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국정원, NLL? 차라리 외신 보세요
[정치] 외국 보수지도 “NLL 논란 본질은 국정원 선거 개입 가리기”… 국내 현안을 외신 통해 이해하는 지금은 유신시대인가
 [2013.08.12 제973호]

큰 그림을 감상할 때 너무 가까이 있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 한발 두발 물러서며 거리를 두다보면, 전체 윤곽이 점점 뚜렷해진다. 그래도 충분치 않을 땐, 아예 실눈만 뜬 채 그림을 보면 시각이 단순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 관련 사건을 보도하는 최근 외신 기사가 꼭 그렇다. 한국 상황을 잘 모르는 자국의 독자·시청자를 위해 한발 떨어져 사안을 단순화해놓으니 오히려 본질이 명확해진다.
 
단순화해놓으니 명확해지는 본질

최근의 국정원 사건 관련 현안은 댓글 사건과 북방한계선(NLL), 검경의 수사와 국정조사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날마다 터져 나오는 뉴스를 조각조각 보도하는 국내 언론 기사만으론 전체 그림을 읽기 힘들 때도 많다. 외신 기사들은 사뭇 다르다. 미국 온라인매체 <글로벌포스트> 7월18일치 기사는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 정보 수집에 빗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캔들은 그런 국내 첩보 활동이 얼마나 쉽게 민주주의를 훼손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사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① 촛불시위를 촉발한 이번 사건은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② 6월 말 국정원은 민감한 문서인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시켰다. 대화록은 야당에 불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③ 그러나 이 문건을 공개한 목적은 다른데 있어 보인다. 국정원이 지난해 12월 대선에 개입한 사건에서 대중적 관심을 돌려놓으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있다.

④ 국정원 직원들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수많은 게시물·댓글을 작성했다. 좌파에 대해서는 북한에 동조하는 공산주의 선동 세력이라고 비방했다. 그러나 선전 활동은 오래지 않아 발각됐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를 지휘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직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최초 조사 결과를 왜곡한 혐의로 기소됐다.

⑤ 국정원은 “국가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대화록을 합법적으로 공개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런 문서는 15년 동안 기밀로 보관돼야 하며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만 공개할 수 있다.

⑥ 지난해 대선에서 3%포인트 차이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혜택을 본 것도 없다며, 전임자인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⑦ 독재자인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는1960~70년대 국정원의 전신(중앙정보부)을 투표 조작 등 ‘어두운 일’에 동원했다.

⑧ 국제위기그룹(ICG)에선 “박 대통령은 전혀 흠집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엔 탄핵을 당할 수 있다”고 한다.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6월29일치 기사의 인터넷판 화면 갈무리. 대학생들이 지난 6월21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국가정보원 규탄 메시지가 담긴 펼침막을 들고 뛰는 사진이 함께 실렸다. 기사 제목은 ‘한국의 정보기관이 정치스캔들에 연루되다’(위).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한 독일 매체가 보도한 희생자 사진. 기사 제목은 ‘한국의 유혈항쟁’.

“박정희도 정치 탄압에 정보기관 활용”

국정원 사건에 대해 미국의 주요 매체들이 지적하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NLL 논란 자체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에서 관심을 돌려놓으려는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무리한 시도라는 부분이다.

“국정원은 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위태로운 정치적 대립을 촉발했다. …문건을 보면, 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이 NLL을 포기해야 한다는 확실한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국정원이 공격받는 시점에 전문을 공개한 것은 국정원의 반칙이라고 야당 의원들은 주장한다.”(<월스트리트저널>, 6월25일)

“보수파 의원들은 대화록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안보를 지키기보다는 북한과 협력하는 쪽을 선호했다는 게 입증됐다고 한다. 진보파 의원들은 국정원이 하나의 문제(선거개입)로부터 주의를 흩뜨려놓기 위해 새로운 논란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권위주의 지도자였던 박정희는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해, 학생 시위를 탄압하는 데 정보기관을 활용했다. 야당은 정보기관이 이번엔 비슷한 방식으로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선거 개입 사건이 대화록 관련 논란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한다.”(<워싱턴포스트>, 7월7일)

경찰 수사 발표, 원세훈 전 원장 기소, NLL 대화록 공개 등 주요 국면을 빠짐없이 보도해온 <뉴욕타임스>는 6월25일치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인기가 좋지만, 정치적 논란이 거세지면서 그의 새누리당이 반격을 시작해야 할 정도가 됐다”며 NLL 논란을 다뤘다. 기사에선 NLL 논란의등장을 이렇게 묘사한다. “야당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 관련) 검찰 수사가 왜곡됐다며 국회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자 갑자기 지난주 여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주장을 되살렸다. 그러나 6월25일 공개된 대화록에 ‘폭탄’은 없었다.”

프랑스의 <르몽드> 또한 6월29일치 기사에서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와 관련해, “이런 결정은 정치 중립 의무에 위배돼 불법일 수도 있으며,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신문은 7월18일치에서 “보수파 지도자(박근혜 대통령)는 줄곧 (국정원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한편, 대다수 언론과 새누리당 지지층의 지원 속에서 이를 덮느라 고생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외신의 한국 기사 돌려 읽던 그 시절의 추억

대화록의 논란이 아닌 내용과 관련한 외신 보도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일본 언론이다. <아사히신문>은 6월26일치 기사에서 대화록 내 일본 관련 발언을 조목조목 상세히 전했다. 특히 두 정상이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미덥지 못하다는 감정을 공유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당시 남북 정상회담을 기회로 북-일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계획이었고, 이를 위해 노 전 대통령이 중개자 역할을 맡아주기 원했지만 실제론 남북 양쪽에서 냉담한 취급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공개였던 대화록 내용이 이웃 나라에까지 공개되면서 외교관계에 파장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다만 중국 매체에서는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에선 워낙 외국의 선거 부정에 대한 보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선거제의 문제점을 지적받는 중국에선, 아무리 외국 선거에서 부정이 있었다 해도 관영 매체들이 좀처럼 비판하기 힘든 탓이다.

과거 국내 소식을 외신을 통해 접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 환경이 자유롭지 못해 정부 비판성 기사가 드물던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당시 국내에 공식적인 경로로 수입된 외국 주간지의 한국 관련 기사는 먹물이 칠해지거나 칼로 잘려나가 읽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다른 경로로 기사를 입수해 돌려보곤 했다. 지금은 그런 시절도 아닌데 외신의 보도로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언론이 자유롭지 못한 걸까, 아니면 언론에 자유가 필요치 않은 걸까.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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