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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4월 고구려산성 답사 보고서 - 고구려연구회" 중 2일 오전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2001년 고구려산성 답사 : 청룡산산성
제2일(4월 14일, 토) 오전 : 鐵嶺縣 催陣堡鄕 靑龍山山城
고구려연구회
5시 반 기상, 6시 반까지 기록.
죽과 만두로 아침식사를 하고 어제 왔던 길을 따라 청룡산고성으로 갔다. 장누자촌(張樓子村) 가운데를 지나 밭으로 통하는 뒷길로 나오니 바로 산성이 보인다. 93년 왔을 때는 신발을 벗고 강을 건넜는데 이제 보를 막아 쉽게 건널 수 있다.
북문을 관찰하고 동벽부터 답사하였다. 북문은 옹성 형태를 갖추었으며 밖으로 다시 큰 흙담(높이가 높아 언덕처럼 보인다)을 만들어 방어하는 특이한 모습이다. 동벽은 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기 때문에 특별히 조사할만한 곳이 없다.
남벽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 수구문 - 맨 아래 2∼3단은 잘 다듬은 돌로 기초를 하고 그 위에 토석혼축으로 쌓은 단면이 나타나 있다. 속채움은 큰돌들을 아무렇게나 섞었지만 겉쪽은 강돌을 많이 썼다.
* 남문 - 북문처럼 옹성 밖에 흙담을 보강하였다.
* 단면 - 주민들이 흙을 파가 단면을 알 수 있는 곳이 두 곳 있다. 고구려 때 기와조각이 많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때나 그 뒤 덧쌓은 것으로 보인다. 판축 자리는 분명하지 않다.
* 가는 곳마다 찔러대는 가시나무 - 현지인들은 작은 것은 그냥 가시나무라고 하는데, 원 이름
은 츄즈나무(?木)라고 하고 크면 가구용 목재로 쓰인다고 한다.
가장 높은 망대에서 새참을 먹으며 휴식하였다. 망대에서 조금 가면 서남모서리다.
* 각대는 상당히 품을 들여 인공으로 쌓은 자리가 뚜렷하다.
* 서벽은 아주 잘 남아있고, 안쪽으로 마도가 잘 나 있어 나무만 좀 정리하면 당장 자동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이다.
* 서문도 꽤 잘 남아있다(어긋문).
* 보고서에는 성 가운데 있는 능선을 중심으로 동성과 서성으로 나누고 있는데 하나의 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 서벽 북단에 수구문이 있는데 너무 좁아서 어떻게 수구문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이 수구문이 아니면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
서북모서리에도 각대를 쌓았다. "고려성이라고 하고, 성자산이라고도 한다" 각대에서 만난 양치기 할아버지의 말이다. 상대적으로 지세가 낮은 곳에 위치한 북문은 여러 가지 공법을 써서 보강하였다. 먼저 옹성, 그리고 전체 성벽을 안으로 들여쌓아 나팔꼴로 만들었고, 다시 밖으로 흙담(土壘)를 쌓아 보강하였다. 옹성문으로 내려가니 다시 한번 행운, 아마 발굴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성문의 기초를 파 놓았는데 남쪽 수구문처럼 맨 아래 기초는 다듬은 돌로 몇 단을 쌓은 것이 드러나 있다. 북쪽 수구문에서도 그런 흔적이 보인다. 수구문을 조사하고 나오다 돌확을 발견하였다. 수구문 밖에 나와있지만 원래 수구문의 돌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 사용에 밑이 구멍 뚫린 돌확이다.
벌써 1시가 다 되었다. 간단히 조사한다고 했는데 뜻밖에 여러 가지 새로운 축성법이 나와 신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기록
♨ 철령 1박
◈제2일(4월 14일, 금): 靑龍山山城, 催陣堡山城(정원철)
06:00 기상
--눈을 뜨니 서일범 교수님께서 이미 일어나 계신다. 창 밖을 보니 하늘은 맑으나 바람이 세차게 분다. 요동벌 바람엔 아직 겨울의 기운이 실려 있다. 어제 철령의 낮 기온이 18。라는 일기예보를 보았으나 바람 부는 것을 보니 체감온도는 많이 떨어질 것 같다. 자면서 한기를 느꼈는데, 평소 천식이 심한 서일범 교수님께서 기침을 하시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된다.
07:10∼25 아침식사(偉利飯店-죽, 만두)
07:25 청룡산산성으로 출발
08:20 張樓子村 도착
08:30 청룡산성의 동벽에서부터 (남벽-서벽-북벽 순으로) 답사 시작
-- 성 바로 아래에서 만난 아저씨는 이 성을 '高麗城'이라고 한다.
서길수 교수님은 동성, 서성이 하나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성안은 아주 편평하고 완만하다. 성의 동벽은 자연절벽으로 되어 있고 汎河가 성벽과 나란히 흐른다.
09:25 동쪽으로 최진보산성이 보인다.
09:40 수구문(남벽) 도착
--이 성이 토석혼축성임을 잘 알 수 있게 하는 곳이다. 먼저 길이 45∼65×15∼25cm정도의 다듬은 돌로 (주위에서는 최하단석으로 추정되는 110×30의 큰 가공돌도 발견된다.) 2∼3단 먼저 쌓고, 그 위를 작은 돌과 강돌을 섞어서 쌓았다. 그러나 정연하게 쌓은 것은 아니다. 현재 잔존 높이가 350cm가량이다. 한편 주위에서는 기와편과 토기편이 발견된다.
10:10 남문 도착
--남문 주위에서도 다듬은 돌, 강돌, 막돌 등이 널려 있는데, 100×25cm의 가공한 돌도 눈에 띤다. 역시 기와편이 발견된다. 남문에서 서쪽으로 88m 올라가면 성벽이 일부 무너진 부분이 있는데 성벽의 상부에서 아래로 70cm지점에서 붉은 기와편이 박혀있는 것이 발견된다. 뒤에 補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벽의 중간지점에서부터 서쪽 모서리까지는 성벽이 잘 남아있다.
11:20 남벽상의 豁口에 도착하였는데 문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여기서도 토석혼축의 모습이 확인된다.
11:25 성내의 가장 높은 남서 모서리에 도착
--각대가 잘 남아있는데 가로, 세로 약10m의 크기이다. 각대 아래에도 인위적으로 층층이 계단식으로 평평하게 다듬었다. 서벽 안쪽으로는 마도가 잘 남아있는데 자동차 2대는 지나갈 수 있는 폭이다.
11:40 서문 도착
--어긋문의 형태이다.
11:50 서벽의 수구문(추정) 도착
--잔 자갈 등을 섞어 쌓았는데 그 벽에는 토기들이 박혀 있다.
11:55 북서모서리에 도착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자신은 이 곳을 '山城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전 노인들은 '高麗城'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한편 성을 동성과 서성으로 나누는 능선에는 성을 쌓은 흔적이 없다고 하는데, 역시 성안의 자연능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서길수 교수님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동성과 서성의 구분은 잘못된 것 같다.
12:10 북문 도착
--지금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지 성벽의 일부를 절개한 면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석축한 다음에 혼축하여 쌓았다.
12:20 수구문(북벽) 도착
--돌지름 55cm, 구멍지름 20cm, 깊이 25cm의 돌확 발견
12:45 청룡산성 답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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