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8006


n번방 분노 판사 13인 "노예제에서나 용인될 법원 시각"

법원 내부통신망에 법원 비판글 게시...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 양형기준 전면 재검토 요구

20.03.31 16:20 l 최종 업데이트 20.03.31 18:33 l 소중한(extremes88)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노예제에서나 용인될 법한 시각입니다."


판사 13인의 날 선 글이 지난 25일 코트넷(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라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준비중인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 양형기준'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청하는 글이었다.


이들은 최근 그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아래 n번방 사건)'과 과거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 '다크웹 사건'을 거론하며, 디지털 성범죄의 폐해 및 법원의 미온적 태도를 강하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법관을 상대로 실시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제작·배포 등)' 양형기준 설문조사 곳곳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신체접촉 성범죄보다 가볍지 않아"


판사 13인의 글에는 디지털 성범죄의 개념을 확고히 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기술의 발달이 범죄 형태 및 피해자 고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각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신체접촉 성범죄보다 경하거나 부수적인 형태의 성범죄 또는 단순 음란물 유포 범죄가 아닌, 극심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별개 형태의 성범죄입니다."


실제로 '강간보다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이 더 높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법원 내부의 지배적 인식이다(관련기사 : '디지털성범죄' 석방한 판사의 의미심장한 한마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아래는 설문조사 중 일부다.

 

피고인은 SNS에서 연락하여 알게 된 14세 여성 피해자에게 카메라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도록 하고 그 장면을 녹화하였다.


① 2년 6월 ② 3년 ③ 3년 6월 ④ 4년 ⑤ 4년 6월 ⑥ 5년 ⑦ 6년 ⑧ 7년 ⑨ 8년 ⑩ 9년 이상

 

양형은 법관이 형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일로 그 기준은 양형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그 기준은 법에 규정된 형벌(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가중·감경의 척도로 사용된다. 이 설문조사에서 제시한 사례의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이다.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죄와 같은 법정형이다. 판사 13인의 글에는 위 같은 설문조사 문항으로 인해 같은 법정형의 범죄라도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간죄 기본영역의 양형기준이 13세 이상의 피해자인 경우 5~8년입니다. 위와 같은 기존의 양형기준도 법정형 및 죄질에 비하여 낮게 설정돼 있다는 비판이 있는 상황입니다. (중략)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중 제작 범죄의 적절한 양형을 묻는 질문에서 선택지의 범위가 2년 6개월에서 9년 이상으로 설정돼 있었는데 그렇다면 응답 결과는 그 중간 정도인 5~6년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큽니다. 5~6년은 동일한 법정형을 가진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 범죄의 기존 양형기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제작-판매-배포-소지, 죄질 차이 크지 않아"


판사 13인은 디지털 성범죄의 또 다른 특성으로 "제작-영리목적 판매-배포-소지의 죄질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 음란물 제작·유포와 디지털 성범죄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범죄라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현실 공간에서의 성학대·협박·유인·폭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피해자의 사회적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략) 제작 단계, 판매 및 배포 단계, 소지 단계 각 단계마다 새로운 가해와 피해가 발생되는 것이지 판매 및 배포, 소지로 인한 피해가 제작으로 완성된 범죄에 부수적으로 가볍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소지가 판매 및 배포의 동기가 되고, 판매 및 배포가 제작의 동기가 되는 구조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설문조사에는 이러한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판사 13인은 지적했다. 아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설문조사 중 일부 내용이다.

 

<영리 등 목적 판매> 피고인은 (중략) 14세 여성 피해자가 카메라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료로 판매하였다.

① 4월 이하 ② 6월 ③ 8월 ④ 10월 ⑤ 1년 ⑥ 1년 3월 ⑦ 1년 6월 ⑧ 2년 ⑨ 2년 6월 ⑩ 3년 이상


<배포> 피고인은 14세 여성 피해자가 카메라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친구에게 카카오톡을 이용하여 전송하였다.

① 4월 이하 ② 6월 ③ 8월 ④ 10월 ⑤ 1년 ⑥ 1년 3월 ⑦ 1년 6월 ⑧ 2년 ⑨ 2년 6월 ⑩ 3년 이상


<소지> 피고인은 인터넷에서 14세 여성 피해자가 카메라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내려받아 소지하였다.

① 2월 이하 ② 3월 ③ 4월 ④ 6월 ⑤ 8월 ⑥ 10월 ⑦ 1년

 

즉, 제작 범죄의 양형기준도 낮게 설정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판매·배포·소지 범죄의 설문조사 문항은 이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다는 비판이다.


"아무리 법정형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영리 목적 판매 등 이하부터는 (중략) 제작 단계의 보기 기준인 '징역 2년 6개월부터 9년 이상'과 지나치게 큰 격차가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의사에 반하더라도 보호될 필요"  

 

 텔레그램성착취공대위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장내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텔레그램성착취공대위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장내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판사 13인은 설문조사 중 특별감경인자에 '실제 피해가 경미한 경우', '음란성(성적 행위의 정도)이 약한 경우'가 포함된 것 역시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의 제작·판매·유포·소지에 있어 그 피해가 경미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정하기 어렵습니다. 성적 행위의 정도가 약한 상태(?)로 제작되거나 한 명에게만 유포되면 그 피해가 경미하다고 평가될 수 있을지요. (중략) 경미한 피해라는 개념이 성립 가능한지, 이를 특별감경인자로 삼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있습니다. 또한 아동·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하여 불법촬영을 하고 유포하고 소지한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것인데, 그 와중에 음란성의 정도를 나누어 음란성이 약한 경우 감경인자로 삼을 수 있을지 역시 의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처벌 불원'과 '의사능력이 있는 피해 아동·청소년의 승낙'이 특별감경인자에 포함돼 있는 점도 강하게 비판했다.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중범죄인 만큼 그들의 승낙 하에 범죄가 이뤄졌거나 이후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형량이 감경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도 보호될 필요가 있다는 점 (중략) 등을 고려할 때 (중략) 처벌 불원 의사를 대표적인 특별감경인자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이에 더하여 아동은 취약자로서 연장자의 말에 복종하기 쉽고, 아주 낮은 수준의 유인과 협박에 의해서도 성착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아가 성착취에 있어 승낙이나 계약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은 노예제에서나 용인될 법한 시각입니다. 인가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동의나 승낙은 유효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아동의 승낙을 유효한 승낙으로 보아 범죄 감경요소의 보기에 올릴 수 있는 것인지도 매우 의문입니다."


판사 13인이 코트넷에 올린 글의 전문은 다음 기사에서 볼 수 있다.


[전문] 법원 내부방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양형 비판글 (http://omn.kr/1n3m0)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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