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전문기자가 전하는 언론의 4대강 트라우마 극복 제언
[4대강 사업, 죽은 것은 강만이 아니다 ④] 박수택 SBS 논설위원 기고
박수택 SBS 논설위원, 한국환경기자클럽 회장  |  webmaster@mediaus.co.kr  입력 2013.07.31  09:12:44

(편집자주) '광기의 시대'. MB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4대강 사업이 한국사회에 남긴 상흔은 뚜렷하다. '한국형 뉴딜사업'으로 일컬어졌던 4대강 사업이 불과 몇년만에 '위장 대운하 사업'이었으며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게 드러났으나 적극적인 왜곡 혹은 자발적인 침묵으로 4대강 사업을 도왔던 언론들은 아무런 자성도 하지 않는다.

4대강 사업의 진실이 감사원 감사결과로 드러난 지금, 미디어스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언론이 보였던 행태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언론이 부재했던 암흑의 시기"를 기억하고자 한다. 기획은 교수/활동가/종교인이 '기자 역할'을 대신했던 시대에 대한 조명, 방송사 불방일지 정리, 언론계 안팎 인사 인터뷰, 현직 언론인 기고를 거쳐 우리에게 4대강 사업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대담으로 마무리된다.

사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했던 행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언론인들의 자성은 이 기획을 읽는 언론인 당신 스스로의 몫이다.

▲ 박수택 SBS 논설위원. 2009년까지 환경전문기자로 활동하며 환경·생태 관련 뉴스를 전했고, 4대강 사업에 대해 졸속 추진, 대운하 사업과의 연계성 등을 우려하며 비판적인 보도를 한 바 있다. (사진=SBS) 

사람의 행동은 자신의 생각, 경험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토목건설업자로 입신양명해서 신분 상승을 이루고, 세속적 성공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직위까지 올랐다. 그에게 토목 건설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컸을 것은 당연지사다. 나라를 이끄는 것과 토목사업에 투자해 이익 올리는 것은 차원도 본질도 다르건만 2007년 12월 유권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은 청계천 고가도로를 밀어내고 직선의 산책로와 물길을 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기도 했다. 생태성과 역사성을 살린 복원이 아니라 인공 물길 중심의 도시 조경 구조물에 불과하지만 본질을 따지는 대중은 많지 않았다. 대중매체 언론이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계천에 남쪽 섬진강 수계에서 사는 토종물고기  갈겨니가 산다거나, 심지어 은어가 (한 마리) 잡혔다, 청계천 생태계가 이렇게 뛰어나다는 서울시 보도 자료도 언론은 별 의심 없이 전하곤 했다.

청계천으로 나름의 성과를 인정받은 이명박은 대통령 자리에 앉아 야심차게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내세웠다. 집권 초기부터 민심을 헤아리지 않고 독선적으로 국정을 다룬 탓에 시민의 촛불 저항에 맞닥뜨리고서야 겨우 고개를 숙이는 듯했지만, 난데없이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간판을 바꿔들고 나섰다. 대통령의 토목사업 집착은 과거의 경험, 성공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화법을 구사하는 대통령 앞에서 누가 말대꾸를 할 수 있었을까? 대운하 사업비는 물길 파내 나온 골재 팔아 충당하면 국민 세금은 한 푼도 안 들어간다고 했다가, 강 살리기로 돌리면서 22조 2천억 원이라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어떤 근거에서 셈법이 바뀌었는지, 대다수 언론은 의문을 품으려 하지 않았다.

▲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이 1석 7조를 거둘 수 있는 '한국형 녹색뉴딜사업'이라고 선전했다. (사진=청와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이명박 정부는 '한국형 녹색뉴딜사업'으로 치장했다. 정부 관료와 관변 전문가, 지식인들은 권력자의 관심사라면 만사 제쳐놓고 앞장서는 데 익숙하다. 2009년 6월에 마스터플랜을 확정 발표하고, 그 해 10월부터 공구별로 착공하기 시작해서 정권 말기인 2012년 말까지, 불과 2년 남짓한 기간에 22조원이 넘게 들어갔다. 사업을 통해 '수자원 확보, 홍수 예방, 생태 복원, 수질 개선, 일자리 확충, 친수여가 활성화, 녹색성장'의 1석7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정부는 내세웠다. 대다수의 지식인, 학자,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 일감을 나눠 맡으면서 4대강 사업 긍정 예찬론이 넘쳐났다. 주장이 타당한지 언론은 짚지 않았다. 문제를 지적하는 소수의 전문가와 시민 환경 진영의 목소리를 대중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언론은 이들에게 눈길도 보내지 않고 귀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이다. 기자가 오지 않는 현장에서 교수, 환경운동가, 스님, 목사, 신부, 시민 연구자들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돌렸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같은 진보성향 인터넷 매체가 전달했고, 특이하게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같은 언론감시 매체가 나설 때도 있었다.

이렇듯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언론과 시민의 '역할 뒤바뀜 현상'이 두드러졌다. 기존 언론의 직업 기자들은 사태 앞에서 눈 감고 입 다물고, 마치 기도하고 묵상하는 듯이 잠잠했다.  반면 대안 매체와 시민 기자들은 현장에서 문제를 찾아 뛰어다녔다. 이제 언론사만이 언론 기능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SNS, 인터넷을 통해 누구라도 쓰고 말하고 찍고 편집하고 널리 전달할 수 있다. 기성 매체가 외면한다고 해서 중요한 뉴스 유통 과정이 막히거나 멈추지도 않는다. 대안매체 <뉴스타파>의 최근 잇따른 특종보도가 좋은 증거다.

▲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지난 1월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잘 보이는 건물 옥상에 '4대강의 진실을 밝혀라'는 구호가 적힌 붉은색 애드벌룬을 띄우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환경운동연합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총체적 부실과 비리가 드러나는데도 불구하고, 반성과 사죄는커녕 '문제없다'고 진실을 가리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다며, 범국민적인 조사기구를 통한 전면적인 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이명박 정권이 물러나자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이었으며 대 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지적과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헌법기관 감사원부터 그런 발표를 하려거든 과거 행적을 동시에 반성했어야 마땅하다. 언론이야말로 깊이 반성하고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주는 대로 받아쓰지 말고,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문제인지, 왜 그런지, 누가 그랬는지,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알고 보도하자. 그러자면 공부가 필요하다. 언론사 간부, 데스크, 일선기자들 스스로 내부 세미나를 열고 자료와 정보를 공유하길 권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토해양부, 환경부 보도 자료, 운하반대교수모임, 4대강복원 범국민대책위원회를 두루 살펴야 한다. '4대강살리기사업추진본부' 홈페이지는 사라져 찾아볼 수 없고, 대신 '4대강 이용도우미'(사이트 링크)로 연결된다. 정부와 국회를 통틀어 4대강 사업 관련 문건을 최대한 확보하고, 당시 심명필 본부장(인하대 교수)을 비롯한 핵심 관계자들의 발언과 행적을 추적해야 한다. 박창근 교수를 비롯해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연구한 전문가, 이철재, 황인철, 명호 활동가, 시민의 관점에서 현장을 살펴온 최병성 목사, 남준기 기자, 최승호 PD의 조언을 받으면 품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4대강사업추진본부가 달마다 찍어  돌린 홍보지 '4강나래'를 들쳐보면서 4대강 답사일정을 짜고 있다.

끝으로 언론이 진정으로 존중하고 두려워할 대상은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아님을 새기자. 5년 계약으로 그들을 고용한 유권자 시민 대중이 언론의 참 주인이며 고객이다. 이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충실하게 전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우리 언론에게는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문제라면 철저하게 파헤치는 '상업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준만 교수는 저서 <언론플레이>에서 갈파했다.

연예인 사생활 따위 말고 고위 공직자, 정치인의 비위 부정부패를 철저히 파헤쳐야 독자 시청자 대중의 갈채를 받을 수 있다. 권력자 재벌 부호의 비리 의혹을 앞장서서 파헤친 대안매체 <뉴스타파>가 좋은 본보기다. 깊이 파고들어 진실을 끄집어내기가 버겁거든, 관련된 사실만이라도 나열식이라도 좋으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판단은 시민 대중에게 맡기도록 하자. 이것이 언론이 맡아야 할 최소한의 책무이며 본분이다. 그마저도 안 한다면 대한민국 언론은 '권력영합 형질'이 DNA에 박혀버린 건 아닌지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한다.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식 언론 행태는 이명박 정권 시절 4대강 사업이 마지막이길 두 손 모아 바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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