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699988
비류국[沸流國]
서기전 1세기경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 유역에 있던 소국(小國).
다물국(多勿國)·비류나(沸流那)로 기록되기도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동명성왕(始祖東明聖王)조에 따르면 주몽(朱蒙)이 비류수에 채소잎이 떠내려옴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어 사냥을 하면서 비류국에 이르러 국왕 송양(松讓)을 만났다. 송양이 말하기를 땅이 작아 두 임금을 용납하기 어려우므로 도읍을 정한 지 오래되지 않은 주몽이 자신의 속국(屬國)이 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 말에 주몽이 분노하여 활쏘기 등으로 재주를 겨루었는데 송양이 항거하지 못하였다. 이듬해 송양이 항복하므로 그 지방을 다물도(多勿都)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 우두머리로 삼았다고 한다. 이 기사의 저본인 《구삼국사기》의 동명왕본기에는 두 사람이 벌인 신통술 대결로써 이를 극화하였다. 이때의 송양왕은 고구려 5부의 하나인 소노부(消奴部)의 장(長)을 뜻하며, 주몽과 송양의 대결은 고구려연맹체 내에서의 소노부와 계루부(桂婁部) 간의 주도권 교체의 사실을 압축해 상징적으로 설화로 만든 것이라고 여겨진다.
실제로 초기 계루집단의 구성을 보더라도 그 교체는 정복집단의 그것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주몽과 졸본 부여왕의 딸인 소서노(召西奴:졸본지역의 토착세력)의 결혼설화가 상징하듯 일부 토착세력과 결합하여 서서히 세력을 확대해 나간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통해 비류국은 정식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비류수에서 생긴 지명으로, 압록강 중류의 지역집단인 ‘나(那)’의 명칭이었으며 졸본지역의 토착세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 고구려 세력에 병합된 비류국은 송양의 딸이 유리왕의 비로 들어가는 등 주몽집단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고구려의 성장과 함께 유력한 지배집단이 되었다.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大武神王)조에는 비류국이 고구려의 비류부(沸流部)로 나오고 3인의 장(長)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서기 1세기 전후에 이미 고구려 지배체제 내로 완전히 흡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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