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7454.html

종로경찰서장 폭행 자작극 의혹 확산
[하니Only] 허재현 기자   등록 : 20111128 11:54 | 수정 : 20111128 19:07
   
왜 의원을 뵈러 간다 했을까, 왜 굳이 정면돌파를 시도했을까
왜 무리로 들어가기 전 정복으로 갈아입었을까 등 의문 증폭
정동영 의원 “국회 청문회를 통해 배후 밝혀낼 것”
폭행하는 보도자료 배포 사진 속 손은 보호하는 경찰 손인 것으로 확인돼

≫ 서울경찰청이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을 때리는 시민들이라며 26일 밤 언론에 긴급 배포한 사진. 그러나 박 서장의 머리를 짓누르는 갈색점퍼 남성의 손은 경찰의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26일 시위대에 둘러싸여 봉변을 당한 것과 관련해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자작극 논란’이 커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조현오 기획, 박건찬 주연, 헐리우드 액션막장 드라마”, “종로경찰서장 셀프 폭행” 이라는 글을 올리며 의혹제기를 하고 있고,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회 청문회까지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누리꾼들이 가장 많이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박 서장이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흥분한 시위대 안으로 들어갔느냐는 것이다. 박 서장은 이날 경찰이 광화문 광장 집회를 허가하지 않아 화가 날 대로 나 있던 시위대 속으로 무리하게 들어갔다. 경찰은 현장에서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의원들을 만나러 간다, 의원들이 불렀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현장에 있었던 의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정동영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의원들을 만나고 싶다”고 먼저 요청한 쪽은 박 서장이다. 밤 9시30분께 사복경찰 한 사람이 의원들을 찾아와 “종로경찰서장이 뵙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우리가 지금 시위대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곧 대화 상대를 지정해 알려주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박 서장은 누군가와 통화를 한 뒤 곧바로 시위대 안으로 진입을 강행했고 문제의 봉변을 당했다. 

야당 의원들을 만나려 했다는 박 서장의 말을 받아들이더라도, 정당연설회를 하고 있는 의원들의 차량 쪽으로 가려면, 시위대 안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시위대 바깥으로 에둘러 돌아갔으면 되는데 박 서장이 굳이 정면돌파를 시도한 점도 의문이다.

박 서장이 시위대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사복에서 정복으로 갈아 입은 것도 의혹 대상이다. 박 서장은 사건 직후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정복을 착용한 것은 경찰관으로서 당연한 자세”라고 했지만, 굳이 눈에 잘 띄는 정복으로 갈아입은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일고 있다.

박 서장은 또 집회가 진행중인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불법 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고독한 결단을 한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집회 중단과 관계없이 서둘러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본래 목적이 집회 중단에 있었던 게 아니라, 기자회견에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박 서장은 시위대에 둘러싸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는 과정에서 경황이 없었을 텐데도 종이에 자신의 입장까지 적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때문에 이날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갑작스런 기자회견 탓에 집회 현장을 버리고 기자회견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사건 직후 경찰청 홍보계의 신속한 보도자료 배포도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발로 보도된 문제의 사진도 서울경찰청이 직접 찍어서 배포한 것이다. 박 서장이 작심하고 시위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절묘하게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다. 경찰은 폭행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진에 빨간 원까지 그려 한눈에도 박 서장이 폭행당하는 것을 알아보게 했다. 언론사들은 이 사진을 근거로 “박 서장이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확인 결과 박 서장 폭행 가해자로 추정된 사진 속 남성은 종로경찰서 소속 고 아무개 경사인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이틀 가까운 시간 동안 모든 언론사가 이 남성을 가해자처럼 지목해 보도하는 동안 경찰은 어떤 정정보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한 누리꾼의 추적으로 해당 남성이 시민이 아닌 경찰 같다는 의혹이 27일 제기되고 28일 언론이 이를 보도하기 시작한 뒤에야 경찰은 “사진속 박 서장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남성은 경찰이다”고 밝혔다.

고 아무개 경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언론이 나를 폭행범처럼 보도하고 있어 나도 황당하다”고 말했다. “왜 지금까지 서울경찰청이나 언론에 정정요청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바빠서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역시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신속한 기자회견과 보도자료 배포 이후 이틀이 지나도록 “시민이 경찰을 때렸다”는 와전된 증거사진이 떠돌도록 방치한 이유가 뭔지 명확한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여론을 조작하려고 한 게 아니다. 경찰이 언론사에 사진 배포를 너무 성급하게 했고 언론도 사실검증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쓰는 바람에 의혹이 확산한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은 <한겨레>에 “이번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박 서장의 이날 행동의 배후가 누군지 국회 청문회를 통해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서장은 26일 저녁 문제의 봉변을 당하기 직전 누군가와 통화를 한 뒤 곧바로 시위대 안으로 들어갔다. <한겨레>는 누구와 통화하고 시위대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인지 확인하려고 박 서장에게 수 차례 전화를 했으나 박 서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편,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은 28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시위대의 인권을 고려해 최근 물대포 사용을 자제했는데, 26일 물대포를 쓰지 않아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이번 사건을 물대포 재사용 근거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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