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ongik.ac.kr/~kayakim/openlec/Gimhae/Gimhae1-5.htm

고령 지방을 중심으로 새로이 복구된 후기 가야연맹
후기 가야사 개관


경상북도 고령 지방에는 본래 큰 세력이 없고 안정된 농업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5세기에 들어 야로(冶爐) 철광을 개발하면서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고령 지방에 4세기 이전의 고분 유적이 거의 없다가 5세기 이후에 지산동 고분군과 같은 대형 고분군이 나타나는 것은 그를 반영합니다.

그리하여 고령의 반파국(伴跛國)은 5세기 후반에 대가야(大加耶)를 칭하며 대두하여, 13개 소국을 거느린 맹주국이 되어 후기 가야연맹(後期加耶聯盟)을 형성시켰습니다.

대가야는 479년에 가라왕(加羅王) 하지(荷知)의 이름으로 중국 남제(南齊)에 사신 보내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의 칭호를 받기도 하고, 481년에는 신라를 공격하는 고구려의 군대를 백제와 함께 가서 막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가야는 6세기 초에 기문(己汶=남원,임실)과 대사(帶沙=하동) 지방을 둘러싸고 백제와 대립하여, 기문을 빼앗기고 대사를 지켜냈습니다. 대가야 이뇌왕(異腦王)은 522년에 신라 왕녀를 받아들여 결혼동맹을 맺었으나, 신라 법흥왕은 이를 이용하여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530년대에 가야 남부의 일부 지역이 신라와 백제에게 병합되거나 그 영향 아래 들게 되었습니다.

후기 가야연맹은 540년대에 고령의 대가야국과 함안의 안라국을 중심으로 한 남북 이원체제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가야연맹 전체의 독립을 모색하였으나, 결국 550년 경에 백제에게 반(半)복속되었습니다. 가야연맹은 554년에 백제와 연합군을 구성하여 관산성 전투에 나섰다가 신라에게 대패하였으며, 562년에 신라 군대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金泰植>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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