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8928


"봐라, 내가 '지인능욕' 피해자다... 이래도 별일 아닌가"

[인터뷰] 피해자 이아영씨 "정말 악질적... 가해자들, 잡지 않으면 계속 한다"

20.04.03 15:16 l 최종 업데이트 20.04.03 15:16 l 박소희(sost)


 3월 3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지인능욕' 피해자 이아영씨는 지인능욕이 "정말 악질적인 여성혐오"라고 했다. 그는 수사기관이 반드시 가해자들을 잡아서 처벌해야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3월 3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지인능욕" 피해자 이아영씨는 지인능욕이 "정말 악질적인 여성혐오"라고 했다. 그는 수사기관이 반드시 가해자들을 잡아서 처벌해야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박소희

 

처음엔 괜찮은 줄 알았다. 괜찮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잠이 안 오더라. 결국 못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선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고소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걸 찾는데 갑자기 너무 서러웠다. 눈물이 막 나더라. 다음날도 또 갑자기 눈물이 나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원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데, 계속 하혈을 하고 있다"며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아영, 22살. 지난달 31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소위 '지인능욕' 피해자다.


어느 날, 피해자가 됐다


3월 23일 오후 11시 반쯤, 갑자기 친구가 '텀블러에 사진이 올라왔다'며 이씨에게 캡쳐본을 보내줬다. 친구는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지인능욕 문제를 알리는 글을 보고 혹시 자신이나 지인도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워 하루 종일 관련 사이트를 뒤졌다고 했다. 거기에 약 11개월 전 올라온 이씨 사진이 있었다. 게시글에는 "다섯 번째 제보"라고 써있었다.


지인능욕이란, 일반인 여성 사진 또는 그 사진과 성적으로 합성한 이미지를 온라인에 게시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해당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가짜 정보가 함께 게시되는데, 이씨의 경우 "남친 있는데 다른 남자 자취방 가서 둘이 술 먹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이 시대의 바른 친구네요, 매일 남자친구가 바뀐다고 합니다"라는 '허위 제보'가 더해졌다. 또 10장의 사진 중 두 장은 '아헤가오(음란물 속 과장된 여성의 표정을 가리키는 일본 은어)'를 합성한 것이었다.

 

피해자는 너무 많았다. 이씨는 "처음 친구가 알려준 링크 주소로 들어갔더니 아무리 뒤져도 제 사진이 안 나왔다"며 "이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만 1천 개가 넘었다"고 했다. "(직접 찾아보니) 지인능욕만 올리는 계정이 셀 수 없이 많다, 다 합치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을지 감이 안 올 정도"라고도 했다. 해당 사이트는 음란물 유통의 중심지였던 텀블러와 유사한 플랫폼, 텀벡스에 만들어졌고 현재는 접속이 불가능하다.


사진 밑에는 400개 넘는 댓글이 있었다. 이씨는 자꾸 오류가 나서 내용을 확인 못했지만, 짐작이 갔다. 그가 찾아본 다른 피해자들 게시물의 댓글은 대부분 '따먹고 싶다, 가슴이 어떻다'는 식이었다.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상세히 공개하고,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 '좌표'까지 찍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이씨의 경우 나이와 이름만 공개됐다. 안도를 하면서도 스스로 기막혔다. '이게 왜 다행이야, 정말 불행한데.'

 

 '텀벡스'의 한 사이트에 올라온 지인능욕 글. 피해자는 이 글이 올라온 지 11개월 뒤에야 알았다. 지인능욕은 대개 피해자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 신상정보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대처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  "텀벡스"의 한 사이트에 올라온 지인능욕 글. 피해자는 이 글이 올라온 지 11개월 뒤에야 알았다. 지인능욕은 대개 피해자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 신상정보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대처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 오마이뉴스

 

당장 뭘 해야 할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인능욕이 뭔지는 알았지만 직접 접한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피해자로. 사람들에게 일단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정말 남 일이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봐라, 내가 피해자가 됐다. 이래도 (지인능욕이) 별일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인스타그램에 피해 사실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24시간이 지나면 게시물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스토리'로 올렸다. 또 최근 사람들이 공분하는 'n번방'(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이나 '디지털 성범죄' 해시태그를 달까 고민하다가 뺐다. 이씨는 "한때 n번방 해시태그를 달면 가해자 등이 그걸 타고 들어와서 n번방 사건 공론화에 동참한 여성들 사진을 캡쳐해 공유하니 조심하라는 글이 돌았다"며 "제 일을 공론화하려고 해시태그를 달면 또 이상한 남자들이 제 사진을 퍼나르고 이상한 말을 할까 봐... "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 무서운 마음이랑 (제 피해를) 공론화하고 싶은 마음 두 개가 부딪쳤다. 아직까지는 무서움이 더 크다. 사정이 있어서 인스타그램 계정도 비공개로 못 돌렸는데, 대신 하루 종일 제 계정 구독자(팔로어) 중에 프로필 사진이 없는 계정을 뒤져봤다. 어떤 계정은 팔로어가 0명인데, 자신은 여자들로만 몇 천 명을 구독하더라. 좋아하는 해시태그는 비키니, 몸매스타, 누드스타킹 이런 단어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저를 이상한 목적으로 본다고 여겨 다 차단했다. 50개가 넘더라."


경찰에도 바로 신고했다. 인터넷으로도 할 수 있지만 이씨는 사이트 운영자뿐 아니라 '제보자(피해자의 사진 등을 지인능욕 사이트 운영자에게 전달)'도 잡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3월 24일 오후 직접 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접수했으니까 담당 수사관이 연락할 것'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허무했다. 인터뷰 당시에도 그는 "담당 수사관이 일이 많은지 아직 연락이 안 왔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놈'을 정말 잡을 수 있을까? 이씨는 "지인능욕은 정말 악질적인 여성혐오인데, 더 큰 문제는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에서 '못 잡는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경찰이 안 도와주잖아요. 해외사이트라 안 된다고만 하고. 못 잡으면 계속 하잖아요. 텀블러가 막으면(불법 성인물 유통의 온상으로 꾸준히 비판 받아온 텀블러는 2018년 말 적극적인 차단 방침을 발표했다. - 기자 주) 다른 사이트를 만들어내고, 어떻게든 계속 한다, 잡지 않으면. 지인능욕은 이게 나쁘다는 걸 모르면서 하는 게 아니다. '안 걸린다'며 하는 거다."


"그들은 어떻게든 계속 한다, 잡지 않으면"

 

검찰로 송치되는 '박사방' 조주빈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검찰로 송치되는 "박사방" 조주빈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씨는 n번방 사건처럼 지인능욕도 좀더 공론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익명보다는 '피해자가 진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오면 다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실명보도 역시 동의했다. 그는 "지인능욕을 안일하게 보거나 몰랐던 사람도 저로 인해 '이게(지인능욕) 진짜 있구나, 비일비재하구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이건 (여성 누구나) 본인이 피해자가 될 확률이 큰데, 관심이 별로 없는 듯하다"고 했다.


"제가 피해자가 됐을 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을 때 (공감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 중에 페미니즘을 반대하던 남자들도 있었다. 그들도 (디지털 성범죄가) 먼 일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끼지 않았을까. 인터뷰 요청 받았을 때도 고민 안 했다. '당연히 해야지.'"


이씨는 인터뷰 말미에도 거듭 "당장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경찰과 검찰, 법원이 이 문제를 좀 심각하게 보고 처벌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제 주변은 아니지만 찾아보면 이런 디지털 성범죄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저는 제가 운 좋게,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얘기를 하면, 남성들은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우리(여성)로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살아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암담하죠."


*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에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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