씨는 “수해가 잦은 도로 바로 옆 절개지에 축대를 쌓거나 강 위에 말뚝을 세워 자전거길을 만든 것부터 문제다. 공사를 서두르는 바람에 더욱 엉망이 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4대강 사업으로 춘천지역 북한강변에 자전거길(26.8㎞)과 하천정비(22.9㎞)에 쏟아부은 예산은 820억원이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에 맞춰 지난 2월 모든 공사를 끝냈지만, 반년도 되지 않아 골치덩이가 됐다. 북한강 자전거길은 공사가 한창이던 2011년부터 비만 쏟아지면 일부 구간이 물에 잠기고 아스팔트길이 무너져 수시로 보수작업을 벌여왔다. 자전거 동호인 한문영(63·춘천시)씨는 “막대한 세금을 들였지만 툭하면 보수공사를 해 뜯어고쳤다. 이번 폭우에도 자전거길 곳곳이 무너져 위험한 차도 위를 달려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춘천시도 난감해하고 있다. 자전거도로 건설은 국토교통부가 했지만, 사후관리 등 치다꺼리는 춘천시 몫이기 때문이다. 이번 폭우로 자전거길 복구에만 3~4억원을 써야 한다. 장마철마다 반복될 자전거길 수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춘천시 관계자는 “관리 책임이 넘어왔지만 실제로 넘겨받은 건 준공도면 하나밖에 없다. 누가 와서 자전거길에 대해 물어보면 답변할 것이 없다”고 푸념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북한강 자전거길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자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할 참이다. 유성철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상습 침수지역에 자전거길을 설치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부실공사에 따른 복구공사에 매년 춘천시가 세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말했다.

여주 춘천/김기성 박수혁 기자 player009@hani.co.kr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확충한 금강의 ‘세종보’ 인근 요트계류장이 27일 주말인데도 요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악취를 풍긴 채 심한 녹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세종/송인걸 기자

● 금강 세종보 구간 홍보영상속 요트는 간데없고 악취만 진동

27일 낮 세종특별자치시청 신축공사가 한창인 세종시 보람동(옛 충남 연기군 금남면 호탄리) 앞 금강 요트계류장을 찾았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행정도시 인근인 금강1공구(세종보 구간)에만 만든 수상스포츠 시설이다.

한여름 주말이고 세종보로 가둔 금강물도 넉넉하니, 요트나 제트스키 몇 대쯤 기대했다. 2009년부터 국토해양부가 4대강 선도사업이라며 홍보하던 세종보 영상 속 금강은 그랬다. 야생화 천지였어야 할 강변은 잡풀이 무성했고, 수풀 속 요트 계류장엔 정적만 흘렀다. 데크 곳곳이 휘었고, 강물은 녹조가 켜켜이 쌓여 흐리고 끈끈한 잿빛이었다. 수상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들락거려야 할 선착장엔 이끼가 자랐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생태환경모니터팀 양흥모 사무국장과 김성중 활동가가 물위 부유물을 걷어냈다. 악취가 번졌다. “지난달보다 더 심해졌네요. 4대강을 살린다더니 하더니 강물을 썩게 한 겁니다. 지난해 녹조가 심하자 공주보엔 조류 제거 시설선까지 등장했지요.”

강둑을 따라 세종시 첫마을 앞 세종보로 향했다. 세종보는 ‘4대강 선도사업’으로 다른 시설 가운데 가장 일찍 2009년 6월 착공해 2012년 4월 준공했다. 애초 세종 시민을 위한 금남보였다. 4대강 사업에 포함하면서 높이 4m, 너비 360m에 소수력발전소 공사와 수심 1.5m 유지를 위한 준설 공사를 벌였다. 고정보와 소수력발전소 사이에 가동보 3개를 설치했다. 환경영향평가 등은 따로 없었다.

세종보 가동보들은 모두 닫혀 있었고, 보 위에선 해오라기들이 목을 길게 늘이고 물고기 사냥을 했다. 강물에선 악취가 스멀스멀 맴돌았다. 첫마을에서 세종보 인근 아파트들은 조망권 좋다고 소문나 인기가 높았는데, 지금은 물 떨어지는 소음과 악취 대책을 호소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가동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로 삼각형으로 물줄기가 분사되듯 삐져나왔다. 세종보 가동보는 2011년 9월 시범 공개된 뒤, 유압 실린더 장치에 퇴적토 등이 쌓여 수문이 닫히지 않는 장애가 발생했다. 무리하게 작동시키자 실린더 로드가 휘고 유압 장치가 터져 윤활유가 강물로 유출됐다. 국토부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지난해 2~4월 수문 아래 실린더·유압배관실 등의 퇴적토 등을 걷어냈다. 시공업체인 대우건설은 실린더 로드를 특수강으로 교체하고 퇴적토 배출 통로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3~4월에도 실린더실에 쌓인 퇴적토를 퍼내고 유압배관 등을 교체하는 공사를 했다.

환경단체 쪽은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 아니냐고 지적한다. 세종보 홍보관에 근무하는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가동보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가동보 1개에는 수문은 3개 있는데, 쪽과 쪽 사이 맞물리는 부분이 들떠 물이 새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시/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영산강에 지은 ‘승촌보’ 하류 쪽에서 합류하는 지류인 지석천이 27일, 강물이 거의 흐르지 않은 채 녹조 현상이 번져 푸른빛을 띠고 있다. 나주/정대하 기자

● 영산강 “죽산보 생긴뒤 논이 뻘이 돼버렸어”

“논물을 뺐는데도 습하잖아요. 이 소형관정에서 물이 솟구친적도 있다니까.”

전남 나주시 다시면 신석리 이장 진득근(73)씨는 27일 오전 마을 앞 들판으로 나가 논 물을 대기 위해 팠던 소형관정의 호스를 빼 보였다. 진씨는 “5m 짜리 호스가 4m70㎝까지 물기가 묻어 있잖아. 논 아래 땅 지질이 모래와 자갈이었는데 인근에 죽산보가 들어선 뒤 뻘이 돼버렸어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죽산보는 2009년 10월 착공돼 2011년 10월 완공됐다. 진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논에 습이 오기 시작해 논이 뻘이 돼 트랙터가 들어가 볏짚을 묶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죽산보 인근 논 30㏊ 정도가 지하 침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부터 문제를 제기했다. 박창근(관동대)·박재현(인제대) 교수는 2010년 3월 보가 설치돼 수위가 높아지면 주변 농경지의 지하수위도 2.5~3.3m가 상승해 죽산보 근처 4.51㎢ 규모의 농경지에 침수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자원공사는 지난 4월 전문업체에 용역을 맡겨 1년동안 실태조사를 한 뒤 지하 침수화 원인을 규명하기로 했다.

영산강의 죽산보와 승촌보(나주시 노안면 학산리) 위론 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보 주변 자전거 도로를 질주하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고, 강 둔치 그늘막에서 한가로이 고기를 굽는 사람들도 보였다. 평화로운 겉모습과 달리 강은 안으로 앓고 있었다. 감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영산강 2개 보를 비롯해 4대강 16개의 보 모두가 바닥 보호공이 유실되고 강바닥의 토사가 씻겨가는 세굴 피해가 나타났다. 나주시 금천면 신가리 부근에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지석천은 하류 제방 150여m가 심각하게 유실된 상태였다. 영산강 본류를 5~7m정도 준설해 강바닥이 낮아지면서 지류하천의 바닥이 패이는 ‘역행침식’으로 제방이 무너지지 않을까란 우려가 나온다.

수천억원이 투입된 영산강 사업으로 홍수 걱정은 덜었을까. 국토교통부 익산청 관계자는 “7월초 250㎜의 비가 쏟아졌는데 강변 저류지 영향 등으로 비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주시 다시면 가온3리에서 2만9752㎡ 규모의 논농사를 짓는 최성엽(44) 이장은 “2년동안 보 공사를 하느라 물을 흘려 보낼 땐 논이 잠기지 않아 4대강 사업 효과를 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보 수문을 열지 않아 수위가 높아져 하천 물이 못빠지는 바람에 66% 정도의 논이 침수됐다”고 말했다. 다시면 주민 나상석(65·승일농원 대표)씨는 “본류 수위가 높아 마을 개천 물이 못빠징께 비가 조금만 와도 마을 골목도 못다닌당께”라고 말했다. 지난 1월 감사원 감사결과, 4대강 본류 구간에서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118개 배수장 중 배수문 바닥이 강 본류 수위보다 낮은 곳은 53곳(44.9%)로 나왔다.

흐르지 않는 영산강은 곳곳이 탁한 진녹색 빛을 띄고 있었다. 국립환경원 자료를 보면, 4대강 사업 이후 승촌보~죽산보 구간의 하천수 체류시간은 18.9일로 보 건설 전보다 8.2배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산강유역환경청 자료를 보면, 올해 1~6월 승촌보 상류 500m 지점의 비오디(생화학적 산소요구량) 평균은 4.9㎎/ℓ로, 2007~2009년 1~6월 평균 8.6㎎/ℓ보다 좋아졌다. 또 총인(물에 녹아있는 인화합물의 총량) 수치도 3년 평균 0.822㎎/ℓ에서 올해 1~6월 평균 0.156㎎/ℓ으로 다소 좋아졌다. 지난해 10월 광주 1,2하수종말처리장의 총인 여과 및 처리 시설이 완공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승촌보 지점의 시오디(화학적 산소요구량)는 2007~2009년 1~6월 평균 9.4㎎/ℓ에서 9.6㎎/ℓ으로 되레 악화됐다. 승촌보 지점에서 측정한 클로로필-a의 농도도 2007~2009년 1~6월 평균 37.3㎎/㎥이었으나, 지난해 1~6월 평균 72.2㎎/㎥, 올해 1~6월 평균 46.3㎎/㎥ 등으로 악화됐다. 이성기 조선대 교수(환경공학)는 “강이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비오디가 낮아졌다고 수질이 좋아졌다고 단정지어선 안된다. 영산강은 녹조(식물플랑크톤인 조류가 번성한 상태) 초기다. 영산강은 낙동강보다 농경지 오염원 배출이 많아 조류가 번성해 부영양화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나주/글 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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