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6개월 기상도 '아주 흐림'
머니투데이 | 세종 | 입력 2013.08.22 05:36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기자]

박근혜 정부 6개월, 경제분야를 날씨에 비유하면 '아주 흐림'이었다. 맑은 하늘을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햇빛이 드러날 듯 하면 이내 구름이 덮었다.

정부의 노력은 절실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4.1 부동산대책, 투자활성화 대책 등 굵직한 정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하늘에 덮인 먹구름을 걷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근엔 세법 개정안 쓰나미까지 겹치며 6개월 악천후의 정점을 찍었다.

◇3월 : 잔뜩 찌푸린 하늘 [성장률 대폭 하향]

-22일 : 현오석 부총리 취임
-25일 :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사퇴
-28일 : '박근혜 정부 2013년 경제정책방향' 발표

박근혜 정부에게 3월은 사실 '공 친' 달이다. 장관 취임이 늦어지면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임명된 게 3월22일이었다. 뒤늦게 임명된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자진사퇴(25일)하며 경제팀 구성이 지연됐다.

팀이 짜여지지 않은 28일 정부는 '2013년 경제정책방향'을 내놓는다. 한달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명의로 국정과제가 발표됐던 만큼 분량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용은 강했다. 장밋빛 전망 대신 차가운 현실에 대한 고해성사였다.

'경기 둔화 장기화' '저성장 지속' '내수 부진' 취업자 증가세 둔화'…. 정부 스스로 비관을 쏟아냈다. 성장률은 3.0%에서 2.3%로 대폭 낮췄다. 게다가 6조원 이상의 세금이 덜 걷혔다는 비보까지 담았다. "나라 살림 정말 힘들다"는 고백인 셈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정부는 나름 솔직한 길을 택했다. 이를 '정상화'로 칭했다. 현 정부의 키워드인 '정상화'의 첫 시작이 바로 성장률 하향 조정이었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현재 상황에 대해 분명히 해놓지 않으면 새 정부 정책도 평가받기 어렵고 재정 정책의 역할도 예상하기 어렵다"며 "경제 활성화라기보다 경제 정상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잔뜩 먹구름이 낀 날씨 뉴스를 전하면서도 기상 예보는 '곧 갤 것'이라고 했다. 맑은 날씨 예보의 배경은 추가경정예산편성, 부동산시장 안정 방안, 투자활성화 대책 등 이른바 '단기 부양' 정책 패키지였다.

◇4월 : 흐림 속 잠깐 갬[부동산 대책·추경]

-1일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4·1 부동산 대책) 발표
-16일 17.3조 추가경정예산안 발표

4월의 첫날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내놓는다. 정책의 고민은 공급에서 수요로 옮아갔다. 이전까지 공급 물량 확대가 주였다면 이번엔 수요 진작에 초점이 맞춰졌다.

무주택자, 1가구1주택자,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뿐만 아니라 다주택자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금융뿐 아니라 세제 혜택까지 동원했다. 파격을 낳은 배경은 절박감이었다. 부동산을 살리지 않고는 저성장 탈피가 쉽지 않다는 현실인식이었다.

해법은 거래 활성화를 통해 실타래를 풀자는 거였다. 시장의 반응도 좋았다. 부동산시장의 냉기가 사라질 것이란 기대가 나올 정도였다. 4.1 부동산 대책 이후 시장은 꿈틀댔다. 거래가 조금씩 느는 듯 했다.

훈풍은 보름 뒤인 16일 추가경정예산안 발표로 더 힘을 받는다. 정부는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을 편성한다. 위기 상황을 제외하곤 가장 큰 규모였다. '0%대 저성장'의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최소한의 처방이었다. 추경은 '대환영'을 받았다. 하늘은 흐렸지만 곧 맑은 날이 올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실제 정부의 힘은 곧 힘을 발휘했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집행되며 건설업 등의 생산을 이끌었다. 정부·공공기간의 SOC 예산 집행실적을 보면 1~4월 4조원대에서 5월 5조4000억원, 6월 8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는 건설투자 호조로 이어졌다. 하지만 햇빛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5월 : 말로는 '맑음'…실제론 '흐림'[공약가계부]
-1일 '규제개선 중심의 투자 활성화 대책' 발표
-15일 '벤처·창업 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 발표
-27일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 발표
-31일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지원 실천계획(공약 가계부)

5월의 첫날 제1차 투자활성화 대책이 발표된다. 단기 부양 3종 세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부동산 대책(4월1일), 추경(4월16일)에 이어 보름 간격의 정책 발표였다. 재정을 풀고 부동산을 살려도 결국은 '민간 투자'가 화답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시작된 대책이다.

민간의 건의사항을 토대로 한 종합대책을 구상했다가 '단기간에 해결 가능한 과제'를 먼저 내놓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중에서도 실제 대기하고 있는 대규모 투자 수요를 먼저 찾았다. 정유사의 공장 설립건이 담겼다.

정부는 이에맞춰 △산업단지내 부지 지원 △토지 분리 임대 허용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의 방안을 내놨다. 6개 대형 프로젝트만 따져도 투자 금액이 12조원을 넘는다. 의미있는 대책이었는데 성과는 '아직'이다. 지주회사 규제 완화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기상 예보는 '맑음'이었는데 실제 날씨는 '매우 흐림'인 모양새다.

보름 뒤인 15일엔 벤처 대책이 나왔다. '창업→성장→회수→재투자/재도전'의 벤처자금 생태계의 손질 작업이다. 정부는 '창조경제 멍석깔기'로 정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체감도가 떨어진다.

5월 마지막날엔 공약가계부를 내놨다. 역대 정부가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작업이었다. 140개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5년간 투입하는 금액은 134조8000억원. 재원은 비과세·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입 확충으로 50조7000억원, 세출 절감으로 84조1000억원을 조달한다.

연도별·분야별 재원 조달 계획과 지출 계획을 담았다. "국민과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뢰있는 정부"가 명분이었다. 8월 세법 개정안 논란은 이때 잉태됐다.

◇6월 : 여전히 '흐림'…'경제 민주화→경제성장' 전환[성장률 상향]

-18일 경제부총리·공정위원장·국세청장·관세청장 재계 조찬 간담회
-18일 2012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 발표
-26일 '과세형평 제고를 위한 2013년 비과세·감면제도 정비 관련 공청회'(조세연구원)
-27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4~5월 정책을 쏟아낸 정부에게 6월은 국회의 달이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4.1 부동산 대책의 주요 정책들이 4월 국회에 이어 6월 국회에서도 입법화에 실패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분양가 상한제등은 아직도 '폐지 추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벤처 대책에 포함된 내용의 입법도 뒤로 미뤄졌다. 후텁지근한 날씨처럼 명쾌하게 정리되는 정책이 없었다.

그나마 성과를 낸 게 경제민주화 관련이다. 하지만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계열사간 거래 규제 강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일감몰아주기 등 계열사산 거래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공정거래법 제3장(경제력 집중 억제)에 규제를 신설하는 당초 공정거래위원회 방침이 후퇴했다. 대신 불공정거래행위 금지를 담은 5장의 내용을 보강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경제 민주화'는 수면 아래로 들어간다. 정부의 방점은 '경제 회복'과 '성장'으로 대체된다. 하반기 정책방향(27일)은 그 선언이었다. "3%대 성장 회복" "저성장 탈피"를 전면에 내세웠다. 8분기 연속 0%대 성장 추세가 이어지면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하반기가 그 방향을 결정짓는 시점으로 정부는 판단했다.

목표는 분기별 전기비 1% 이상 성장. 3분기, 4분기에도 전기비 1% 성장을 하면 하반기 3%대 성장이 가능하다. 자연스레 내년엔 4% 성장이 된다. 3개월만에 성장률 전망을 높인 이유였다.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기 하루 전인 26일 조세연구원 주최로 비과세·감면제도 정비 관련 공청회가 열렸는데 최근 논란이 된 세법 개정안의 밑그림이 그때 이미 나왔다.

◇7월 맑은 하늘에 폭우?[0%대 성장 끝·취득세 논란]

-4일 '서비스산업 정책 추진방향 및 1단계 대책' 발표
-8일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방향' 발표
-9일 박근혜 대통령, 취득세 관련 안행부·국토부 논쟁 지적…경제부총리 역할 주문(국무회의)
-11일 '규제 개선 중심의 2단계 투자활성화 대책' 발표
-22일 기재부·안행부·국토부 '취득세 영구인하 방침' 발표
-23일 박근혜 대통령 "경제부총리 일할 시간 4개월도 안됐지만 열심히 해 오셨다"(국무회의)
-30~31일 현오석 부총리, 1박2일 투자 현장 점검

정부는 7월을 기다렸다. 상반기 정책 효과가 조금씩 나타날 것이란 판단에서다. 받아든 성적표는 기대 이상이었다.

2분기 에 전분기 대비 1.1% 성장했다. 0%대 성장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반기 정책 목표를 '경제 회복'에 둔 것과 맞물려 기대감을 높였다. 취업자수 증가폭도 30만명대로 올라섰고 물가도 1%대를 유지했다.

4일 1단계 서비스업 대책, 11일 2차 투자활성화 대책 등 추가 정책도 연거푸 내놨다. 서비스업 대책은 제조업과 차별 해소에 중점을 뒀다. 이 역시 '정상화'로 포장됐다.

2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입지 규제 완화가 핵심이었다.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이다. 계획관리지역의 경우 아파트·공해공장·업무시설·위락시설 등을 제외한 나머지 시설이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전국토의 1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처럼 거시지표와 정책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날씨는 맑은데 폭우가 쏟아지는 것과 비슷했다. 부동산 시장이 그랬다. 6월말로 취득세 감면 조치가 종료되자 거래절벽이 나타났다. 4.1 부동산 대책은 2개월짜리로 끝날 위기에 빠졌다.

취득세 영구 인하를 두고 부처간 엇박자도 났다. 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경제부총리께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서 주무 부처들과 협의하여 개선 대책을 수립하고 보고해 주기 바란다"고 질책한 것도 이때다.

결국 정부는 취득세율 인하 방침을 정하고 이에따른 지방세수 부족분 보전 방안을 8월말까지 마련키로 했다. 정부 정책에 맞춰 민간 투자의 화답이 없는 것도 한여름 정부의 걱정을 키웠다.

◇8월 : 태풍·폭풍·쓰나미[세법 개정안 논란]

-8일 2013년 세법개정안 발표
-12일 박근혜 대통령 "세법 원점 재검토" 지시
  현오석 경제부총리 "세법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
-13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세법 개정안 수정 공식 발표

7월말 현장 방문 1박2일을 다녀온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정말 큰 일 하십니다. 투자하는 사람은 업어줘야 됩니다."라며 김재신 OCISE 사장을 두 번이나 업은 뒤였다.

박 대통령의 신임 발언 후 힘도 실렸다. 취득세율 영구 인하 인하의 가닥을 잡아냈다. 탄력을 받아 경제관계장관들과 민간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경제·민생 활성화 대책회의도 만들었다.

그리고 2013년 세법개정안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답게 세제의 '정상화'를 내세웠다. 1단계는 소득세였다.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이 정상화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저항이 컸다. '연봉 3450만원(근로자의 상위 28%) 이상 323만명 세부담 증가'의 파장은 엄청났다.

정상화의 첫 타깃을 월급쟁이, 중산층으로 삼은 데 따른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대기업 비과세·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 등은 '쓰나미'에 쓸려갔다.

결국 정부는 나흘만에 한발 물러섰다. 박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고 정부가 세부담 기준을 연봉 5500만원으로 올리는 수정안을 만들었다. 세법 개정안 논란은 '증세-복지' 논란으로 확대됐다. 짚고 가야할 문제지만 박 대통령이나 정부는 기존 입장 그대로다. 계속 쏟아질 비가 아닌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로 느끼는 분위기다.

반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반기 경제회복, 각종 부양 정책 등은 어느새 잊혀졌다. '경제 회복' 대신 '복지'가 하반기 경제정책의 주화두로 자리잡는 아이러니가 연출된 셈이다.

향후 동력도 적잖게 상실했다. 취득세율 인하, 예산안 편성 등 굵직한 정책을 밀고 갈 때 '세법 논란'은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6개월은 '세금 쓰나미'로 요약될 정도다.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기자 swa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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