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attle.culturecontent.com/content/battle_fields/view.asp?ctl_idx=312


백암성(白巖城)


이 칭:백애성(百崖城), 백석성(百石城), 연주성(燕州城)
시 대:고구려
소재지:중국 요령성 등탑현(燈塔縣) 서대요향(西大窯鄕) 관둔촌(官屯村)
규 모:외성의 둘레 약 2.5km
지정사항:중국 요령성 문물보호단위


고구려시대 요동지방의 주요 방위성.

《삼국사기》에 547년(양원왕 3) 7월에 백암성을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나, 언제 처음 쌓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요동성에서 태자하(太子河)를 따라 20km 정도 상류에 위치한 연주성을 대체로 고구려의 백암성에 비정하고 있는데, 백암성은 요동성에서 오골성 등 압록강 방면으로 나아가는 교통로의 길목에 위치한 요충성이다. 산성은 바위산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성을 쌓았으며 남서쪽만 앞이 틔어 있는데, 위부에서 성 안이 들여다 보이므로 방어하기에 불리한 점도 있다.《구당서》 고려전에 백암성을 “산을 의지하고 강을 내려다보며 4면이 험난한 절벽이다.”고 했는데 실제 연주성(백암성)의 모습이 매우 유사하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의 서쪽 성벽은 견고하고 웅장한데, 이 성벽에는 3개의 치(雉)가 돌출되어 있으며, 성벽 안으로는 역시 치와 유사한 구조물을 설치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성벽을 지지하는 기능을 하였다. 성벽의 둘레는 2.5km 정도로 현재 북쪽과 동쪽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벽의 높이는 대략 6~8m이다. 북쪽 성벽에의 안쪽에는 내성이 축조되었는데, 이곳이 점장대(點將臺)이다.

551년(양원왕 7) 돌궐이 신성으로 와서 포위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백암성으로 옮겨 공격하였는데, 고구려 장군 고흘(高紇)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싸워 이기고, 1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그 후 645년(보장왕)에 당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여 요동 경영의 요충지인 요동성을 점령하였다. 그 다음의 공격 목표를 백암성으로 정하여 이세적이 백암성 서남방으로 진공하고 당태종이 그 서북쪽에 이렀다. 성주 손대음(孫大音 혹은 孫伐音)은 요동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겁을 먹고 항복하였는데, 이 때 성안에는 1만 명의 백성들과 2400여 명의 병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당은 백암성을 암주(巖州)로 개편하고 성주 손대음을 자사로 삼았다. 백암성을 뺏은 당 태종은 바로 안시성으로 쳐들어갔는데, 그 안시성 싸움에서 패하여 퇴각하였다. 현재 성안에는 내성의 장대와 봉화대 구조물이 남아 있다.


백암성 전경, 중국 요령성 동탑현


백암성 성벽


백암성 치


백암성 망대


백암성 북쪽 성벽

퇴물림쌓기 형식으로 축조된 백암성의 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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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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