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권은희 "부당한 것은 금세 드러나는 시대.. 거기에 희망을 걸죠"
'국정원 댓글 사건의 분수령' 권은희 수사과장 언론 첫 인터뷰
"수사의 부당함 공개 후 오히려 흔들림 없이 직무수행"
한국일보 | 송은미기자 | 입력 2013.09.25 03:35 | 수정 2013.09.25 09:15
'3각 커넥션' 의혹
그런 통화 있는지도 몰랐는데 국정원ㆍ서울경찰청이 사안마다 보이는 반응 똑같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 밝힌 이유
내부에선 말할 절차도 없고 말하도록 놔두지도 않아 전보 직후 어려웠지만 후회 안 해
↑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에서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했던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2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이 해야 할 일, 경찰이 따라야 할 가치를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 권은희 과장이 인터뷰 도중 "많은 분들의 응원 메시지가 큰 힘이 됐다며 편지들을 꺼내 보여 주고 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조직서 고립감 느낀 적 없어
증인들 진술 상반되지만 신빙성 판단은 재판부의 몫
시민편지ㆍ문자메시지에 감사… 응원해준 동료들도 큰 힘
"사건 수사 중 겪은 부당함을 밝히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수사과장 직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서 수사과장)은 2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월 경찰의 수사 축소ㆍ은폐 의혹을 공개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권 과장이 국정원 사건과 관련,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인터뷰를 사양해왔던 그는 이날 만남 내내 담담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힐링'을 자주 언급해 그간 마음 고생이 심했음을 내비쳤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구속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불구속,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국정원 국정조사와 민주당 장외투쟁, 그리고 어쩌면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까지 지난 수 개월간 정국을 뒤흔든 사건들의 단초는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 11일 "국정원이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불법 선거개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이 신고가 접수됐을 때부터 수사를 지휘하다 두 달 만에 교체된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당시 수서서 수사과장)은 석연찮은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 다음 날인 4월 19일 "경찰 윗선의 개입으로 수사가 축소됐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수사에 재시동을 걸었다. 이어진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 재판 과정에서 그는 줄곧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22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 본사에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는 신중했지만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했다. 그의 말대로 "수사과장으로 한 점 흔들림이 없는 상태"였다.
-지난해 대선을 목전에 둔 12월 11~16일 국정원 2차장 산하 직원들이 당시 서울경찰청장, 서울경찰청 수사부장ㆍ과장, 수서경찰서장 등과 조직적으로 접촉했다. 여권 유력 정치인과도 통화를 해서 '3각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권 과장은 연락을 받지 않았나.
"없었다. 그런 식의 통화, 대인 마크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시 국정원과 서울경찰청이 하는 말이 똑같은 것을 보고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원 측 이야기는 기자들을 통해, 서울경찰청 이야기는 지시를 받으면서 들었는데, 보도가 나오거나 수사 방향을 설정할 때 양측의 반응이 사안마다 똑같았다."
-외압이 있었을 때, 예컨대 12월 12일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을 막았을 때 수사과장이라면 강행할 수는 없었나.
"만약 12월 16일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감지한 서울경찰청의 의도를 12일 김 전 청장의 전화를 받았을 때 알았다면 영장신청을 강행했을 것이다."
-1월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것도 외압 때문이었나.
"그렇게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일보가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사이트인) 오늘의 유머 운영자가 수사 자료를 넘겨주려 해도 경찰에서 안 받으려 했다'며 '경찰 상부에서 수사 확대를 막았다'고 보도(2월 8일자 1, 5면)했는데 사실이었다. 자료를 받는데 일주일 이상 소요되면서 수사가 늦어졌고, 소환에 불응하는 중요 참고인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언론에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4월 수사결과 발표 후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경찰 내부가 아닌 언론에 공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찰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말할 절차도 없고, 이야기하도록 놔두지도 않는다."
-내부적으로 이야기하려고 노력은 했었나.
"3월 중순 서울경찰청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하려 했었다. 서울경찰청의 부당함을 밝히지 않고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를 외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의가 열리지 않았고 경찰청장 인사가 나면서 기회를 잃었다."
-경찰 안에서는 권 과장에 대해 '사법고시 출신이니 나가서 변호사 해도 되겠다' '결국 정계에 진출하지 않겠나'라며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어서 외압을 폭로했다는 시각이 있다.
"어떤 사람이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사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었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ご?변호사로 활동하다 현장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경찰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경찰이 됐다. 앞으로도 경찰 수사 분야에 도움이 되고 싶다."
-경찰 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은 자기목적적인 조직이 아니다. 경찰로서 해야 할 일, 따라야 할 가치, 법이 있다. 이를 도외시한 말은 비난을 위한 비난이며, 맹목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조사, 재판에서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 분명하다"는 등 주관적인 판단을 증언했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이 아니라 수사 책임자 신분으로 말한 것이다. 수사과장은 증거를 수집, 피의자를 특정하고 기소와 불기소, 혐의 있음과 없음을 판단한다. 이는 법률 지식과 축적된 경험에 의한 것이며 일반적으로 '객관적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 국정조사, 재판에서 경찰 측 증인들의 말은 한결같이 본인의 진술과 상반되는데.
"증인과 증언의 신빙성은 재판부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얼마 전 제가 조직에서 고립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봤는데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 없다. 조직 내에서 많은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공개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공개하기 전 2월 송파서로 전보된 직후가 오히려 어려운 시기였다. 부당함을 밝히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수사과장으로서 직원들을 지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고, 조직에 대한 불신이 커져 괴로웠다. 하지만 공개 이후에는 한 점 흔들림 없이 수사과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사건의 실체와 수사 상황을 밝힌 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과정을 보면서 조직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됐다. 후회하지 않는다."
-경찰 조직에 회의를 느끼나.
"많은 분들이 사회가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부당한 것이 금세 드러나는 시대다. 거기에 희망을 건다."
-검경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논란이 많았는데 이번 사건을 거치며 경찰의 수사권 독립 확보가 요원해졌다는 의견도 있다.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수사권을 우리 경찰 내부에서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이다. 상부에서 함부로 지시하지 않고, 수사 현장에서 증거를 갖고 판단하는 경찰들에게 권한이 주어져야 비로소 수사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응원하는 분들이 많다.
"(종이봉투에 담긴 응원 편지를 한 장 한 장 꺼내 보여주며) 편지나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들, 경찰 내부망을 통해 응원해준 동료들이 많다. '순수하게 감동받았다', '힐링이 됐다'고들 했다. 평범한 제가 상식적인 얘기를 한 것에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 같다. 그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큰 힘이 됐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 권은희 수사과장은
1974년 2월 전남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한 권은희(39) 과장은 97년 전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5년 7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경정 특별채용을 거쳐 경찰에 발을 디딘 그는 2006년 3월부터 1년간 경찰청 경무기획국 법무과에서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6개 경찰서를 돌며 줄곧 수사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보통 총경 승진을 위해 여러 보직을 거치기를 권하지만 가능하면 수사형사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문성을 더 기르기 위해 올 2월 연세대 법과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3월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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